한없이 따뜻한 눈빛을 내게 보내주는 너에게
자존감이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거라는데 그게 나에게는 참 쉽지 않았다. 맘에 안 드는 부분 투성이인 나를 어떻게 '그래도 괜찮아' '나는 이대로도 충분히 멋져'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끔 노력하는 만큼 원래의 나는 마음에 안 든다는 말이 돼버리니까.
그러던 나에게 묘한 감정이 생겨났다. 나의 반쪽을 만나도 느끼지 못했던 기분. 나의 아이를 만나게 된 것이다.
아이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어떤 사람이 나를 이렇게까지 지긋이 쳐다봐줄까. 그리고 그 누가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따지지도 않고 이런 세상에서 가장 밝고 눈부신 미소로 나에게 웃어줄까.
흔히 엄마가 아이에게 주는 사랑이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들 하는데 나는 최근에 그 생각이 바뀌었다.
아이가 엄마에게 주는 사랑이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왜 엄마가 좋니? 그냥 엄마니까요. 엄마이기 때문에, 그냥 이유 없이,그냥 내 존재 자체만으로 인정받는 느낌을 나는 아이를 통해 느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길 아이는 어릴 때 부리는 재롱으로 모든 효도를 다하는 거라고, 그때의 사랑스러움으로 부모는 평생 받을 효도 다 받은 거라고 한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아무리 귀여워도 떼를 쓰고 부모를 지치게 할 수 있다. 무조건 귀엽기만 한 날만 있는 건 절대 아니다.
부모가 아이로부터 받는 효도는 이 시기의 무조건적인 부모에 대한 사랑이다. 그것만으로도 부모는 자존감을 선물 받은 것이고 이 시기의 아이의 사랑으로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놔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좀 더 커서 이유 없이 짜증을 부리고 어리기 때문에 해버리는 실수도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다.
나는 그게 아이가 내게 준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눈망울이 너무 예뻐서, 나를 이유 없이 사랑해주는 모습이 너무 고마워서, 나를 보고 그냥 웃어줘서, 눈물이 날정도로 고마웠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가 나를 보고 웃어주는데도 내가 나 자신을 싫어한다면, 그건 너무 슬픈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