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을 하려면 냉정하게 이익을 추구합시다
"왜 나의 선의를 거절하는 거야?"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나눠먹고 싶어서 친구에게 내밀었지만 그 친구는 괜찮다며 사양했다. 친구는 내가 좋아하는 걸 내가 다 먹었으면 좋겠다며 '나를 더욱 위하는' 마음에서 거절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다 먹는 것보다 나눠 먹으면 더 기쁠 것 같아 같이 먹자고 재차 권했다. 하지만 친구는 끝까지 괜찮다고 했다. 이상한 실랑이를 하면서 우리는 결국 내가 서운한 마음으로 혼자 먹는 상황이 된 후 종료되었다. 그 당시에는 서운한 마음만 가득했다. 그런데 후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선의라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지 않을까?'
나의 선함이 오히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 누구를 탓해야 할까. 우리는 선의의 이름으로 '잘못된' 방법으로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윌리엄 맥어스킬의 책 '냉정한 이타주의자'에서는 우리에게 경솔한 이타주의의 불편한 진실을 꼬집는다.
좋은 일을 하고 싶었다. 사실 돈을 안 벌고 싶다거나 무조건 봉사하겠다는 마음이 가득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기부도 봉사도 거의 한 적 없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이왕이면 사회가 좀 더 나아지는 방향의 일을 하며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그래서 퇴사를 준비하던 당시 사회적 기업가가 되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아이를 키우면서도 있지만 2011년에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도 컸다. 언제든지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게 통째로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나를 엄습했다. 그 불안감을 유쾌하지만 리얼하게 보여준 영화 '서바이벌 패밀리'를 보면 우리 현대인이 느끼는 불안감에 대해 제대로 마주할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도쿄 도시 전체가 정전이 된다. 전철도 운행이 안되고 핸드폰 충전도 못하고 먹을 식량도 떨어져 가는 다급한 상황에 주인공 가족은 할아버지가 사는 바닷가 시골로 내려가기로 결정한다. 정전으로 인해 모든 이동수단이 무용지물이 된 상황에 자전거를 타고 험난한 모험을 떠나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보며 나는 더욱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내가 그런 쪽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 정보들만 찾아다닌 건지 '어떻게 하면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까'와 같은 고민에 한동안 사로잡혔었다. 일본에서 아프로 머리로 유명하고 '퇴사하겠습니다'라는 책을 낸 이나가키 에미코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집을 소개했다. 전자제품이라고는 거의 제로인 집에 미니멀리즘을 넘어 전기도 없이 무소유로 살고 있었다. 그걸 보던 당시에는 저자가 개인이 할 수 있는 작지만 멋진 한걸음을 내딛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냉정한 이타주의자'를 읽은 지금 그 생각들이 와장창 깨지기 시작했다.
'냉정한 이타주의자'에서는 감정에 휘둘리거나 열정을 쫓아서 잘못된 선택을 하면 안 된다고 얘기하고 있다. 오히려 그런 행동들이 악영향 줄 수도 있다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플레이 펌프의 사례, 공정무역 커피나 채식에 관한 이야기, TED를 통해서 감명 깊게 봤던 마이크로 크레딧이 수혜자들의 삶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았거나 부정적인 면도 크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이슈화된 사례들을 그대로 믿는다는 게 매우 위험한 일임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노동착취공장의 제품을 사라는 주장에서부터 불을 켜지 않고 살아도 탄소배출 감축 효과는 미미하다는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내가 막연하게만 세상을 좋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아예 이기적인 경우보다 어쩌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보람을 느끼면서 제대로 된 방법으로 사회에 도움을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에서는 여러 가지 기준을 제시했지만 나의 이목을 끈 부분은 '관심이 쏠려 있는 곳이 아닌 방치되고 있는 분야에 대해 생각하기'였다.
수확 체감의 법칙은 남을 돕고 싶다면 부유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가난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점도 보여 준다. -윌리엄 맥어스킬 '냉정한 이타주의자' p.92
근데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내가 주위의 평범한 아이들에 관심이 더 간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내가 보기에 사회로부터 방치되고 있는 분야가 '우리 주위의 평범한 아이들'이었다. 왜냐면 오지의 아이들은 누군가가 후원이라도 하는데 우리 주위 아이들은 세상 기준으로 관심을 덜 받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부모도 있다. 금전적 후원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 편향된 정보에 의한 정신적 폭력, 가능성이 닫히는 문제가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이 없고 불안한 어른들 속에서 입시로만 달려갈 수 밖에 없는 아이들. 그 아이들이 우리 아이의 친구들일테고 그 아이들이 앞으로 어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이 또 다시 무기력한 어른이 된다고 생각하니 정말로 무서웠다.
결국 우리가 세상을 더 낫게 만들려면 내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무엇을 하느냐가 관건이다. 월급으로 기부를 해도 좋고 창업을 해도 좋다. 다만 일을 찾을 때 열정이 아니라 일 자체의 매력을 찾아야 한다. 내가 열정을 가지고 있는 직업을 찾는 게 아니라 몰입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몰입을 한다는 것은 특정 활동을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중하는 상태다. 이런 몰입이 가능한 직업을 찾는다면 일을 하면서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일을 찾기 위해 고려해야 할 요소는 다섯 가지가 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직무특성 이론 job characteristics theory 참고)
1. 자율성 : 업무에 대한 주도권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
2. 완결성 : 맡은 업무가 전체 업무의 완결성에 얼마나 기여하는가? 최종 결과에 대한 기여도가 단순한 부품 역할에 그치는 게 아니라 눈에 띌 정도로 큰가?
3. 다양성 : 다양한 역량과 재능이 필요한 폭넓은 활동이 요구되는가?
4. 평가 : 업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는가?
5. 기여도 :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타인의 행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
이 직업만족도 요소를 보면서 내가 1인 기업으로 헤쳐나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더 뚜렷해짐을 느낀다. 나는 자율성이 높은 일을 하고 싶었고 다양한 역량을 키우고 평가가 바로바로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어쩌면 나는 월급을 받고 사는 삶만이 전부라고 알던 과거의 나를 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것 역시 감정에 치우친 판단이 아닐까 약간은 경계하게 되지만 함께 성장하는 동료들을 씽큐베이션을 통해 알게 된 이상 두려움은 없다. 마음이 뜨거울수록 냉정해야 함을 되새기며 냉정한 이타주의자가 되기 위해 오늘도 나는 함께 책 읽고 글 쓰고 실행한다.
#씽큐베이션2기 #씽큐베이션 #체인지그라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