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성냥갑 Oct 02. 2019

두려움을 버릴 수 있을까

 나의 15년 묵은 두려움

나에게는 궁극적으로 도달하고 싶은 단계가 있다.


낙타의 시기를 지나 나는 현재 사자의 시기를 맞이했고 그런 내가 결국 원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시기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이 낙타, 사자, 그리고 어린아이의 시기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말이다. 나는 사이토 다카시의 '곁에 두고 읽는 니체'를 통해 이 개념을 처음 알게 되었다.


니체는 인간 정신 발달에는 3가지 단계가 있다고 봤다. 첫 번째 단계인 낙타는 참을성이 있고 주어진 일에 순응하는 단계다. 그다음 단계인 사자는 사냥을 하고 자신의 앞길을 개척한다. 하지만 100프로 사냥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그 불안정한 상태를 받아들이고 운명과 맞서 싸우는 게 사자의 단계다. 마지막 단계는 의외의 존재인 어린 아이다. 니체는 어린아이의 상태를 인간 성장의 최고점으로 보았다. 모래성을 쌓아놓고 파도가 다시 허물어도 또다시 모래성을 쌓는 게 어린 아이다. 과거를 안타까워하거나 앞으로 일어날 일을 걱정하지 않는다. 아이처럼 놀이를 하듯 인생을 산다는 것, 그렇게 '어린아이의 시기'는 강력하게 나의 뇌리에 박혔다.

아이들을 보고 나의 어린시절을 떠올린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아이가 좋았다. 그게 아이들만의 순수한 미소나 귀여움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육아를 하면서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는 아이의 '현재 이 순간에만 존재하자'라는 마인드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어제 한 일이나 내일 하러 갈 거라고 설득하려고 해도 아이에게는 '현재'만이 진짜다.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지 내일 놀이터에 가는 게 무슨 소용이냐는 투로 어른을 다그친다. 아이는 나에게 친구이자 인생 스승 같다. 그럴싸하게 말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그렇게 생각한다.


어른이 되는 과정은 빛을 잃은 과정?

아이가 점점 커가면서 자신에 대한 믿음과 빛을 점점 잃어가는 게 아쉬웠다. 우리 모두 어릴 때는 자신을 그렇게 믿었을 텐데 사회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 수많은 자존감 도둑들에 의해 깎이고 깎여가는 게 슬펐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보며 배운다. 현재의 소중함, 놀이하듯 즐기는 역동성, 세상을 다 무장해제시킬 것만 같은 웃음까지. 그렇다면 내가 사자에서 어린아이의 시기로 가기 위해 내가 넘어야 할 두려움은 무엇일까.


그리기는 나에게 두려움을 넘어 빚같은 존재였다

그게 나에게는 매일 그리기였다. 어린 시절 그림 그리기가 너무나도 즐거웠던 나는 커가면서 점점 그리기가 두려워졌다. 잘 그리고 싶었지만 잘 못 그리는 것 같아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유치원 다닐 때 한 장만 그리라던 과제를 열 장 넘게 그려갔던 나는 어른이 되어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림 한 장 그리기도 이젠 겁이나 시작할 수 없었다. 한 장이 뭐야. 줄 하나 긋기도 무서운데. 선 하나 긋기 무서운 나처럼 그 어떤 일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게 망설여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무섭고 질문 하나 던지기 겁나고 내 안의 나를 마주하기 두려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제각각 두려움의 대상은 다르겠지만 그 두려움의 크기는 스스로를 압도할 만큼 클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글쓰기가 번지점프만큼 엄두가 안나는 일일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는 게 죽기 보다도 어려울 수 있다.


내 안의 두려움을 인정하기 위해 일단 꺼내는 단계가 중요하다. 그 두려움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서 마이크 베이어의 '베스트 셀프'에서는 최고의 자아와 반 자아를 구체적으로 그려보라고 말한다. 그리고 두려움이 일 때 나타나는 반 자아를 최고의 자아가 컨트롤하게끔 만드는 것이다.(나의 최고의 자아와 반 자아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구체적으로 풀어갈 예정이다.) 나는 이 최고의 자아, 반 자아를 그리기도 전에 이미 확실한 두려움이 내 앞에 드러나있는 상태였다. 그렇다면 나는 이 두려움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실패할까 봐'라는 두려움 vs '내 삶이 이대로라면'이라는 두려움

두려움을 극복하고 우리에게 '당신도 할 수 있어요!'라며 용기를 주는 이야기들은 많이 들어왔을 것이다. 사실 지겹고 식상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생이 바닥까지 내려간 사람이 성공한 얘기,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견디지 못했을 상황을 딛고 성공한 스토리를 보면 '그걸 극복한 사람이 대단하다'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사람은 그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던 것이다. 예전에 '잃을 준비되셨습니까'라는 글을 통해 사람의 행동에 변화가 일어나게 할 방법에 대해 다룬 적이 있었다. 사람의 동력장치를 움직이게 하려면 불안정하게 만들어야 한다. 바꾸지 않으면 분명히 손실을 겪는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동력장치는 움직인다. 그렇지 않으면 이미 현 상황에 만족하는 습성을 가진 인간을 움직이게 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를 애덤 그랜트의 '오리지널스'에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사람의 뇌는 안전을 위해서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걸 좋아한다. 안 하던 걸 하기 위해서는 그걸 안 하면 안 되는 상황에 부딪혀야 한다.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안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그 상태로 멈춰있는 건 죽기보다 싫을 테니까. 그들이 의지가 강해서라기보다 '유지하기 싫은 상황'이 그들을 움직일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이다.


그냥 하기와 함께하기

변하고 싶은데 나의 상황이 그 정도로 벼랑 끝도 아니고 다급함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까. 일부러 그런 상황을 만들 수도 없고 참 난감하다. 그런 경우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함께하고 그냥 하는 것이다. 두려운 데 어떻게 그냥 하냐고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자. 그림을 그려야지 그려야지 올해 초부터(사실은 15년 전부터) 노래를 부르던 나는 결국 9개월 동안 단 하나의 그림도 그리지 못했다. 하지만 13명이 오픈 채팅방을 열어서 사진 인증을 올린다는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나는 이렇게 그림을 그렸고 팀원들과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서 오늘 첫 번째 그림을 이렇게 올렸다. 두려운 것도 사실은 함께 하면 그다지 두려울 게 없는 일상이 될 수 있다.

기운찬 30일 드로잉의 첫그림

 

나의 15년간 지속되었던 두려움은 이렇게 함께함으로써 서서히 깨지고 있다. 앞으로 30일 후에는 더 큰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이전 11화 의지가 문제가 아니라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티끌모아 자존감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