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냥갑 Oct 28. 2019

인생이 여행이라면

물건에 대한, 여행에 대한, 삶에 대한 이야기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은 무엇인가요? 가지고 있는 물건 중에 가장 비싼 물건은 무엇인가요? 가장 갖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꽤 오래전부터 물건에 대한 집착을 없애려고 노력해왔다. 미니멀리즘에 관한 책이 나왔을 때 평생을 기다려왔던 반쪽을 만난 것처럼 '이거다!'싶었고 그 가치에 깊이 빠져들었다. 하지만 나는 물건을 엄청 버리기 어려워하는 사람이었고 미니멀리즘을 그 즉시 실행하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내가 물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 것은 한 국내 여행에서였다.


대학생 때 친구들과 경주 안압지로 간 적이 있었다. 넷이서 조촐하게 간 여행이었는데 건축하는 친구들끼리 뭘 하러 갔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고 그저 힐링하고 온 기억만 남아 있다. 그 당시 나는 정말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모르겠는데 아주 '한량'과도 같이 짐이 거의 제로인 상태로 여행을 떠났다. 1박 2일인지 2박이었는지 어쨌든 그리 길지 않은 여행이었고 추운 겨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짐으로 칫솔, 체크카드, 화장품 샘플들(세안제, 치약, 로션, 선크림 등)만을 가지고 여행을 떠났다. 그 짐들은 내 파카 주머니에 다 들어갔었고 여행인데도 불구하고 나의 두 손은 자유로웠다. 심지어 내 어깨에는 작은 가방조차 없었다.


그런 한량 같은 나의 모습을 본 친구는 한마디 했다. "이야~멋있다!!"


그렇다. 나 역시 내가 그렇게 느껴졌다. 참 웃기지만 진짜 두 손이 자유로운 여행을 경험한 자만이 그 자유로움을 안다. 나는 그 전에 유럽에 한 달간 친구들과 간 여행에서 엄청나게 거대한 이민가방 같은 짐을 들고 간 것을 후회한다. 그래서 그 이후로 이렇게 양손이 자유로운 진짜 여행이 고팠나 보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가장 소중한 물건을 만들지 않으려고 했었던 것 같다. 물론 나 역시 무소유가 좋다는 게 아니고 마음에 드는 물건들만 잘 관리하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 물건들이 없을 때 내가 괴로워지는 상태가 되는 게 싫다. 나의 소중했던 정보들이 하드에서 날아갔을 때도 이런 생각이 들었었다. 그것들이 나보다 더 중요해져서는 안 된다. 그게 없으면 내가 불안해지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 중에 가장 비싼 물건은 아이폰일 것이다. 물론 사각사각 연필느낌으로 그림 그릴 수 있는 아이패드도 가지고 싶다. 하지만 그저 물건에 휘둘리는 나를 경계할 뿐이다. 대신 사고자 마음먹었을 때는 뒤도 안 돌아보고 산다. 금액도 상관 안 할 때도 있다.


내가 가장 가지고 싶은 것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이다. 내 콘텐츠를 계속해서 풀어갈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가지고 싶고 이걸 멈추고 싶지 않다.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은 물건이라기보다 어떤 공간, 어떤 음악, 어떤 사람들과 함께하는 그 순간의 바이브다. 나의 경험들은 누구도 앗아갈 수 없을 것이고 그건 화재도 바이러스도 그 무엇도 나에게서 뺏아가지 못할 것이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도구가 되고 싶다. 그게 내가 늘 호기심을 잃지 않으려고, 그리고 실력을 쌓으려고 하는 이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