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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갑 Jul 30. 2020

부모님과 관계가 좋아질 수 있을까

부모님 자서전을 써보았다

1.

여러분은 부모님과의 관계가 좋으신가요?


저는 좋았던 때도 있었고, 안 좋아서 상담까지 받았던 적도 있습니다. 지금은 잘 지내지만 가끔 이전의 상처들이 불쑥불쑥 올라올 때가 있어 당황스러울 때도 있어요.


어떤 분들은 그런 게 힘들어서 아예 부모님과 대화 나누기를 꺼리기도 합니다. 어떤 분들은 상처는 깊숙이 묻어두고,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지내기도 합니다. 저는 회피하는 것도 너무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도,  그 어느 것도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각자에게 맞는 시기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매듭을 언젠가는 풀어야 한다면 너무 미뤄두지는 말자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오늘 제가 얘기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부모님 자서전 만들기>입니다.

제가 왜 부모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 <자서전 만들기>를 추천하냐 하면 '또 다른 방식의 소통'이기 때문이에요. 좀 더 부모님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부모님과의 대화는 똑같은 레퍼토리, 똑같은 싸움으로 끝나고 있지는 않은가요? 저는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리고 실제로 해보니 더 많은 분이 이 경험을 해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2. 나의 불안

먼저 제 이야기부터 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이런 불안을 느끼고 살았습니다.

'부모님과 일찍 헤어지게 되면 어떻게 하지?'

라고 말이에요.


부모님은 여러 번의 유산 끝에 저를 늦은 나이에 갖게 되셨어요. 지금 35살에 초산이면 그리 늦은 건 아니지만, 그 당시에는 많이 늦은 편에 속했어요. 어릴 때 학교에 부모님이 오시는 날이면 우리 부모님이 다른 친구들 부모님보다 나이가 많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어쨌든 전 부모님이 빨리 나이가 들어서 나와 이별을 할 거 같다는 공포를 항상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게 성인이 되어서는 아이에 대한 갈망으로 바뀐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나는 빨리 결혼해서 젊은 엄마가 되어야지.'

저는 항상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28살에 결혼하고 서른이 되는 해에 첫째 아이를 낳게 됩니다. 그렇게 2년 후 둘째 아이도 낳고요. 저는 육아를 하며 바쁜 와중에도 부모님과 이별하게 될 날에 대한 불안이 문득문득 엄습하는 걸 느꼈습니다. 그러면 어떤 걸 해야, 그 날이 왔을 때 내가 후회하지 않을까를 그때마다 생각해봤어요.


3. 보여주기식 효도

제가 부모님을 위한 '보여주기식 효도'를 지금까지 한 게 2가지 있는데요. 하나는 결혼 전에 부모님과 여동생 다 같이 유럽 여행을 열흘간 다녀오는 거였어요. 그 당시 저는 사회초년생이라 경비를 다 낼 수 있을 만큼 돈이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네 식구 비행기 왕복표를 제 코딱지만 한 월급을 몇 개월간 모아 큰 마음먹고 결제했습니다. 나머지 여행 경비는 아빠가 대주셨지만 저는 지금도 그게 뿌듯해요. 제가 비행기표 끊고 가자고 안 했으면 부모님은 돈이 아깝다며 평생 미뤄오셨을 거거든요. 칭찬에 인색하신 아빠도 그 여행에 대해서는 '고맙다, 잘했다' 칭찬해주십니다.


두 번째 효도가 제가 오늘 얘기하고자 한 내용인 '자서전 쓰기'에요. 은퇴하신 부모님을 보면서 저는 상상을 해봤어요. 저는 꽤 상상을 잘하는 편이거든요.

'내가 엄마, 아빠 나이가 되어서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건 뭘까? 안 하면 후회할 것들이 뭘까?'

라고 말이에요.


전 나이가 들어 은퇴하고 돈에 대한 걱정이 없다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싶을 것 같았어요. 손주들에게 매번 말로 이야기를 들려주기에는 한계가 있잖아요. 저는 자서전을 쓰고 싶을 것 같았어요. 근데 아빠한테 여쭤보니 아빠는 그런 거 관심 없다고 하시는 거예요.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빠는 논문이나 칼럼 쓰실 때마다 항상 고통스러워하셨었거든요. 그 반면에 저는 글쓰기에 사랑에 빠진 사람이고요. 그렇다면 내가 대신 인터뷰해서 써드리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생각만 하고 시간이 꽤 오래 지났습니다. 저도 제 살기 바빠서 맨날 미루게 되더라고요. 언젠간 해야지... 언젠간 해야지... 하고 말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서울시 50+센터에서 4주짜리 무료 프로그램이 나온 걸 알게 되었어요. <자서전 만들기 프로젝트>인데 얇은 책자로 인쇄해서 준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이거다 싶었습니다. 바로 돌도 안 된 둘째를 태운 유모차를 밀고 매주 수업을 들으러 갔습니다. 수업 내용은 간단했어요. 앱에 나와 있는 각 질문을 인터뷰한 다음에 글로 정리해서 제출하는 거였거든요. 그렇게 쉬운 과제들이었는데 처음에는 의욕이 가득하시던 어르신들이 하나둘... 수업에 안 나오시는 겁니다. 과제를 못 해왔다고 포기하신 거예요.

저는 수업 시간에 과제들을 부랴부랴 쓰는 한이 있더라도 4주 꼬박꼬박 수업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완벽하기보다 '일단 쓴다'에 의의를 두었죠.


4. 쉽지 않은 인터뷰 과정

사실 인터뷰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어요. 아빠는 항상 바쁘신 분이라, 은퇴 후에도 한가롭게 보내는 법이 없으셨거든요. 그런 분께 매번 통화로 질문을 드리고 대답을 듣는다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번 기회가 아니면 제가 계속 바쁘다는 핑계로 미룰 것만 같았어요. 그렇게 저의 불안이 저를 채찍질했습니다.

그렇게 인터뷰한 걸 다듬는 과정에서 또 확인차 전화를 여러 번 드리고, 퇴고하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아빠의 어린 시절 사진들도 전달받고 이리저리 아빠를 많이 괴롭혔어요. 하지만 아빠는 그게 싫지 않으신지 매번 열심히 사진을 보내주시고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어떤 날에는 싸우기도 했어요. 했던 얘기만 계속하시는 아빠 때문에 답답했고, 아빠는 바쁘다고 그만 끝내자며 일방적으로 인터뷰를 끊으셨었거든요. 아직 듣고 싶은 내용이 많은데 그건 못 듣고 아빠 하고 싶은 얘기만 하고 끝나는 통화가 저는 항상 불만이었습니다.


5. 마감이 중요하다. 해냈다는 뿌듯함

완벽한 퇴고는 없겠지만 저는 마감일을 준수한다는 마음으로 눈을 질끈 감고 자서전을 제출했습니다. 뭐든지 '일단 마무리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거 같아요. 완벽해지려고 미루기만 한다면 결과물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후회만 남거든요. 그렇게 저는 아주 얇지만, 저의 사랑이 꽉꽉 담긴 자서전을 아빠한테 선물로 드리게 되었습니다. 사실 반응이 제가 원했던 것만큼 드라마틱하진 않았어요. 저는 아빠가 눈물 펑펑 쏟으셨으면 했거든요? 근데 이성으로 똘똘 뭉친 우리 아빠 눈에서 눈물을 찾기는 어려웠고, 그저 건조한 '고맙다'라는 한마디가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전 이것만으로도 뿌듯해요. 선물은 원래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게 아니잖아요. 저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엄마, 아빠가 좋아하실만한 것을 찾을 것 같아요. 엄마 아빠는 이제 70세가 다 되어 가시는데, 저한테는 아직 40, 50대이신 거 같거든요? 근데 제가 벌써 30대 중반이고 어린 딸이 둘이 있습니다. 아직 저는 마음은 19살인데 시간은 저에게 아니라고 말해요. 시간은 붙잡을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후회가 남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6. 지금, 바로 지금

내가 여유가 생겼을 때, 돈이 생겼을 때, 시간이 생겼을 때... 그때 가서 부모님께 뭔가를 해드려야지가 아니라, 지금부터 해야겠다고 말이에요. 부모님과의 관계, 자식과의 관계가 안 좋은 분들도 많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삶의 마지막 순간이 당장 내일 온다고 상상해봤을 때, 여러분은 어떤 게 가장 후회가 될 것 같으신가요?

저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사랑한다 말 못 한 게 가장 아쉬울 거 같아요. 소중한 사람들과 맛있는 걸 더 많이, 더 자주 못 먹은 게 아쉬울 것 같고, 더 안아주지 못한 게 후회가 될 거 같아요. 자주 싸우고 상처 내는 말들을 쏟아냈던 시간이 후회가 될 거 같아요. '사실은 진심이 아니었는데...' '서운했던 마음을 풀려고 강하게 말했던 것뿐인데…….'라면서 말이에요.


7. 모두가 힘들 때, 나는 어때야 할까

요새 많이들 힘들고 살기 팍팍하지만, 그럴수록 저는 여유 있고 삶을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 노래 아실지 모르겠어요. 아이들이 있으니 어린이동요를 구글홈으로 자주 트는데 이런 노래가 나온 적이 있어요.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모두가 힘들잖아요.....'

진짜 힘들다고 다들 얼굴 찌푸리면 우린 어디에서 즐거움을 누릴까요.

저는 저부터 행복한 마음을 가지고 즐겁기 위해 오늘도 '주위 사람들, 내 가족들을 어떻게 하면 즐겁게 해 주지?'를 연구합니다.


지금까지 저의 이야기 들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리고, 힘든 때일수록 아이 같은 마음을 잃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s://youtu.be/CU0xGuiRcBQ

쑥스럽지만 접니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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