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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갑 Aug 05. 2020

폐교 프로젝트가 엎어지게 생겼다

내가 두려워했던 그것

취향이 없는 고객의 요구가 가장 힘들다

심플한데 고급스러우면서 자연친화적인 디자인 부탁드립니다.

그래픽 디자이너든, 인테리어 디자이너든, 건축가든, 광고 디렉터든 다 손사래를 칠 말이 아닐까 싶다. 어느 분야든 다 힘들 것이다. 고객은 자신의 머릿속에 모든 이미지가 훤하다며 '말'로만 요구사항들을 쏟아낸다. 그렇게 고객의 머릿속에 있는 닿지 않는 이상향을 그리기 위해 우리는 여러 가지 안들을 가져간다.


그러면 디자이너가 밤새서 만든 대안들을 보며 고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건 여기가 살짝 마음에 안 드는데 어떻게 좀 안될까요? 그리고 이건 내가 생각한 느낌이 아닌데..."

이런 식이 수십 번 반복된다면 그건 커뮤니케이션이 잘 된 걸까? 

회사 직원이라면 제대로 설득할 수 있는 기획안을 가져오라고 같이 머리라도 싸매서 방법을 강구할 텐데, 고객은 그저 '말'로만 전달한다. 


이런 경우를 미리 방지하고 싶었다. 설계/시공비가 만만치 않다 보니 부모님은 한정된 예산 내에서 최고의 집을 만들고 싶어 하셨다. 반면 설계사무소 소장님과 시공사 소장님께서는 예산의 한계를 말씀해주셨다. 다행히도 나는 나의 선배님이자 실력도 있고 좋은 분을 소장님을 만났지만, 생판 남인 경우 건축주는 더 예산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건축주는 믿을 만한 건축가와 일하고 싶어 한다. 그 믿을 만하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건축가 입장에서는 어떨까. 건축가는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는 건축주를 만나고 싶어 한다. 예산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오픈하고 자신의 취향이 뚜렷하며 구체적인 것을 정확하게 요구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있었으면 한다. 하루 종일 고객센터처럼 전화로 '안방은 이렇게 하고 부엌은 탁 트인 느낌으로 하고 싶다'라며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는 고객을 원하지 않는다. 정작 중요한 디테일은 대화 중에 빠져있고 서로가 잘못 전달된 내용으로 시간낭비만 하는 걸 그 누구도 반기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글로 남기려고 하는 것이었다. 부모님이 원하는 공간은 어떤 공간인지, 하루 일과를 여수에서 어떻게 보내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신지 말이다. 말은 휘발성이 강하고 기록의 힘은 강하다. 내가 예전에 다큐멘터리에서 인상 깊게 본 건축가와 건축주는 집을 짓기까지 몇십 통의 장문의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취향과 건축관, 집에 대한 가치관, 인생에 대한 가치관을 서로 나누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양쪽 모두 만족하는 아름다운 집이 완성되었던 것이다.


아빠는 '내가 이렇게 비싼 돈을 내고. 인생 마지막 집을 지으려고 하는데 건축가와 직접 수십 번 통화하는 건 당연하다'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30년 간 함께 살았다 하지만 제대로 된 대화가 오가지 않은 부부는 서로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대화의 양과 시간이 아니라 중요한 건 '질'이다. 


이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안된다면 그 어떤 거액의 돈이 오가도 그 프로젝트는 무산될 수 있다. 서로 간에 감정싸움이 되면 일의 효율성은 물론 모든 면에서 신뢰에 균열이 생긴다. 


나는 부모님의 삶에 대해 궁금했다. 그리고 어떤 공간을 꿈꾸는지 글로 기록하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게 중요하지 않다고 자꾸 이중창인지 삼중창인지 고정문인지 아닌지 이런 것들로 하루에도 수십 번 마음을 바꾼다. 내가 거실 앞 데크에서는 뭘 하실 거냐고 하니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하셨다. 아니다. 엄청나게 중요하다. 데크를 끝까지 길게 뺄지 아니면 그 앞에 장미를 심을 거니까 약간의 거리를 둘지는 중요하다. 시공하면서 막바지에 데크 나무 길이의 발주를 바꾸면 되는 정도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아빠와의 대화를 통해서 알게 된 내용들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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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용도실 서쪽으로 뒷문

- 다용도실 : 세탁기, 보조주방(가스 화구 2개), 냉동고, 냉장고

옷 삶 거나 보통 쓸 일은 없거나 기름 센 거 쓰거나


안방 - 옷방 - 호텔식 화장실(내려가는 욕조) 

안방 : 침대, 작은 소파, 앉아서 커피 마실 탁자, TV, 야외 볼 수 있는 액자 같은 고정 창문(서쪽)


손님용 화장실(샤워기) - 부엌 - 거실 (벽난로) 

벽난로를 하려는 이유는 바닥'기름'난방을 안쓰기 위함이다. 벽난로와 온풍기로 난방을 하려고 하셨는데 소장님 말씀으로는 그렇다면 전기난방도 요새는 생각보다 싸니 방법을 찾아보자 하셨다. 부모님이 굳이 바닥난방을 하기 싫은게 아니다. 넓은 집 난방비 유지관리비를 아끼기 위함이다.

옥상에 태양광을 설치할 예정이라 모든 걸 전기로 하고 싶어하신다.(보조주방 가스 화구만 예외)


서재(녹음실, 방음 차음: 용도 작곡, 팟캐스트, 예비 손님방 2 용도도 되게) 


손님방 1 : 침대, 손님용 옷장(캐리어 넣고, 이불 넣을 수 있는)


현관


포치


남쪽 데크


운동방 : 탁구대, 거울, 요가, 러닝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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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보니 여러분도 뭔 말인지 잘 모를것이다. 이러니 이미지가 중요하다. 아래 그림은 오토캐드가 없어서 ppt로 끄적인 그림이다. (캐드로 치면 더 빨리 완성했을텐데..... 오랜만에 캐드 도면이 치고 싶어졌다.....trim을 할 때 그 쾌감을 다시 느끼고 싶어졌다...)

아이패드 프로로 쓸 수 있는 무료 캐드 앱을 찾아봐야겠다



한차례의 폭풍우가 지나가고, 결국 엎어진 건 아니지만 감정 싸움으로 이틀을 소모한 셈이다. 결국은 좋게 좋게 끝난거 같은데 아직도 살얼음판을 걷는 것같은 기분이 드는건 왜일까. 이 프로젝트 무사히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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