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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갑 Feb 20. 2021

본능을 건드리고 역사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

스토리라는 강력한 무기

지브리의 킥은 ‘음악’

지브리는 나에게 음악으로 강하게 남아있다. 사랑스러운 캐릭터도 매력있지만 그래도 지브리를 살린 건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문화에 거부감있는 사람들에게도 지브리 음악만은 친숙할거라 생각한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이 대히트를 했고 내용도 물론 좋았지만 음악에서 일본색을 지우기는 힘들다는 생각을 종종하게 된다. 하지만 지브리 음악은 일본을 넘어서 모두의 마음에서 각자의 ‘향수’를 건드린다.


스토리는 인간의 본능

스토리는 내 삶에서 아주 큰 영향을 끼쳤다. 내가 왜 이렇게 스토리에 열광하게 된 걸까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사피엔스>를 읽고나서 알게 되었다. 내가 스토리에 열광하는 것은 본능이라고. 인간이라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는 힘으로 단결할 수 있었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인류가 멸망하기 전까지 스토리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은 그치지 않을게 분명하다. 그만큼 우리는 스토리에 환장하고 스토리에 목맨다.


지브리의 스토리는 무엇을 바탕으로 만들어진걸까. 미야자키 하야오의 일생에 대해 궁금했던 적이 없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미야자키 월드>를 읽게 되었다. 그리고 그 때당시 나는 우연하게도 일본 문학과 역사, 그리스신화에 한참 빠져있던 시기였다.


나츠메소세키의 ‘봇쨩(도련님)’과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도 재미있게 읽었었다. 일본문학이라고 하면 ‘아쿠타가와상’이 유명하다. 이 상 이름이 붙여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라는 소설가가 쓴 ‘라쇼몽​’은 예전에 영화로도 봤었고 글로도 남긴 적이 있었다. 일본 문화에 대해 알듯하면서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많았는데 <미야자키 월드>를 보면서 그 부분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조금씩 되고 있어서 읽으면서 너무 흥미로웠다.


스토리에 대한 나의 호기심은 이 책에 나오는 다른 문학 작품에 대한 소개들로 인해 연결고리가 또다시 이어진다. 루이스 캐롤, Jules Verne, Tolkien, J.K롤링에서 디즈니까지 말이다. 모든 스토리는 전하고자하는 메시지가 있다. 하지만 메시지만 있다고 좋은 스토리가 되지는 않는다. 다음이 궁금해야하고 독자를 안달나게 해야 진정한 ‘스토리’다. 재미 요소는 어디서부터 나오는 걸까. 그리고 메시지는 어떻게 우리의 뇌리를 관통하는 걸까.


<디즈니만이 하는 것>을 읽고나니 저자이자 디즈니 CEO인 밥 아이거야말로 위대한 스토리텔러구나를 실감하게 된다. 진정한 스토리텔러는 좋은 메시지를 가지고 독자가 빨려들만큼 재미나게 풀어낸다. 밥 아이거의 메시지는 리더십이었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메시지는 ‘우리가 잊고 있던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는 일’이다.


그리움이라는 매개체

<이웃집 토토로>는 나에게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일본 도쿄에서 살던 2살부터 9살까지의 7년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작품이랄까. 일본의 어린 아이들 모두 토토로 주제가를 알고 있다. 어린이집에서 산책을 나갈 때 항상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산책을 하거나 숲공원을 걸을 때마다 토토로 주제가는 선생님과 아이들 입에서 자연스레 BGM처럼 나온다. <마녀 배달부 키키>는 아빠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아빠와 영화관에서 봤던 만화영화이기도 했고 키키의 원작 소설은 아직도 우리집에 있다. 소설이 너무 재미있어 계속 읽었던 기억이 있다. <모노노케히메>와<천공의 성 라퓨타>,<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모두 세세한 내용은 기억이 안나지만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느끼게 된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가오나시라는 캐릭터와 치히로의 부모님이 돼지가 되는 장면이 나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었던 작품이다. 그 당시 나의 동생은 초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무섭다며 영화관에서 뛰쳐나가 영화가 끝날때까지 혼자 근처 서점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이렇게 지브리 영화는 나에게 추억과 연관이 깊다. 모든 사람들에게 그럴지도 모르겠다. 잊고 있던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그리웠던 무언가를 다시금 애틋해하기도 하는 매개체로 말이다.


미야자키와 캐릭터

지브리 왕국이라는 세계를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의 젊은 시절에 대해 알게 되면서 작품들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게 되었다. 그는 군수공장의 공장장었던 아버지가 전쟁당시 비행기 부품을 납품하며 축적한 부에 대해 큰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고 그건 그의 작품에도 녹아난다. 몸이 아팠던 어머니에 대한 추억 역시 그의 작품 속 다양한 연령의 여성 캐릭터를 통해서 엿볼 수 있다. 연약하고 순수하면서 또 강인한 여성상으로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용감하고 어린 남자 주인공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할머니 캐릭터(하울의 움직이는 성)가 주인공인 경우는 거의 드물다. 하지만 그의 작품 속 어린 아이에서부터 할머니까지 모든 여성은 주체적이다.


<바람이 분다>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그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국내에서 전쟁미화를 하는 것이냐는 부정적인 기사들을 많이 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는 전쟁에 나가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도 전쟁으로 돈을 번 모순덩어리였던 아버지를 기억한다. 대의명분이나 국가의 운명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가족들이 어떻게 살아야할까에만 관심있던 아버지에 대해 말하는 인터뷰기사를 보면서 그의 복잡한 심경이 전해져오는 것을 느꼈다. 70세가 넘어서도 캬바레에 다니셨고 고교생때부터 게이샤와 놀았다는 걸 자랑하는 아버지를 경박한 사람이라고 그는 말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버지와 진지한 대화를 한 적이 없는 아들로서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느낀 복잡한 감정들이 예술로 승화된 것은 아닐까. 모순덩어리인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반발했지만 그 반면에 자신도 아버지를 닮은 것같다고 그는 고백한다.


전쟁과 커뮤니티

우리는 피해국가의 입장으로 일본의 과거행실을 절대로 잊을 수 없다. 하지만 그 분노가 우리의 이성을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독도가 우리땅이라는 걸 누구나 알지만 일본인과 이성적으로 토론을 해서 그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저 ‘우리땅이니까’라는 말만 반복하는게 무슨 토론인걸까. 독도가 중요하다면서 열을 올리는 데 왜 정작 독도관련 구체적 증거를 모은 분은 일본인었던 호사카 유지 교수였던 걸까. 왜 우리나라에는 그런 사람이 드문 걸까. 귀화한 호사카 교수가 일본 이름을 계속 유지하는 이유도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이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걸 인정해야 더 힘이 실린다는 얘기를 주위로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소설 <쇼코의 미소>에서 ‘씬짜오 씬짜오’라는 단편이 있다. 그 이야기를 읽고 처음으로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한국군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피해자라는 생각만 가지고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았다고 ‘확신’하고 있는건 아닐까? 우리에게 중요한 자세는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어. 나는 깨끗해. 그러니 잘못한 너는 무릎꿇어.’라는 자세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전세계적으로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커뮤니티를 만들어내는가가 아닐까? 나는 이게 가능하려면 우리 역사뿐만이 아니라 일본 역사도 그렇고 세계 역사도 우리가 자세히 알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없이는 더 많은 분열과 분쟁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 분열을 막는 게 나는 스토리라고 믿는다. 하나의 위대한 스토리는 우리를 하나로 만든다. 아무리 바쁘다고 해고 다들 마블영화가 개봉하면 너도나도 보러갈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오스카 상을 수상했을 때 우리가 느낀 짜릿함 역시 이와 비슷할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의 스토리로 세계와 이어져있고 인정받았다는 짜릿함 말이다.


<미야자키 월드>를 읽으면서 일본문학뿐만이 아니라 세계문학에 대한 이해에도 깊이를 더해야겠다 생각하게 되었다. 스토리는 역사를 품는다. 그리고 그 역사가 위대한 스토리로 버무려졌을 때 우리는 과거를 반성하고 또 다른 과오를 범하지 않을 지혜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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