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노자의 칼, 춤추는 장자의 방패 그들의 모순을 짚어봤다.”
- 다 아는 이야기 한번 인용해 보자 -
-초나라에서 방패와 창을 파는 사람이 있었다.
그 장사꾼은 자신이 파는 방패를 자랑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방패는 매우 견고해서 어떤 것으로도 뚫을 수 없다.”
그러고는 자신이 파는 창을 자랑하면서 또 이렇게 말했다.
“이 창은 매우 날카로워 어떤 물건이든 꿰뚫지 못할 것이 없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물었다. “ 그렇다면 당신의 창으로 당신의 방패를 찌르면 어찌 되겠는가?” 그 장사꾼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한비자는 이렇게 한마디를 덧붙인다. “도대체 어떤 것을 뚫을 수 없는 방패와 어떤 물건이든 뚫을 수 없는 방패와 어떤 물건이든 꿰뚫지 못할 것이 없는 창이 어떻게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을까?”
‘모순’, 글자 그대로 뜻은 ‘창과 방패’다. 무엇이든 뚫어버리는 것과 그 어떤 것에도 뚫리지 않는 것이 동시에 있을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모순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A이면서 동시에 A 이가 아닐 수 없다.
단 언칸데, 박근혜 정권은 온전히 실패한 정권이다. MB는 삽질이라도 했지만, 이 정권은 요란하게도 죽음의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그런데도 누구도 기억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사회규범과 감성이 무뎌졌다는 이야기다.
이날 12일 오후 7시 범죄 심리학을 비춰보면, 의미심장한 그 해맑은 웃음은 뭘까! "뒷면에는 곧 닥쳐오는 검찰의 칼날에 떨고 있다" '그러면서 진실이 곧밝혀 질것이다' 라고 덧붙였다. 예리하고 잠재적인 심리적 불안정한 상태임을 엿볼 수 있다. 그렇듯이 그는 대담하거나 그리 큰 그릇이 못 된다는 뜻이다.
그는 몹시도 공항상태로 요동치듯 새벽이슬이 스며들고 있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어쩌면 고고도 방어체계 사드나 다름없다. 빈 통 사드 말이다.
우리가 지나온 과거는 독재 유신 시대를 거쳐 수많은 희생으로 빚어진 가운데, 한쪽 발을 잃으면서까지 비로소 찾고자 했던 국민적 자유였다. 절대적이거나 초월적인 자유를 찾는 것도 아니었다.
지극히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측면에서 지배당하지 않는 삶’ “저녁이 있는 삶”을 꿈꾸는 의미의 자유일 것이다.
적어도 대인이라면 명쾌한 담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국민 모두에게 영원한 스트레스 상태에 가두는 것이다.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정치는 물론 경제, 사회, 윤리,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있을 것이다.
‘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야말로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정신적 초월의 참된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는 천 개의 얼굴이 있나 보다
필자는 ‘노자’와 장자 ‘를 양날의 칼로 생각해 봤다.
칼, 즉 검과 같다. 날이 둘이다 보니 그 칼날은 상대방을 향하지 않고 내게도 위협이 될 수 있다.
노자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라”는 말은 ‘노자’ 해석의 지나온 역사를 요약한 것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나이면서 여럿인 그가 살았던 시간과 공간은 역사의 무대가 아니라 이야기의 세계였다.
그는 애초부터 어떠어떠한 철학을 겸비한 사람이었다가 아니라, 처음부터 아버지의 후광이 빚어낸 왕조시대의 길을 걸어왔던 맹물이었던 게다.
국민은 스스로 변화했고 고요한 가운데 바르게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