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드러머 Dec 22. 2021

동음이의어

어릴 때 국어 교과서에 등장하는 '네'라는 단어에 대해 불만이 있었다. '네'는 '너'의 이형태로 '너'가 주격이거나 관형격일 때 '네가'나 '내'로 변형되어 쓰인다. 그런데 이게 나를 의미하는 '내'와 발음이 같다. 


'나는 네가 좋아'라거나 주어를 빼고 '네가 좋아'라고 말할 때 여기서 말하는 '네가'가 '나'인지 '너'인지가 헷갈릴 수가 있다.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선생님이 국어 교과서를 읽게 하면 나는 '네'를 '너'로 발음했다. 그러니까 '나는 네가 좋아'를 '나는 너가 좋아'로 읽었던 것이다. 이렇게 읽어도 선생님이 한 번도 혼내지 않았다. 


'내'와 '네'는 발음상 동음이의어이고 실제 동음이의어가 우리나라 말에 상당히 많다. 그걸로 사람들을 웃기는 게 바로 아재 개그다. 이를 테면 아이들이 나한테 '아빠 사과해줘'라고 하면 사과를 내놓는 식이다. '배가 먹고 싶어'라고 하면 배를 불쑥 내민다.


웃을 수 없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오래전 일이다. 자리를 잠깐 비운 사이에 동서에게서 전화가 왔다는 메모를 전달받고 나는 동서에 전화를 했다. 그런데 동서에서는 나에게 전화를 한 적이 없다는 거다. 그래서 메모를 남겨준 직원에게 "동서에서 전화한 적 없다는데요"라고 말했다. 그 직원은 "이상하네. 분명 동서한테서 전화가 왔었는데"라며 마치 자신이 죄지은 표정으로 의아해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처형의 남편이자 애엄마의 형부, 즉 나의 동서(同壻)가 전화를 했었던 것이다. 절묘하게도 그 당시 난 실제 동서OO과 일을 하고 있었고 동서는 한 번도 나에게 전화를, 그것도 사무실로 전화한 적도 없었고 할 이유도 없었던 탓에 그렇게 오해했었던 것이다. 그 직원과 한바탕 웃고 말았다.


또 비슷한 일이 사무실에서 벌어졌다. 직장인 밴드에서 리더로 있었던 탓에 나는 대장이라고 불린다. 직밴 카톡으로 '대장 대장'하며 나를 찾는다. 그날도 직밴 단톡에서 여러 이야기를 나눴고 멤버들은 나를 대장이라고 불렀다. 회사 업무도 카톡이나 사내 메신저를 많이 쓴다. 오후 5시가 넘어 후배 직원이 나에게 '대장 나왔어요'하는 것이다. 순간 나는 놀랬다. 이 친구가 어떻게 내가 직밴에서의 별명을 알고 있는 걸까?, 아무리 그래도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대장이 뭐야 하는데, 그 후배 직원이 대장을 나에게 전달해줬다. 여기서 말하는 대장(臺帳)은 어떤 근거가 되도록 일정한 양식으로 기록한 장부나 원부를 뜻하는 것으로 신문이 최종 인쇄되기 전에 신문처럼 프린터해서 나오는 걸 말한다. 그러니까 한 무리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대장(大將)나 큰창자를 뜻하는 대장(大腸)과는 동음이의어다. 나는 후배가 전달해준 대장을 받아 들고 혼자서 껄껄 웃어댔다.


동음이의어가 꽤 있다. 애초에 다른 뜻이라면 발음도 다르게 만들어 놓을 것이지 왜 사람을 헷갈리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그건 아마 말을 하면서 이런 에피소드도 만들고 사람을 웃겨 밥벌이도 하라는 심오한 뜻이 숨어있는 게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에 대한 관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