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데몰리션>
지난주 월요일 근무 도중, 기분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불편함이 있었다. 웃기엔 재미난 일이 없었고 화내기엔 일이 잘 풀리고 있었고 내가 해내지 못해는 것도 없었다. 차라리 슬펐으면 했다. 어떤 감정이든 확실하게 느끼고 싶었는데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보통은 느낌을 표현하면 어떤 감정인지 이해가 되는데 이번에는 어떤 단어로 말하기도 어려웠다. 일요일에 만나 소 씨를 통해 알게 된 이것은 '언짢음'이었다.
이 뒤로 감정 기복이 있는 게 오히려 나에겐 긍정적인 신호라는 것을 알았다. 감정이 온몸으로 나타나는 사람이라, 웃을 땐 고개를 젖히며 돼지 소리를 내고, 화낼 땐 무언가 부숴버릴 듯 쳐다보고, 슬플 땐 눈물을 아끼지 않는다. 표정이 다양하다는 말은 이미 여러 번 들어봤다. 이런 내가 아무 얼굴도 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아픈 거다.
언짢았던 건 자신을 돌보지 않았던 것에 대한 보복이었다. 난 몸이 앞서가고 감정이 뒤늦게 따라온다. 마치 학교 가기 싫은 아이를 질질 끌고 가는 부모 같다. 그래서 아이한테 "오늘은 어때? 학교에서 뭐 할 거야? 요즘 누구랑 친해?" 이렇게 잘 지내고 있는지 물어봐야 하는 것처럼, 나도 나를 다독이면서 데려가야 한다. 이걸 알면서도 평일에는 계속 놓쳐서, 때때로 퇴근길에 노래도 안 듣고 핸드폰도 안 보고 멍 때리며 1시간을 보낸 적도 많았다.
금요일 저녁에는 굳어 있던 나를 풀어주려고 영화를 한 편 찾아보았다. 일을 할 때 BPM 빠른 노래를 들으면 집중도가 올라간다. 이때 너튜브에 검색어로 "베이스"라고 치면 쿵짝쿵짝 심장을 뛰게 하는 노래를 찾을 수 있다. 근래 자주 들었던 것 중 하나가 있는데, 이 플리의 커버가 선글라스와 헤드셋을 낀 남성이다. 다른 영상에는 이 배우가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어느 댓글에 "사실 이 장면 슬픈 장면이에요."라고 적혀있던 것이 기억났다.
영화에 몰입하기 좋은 저녁 11시. 원래 같으면 잠들어 있을 시간에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끝까지 보았다. 다행히 사춘기 아이처럼 울었다. 주인공은 아내가 자기 옆에 있다가 죽었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일을 하고 지내다가 시간이 지나서야 비통해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편지를 쓰며 감정을 깨우친다.
주인공과 내가 느꼈던 꺼림칙함을 아는 사람이 헤쳐나간 방식을 알고 싶다. 원인을 알고 지금은 건강하게 살고 있을까, 아니면 반대로 이 상황을 회피했다가 무뎌졌을까. 후자의 사람들에게 더 묻고 싶다. 내 마음을 무시할 만큼 소중한 게 무엇이었는지, 숨겨둔 뒤로 더 생활이 나아졌는지, 그리고 지금은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비가 올 땐 날 못 보겠지만 밝을 땐 날 생각해."라는 대사가 있다. 이 대사와 반대로 나는 이런 큰일을 흐린 날이 되어서야 뒤늦게 알아차렸다. 이제 나는 화창한 낮에도 나를 감싸 안길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