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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렌 Dec 24. 2023

2023 연말, 남에게 받는 평가 (1)

인상

올해는 특별하게 타인에게 나를 평가해 달라고 부탁했다. 평가받는 자리는 숫자와 관련 있었다. 성적 혹은 성과. 혹은 "난 어때?"라고 옆 사람에게 묻고는 했다. 이 말이 순간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긴 했지만, 결국 기억에 남는 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엔 대놓고 오랫동안 보려고 구글 폼으로 만들었다.


링크를 전달하려 하니 나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누군가를 아는가에 대해 판단할 때, 나는 상대의 취향을 빠르게 말할 수 있나를 기준으로 한다. 그런데 나를 대표하는 게 녹차라는 걸 알만 한 사람이 희박했다. 링크 하나를 전달하는 건 2초도 안 걸리는데, 누구에게 보낼지는 20분이나 고민했다.


12명 정도 전달했는데 이 중 8명이 답해주었다. 오늘 낮에 응답을 2번이나 읽어봤는데 누군지 추측하지 못하는 답변이 꽤 있었다. 상대는 나를 알 거라고 했으면서 정작 나는 상대가 누군지도 상상도 못 하는 게 부끄러웠다.


8명이 읽어본 질문과 응답을 공유한다. 맞춤법이 수정된 답변이다.


1. 자, 이제 시작해 보겠습니다. 스트레칭이 필요해요. 머리 위에 무엇이 있나요?

모자 썼어요

모니터

책장

아무것도 없다

천장이요!

예? 머리 위예요? 아무것도 없는데요

버스 천장...

침대 헤드


회사 근처 지하철역의 천장을 보고 이 질문을 떠올렸다. 퇴근을 할 때 옆에 누군가 있으면 천천히 걸으며 하늘을 쳐다보곤 했는데, 혼자 다닌 뒤로는 급히 누군가에 쫓기듯 걸어가며 올려다본 기억이 없었다. 이런 지 한 달이 되어 이제야 깨달았다. 퇴근길 지하철역에서 카드를 찍기 전에 위를 한 번 쳐다보았다. 성당처럼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걸 1년 만에 알았다. 가까이 있다고 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었다.


답변 중 '모니터'가 있는데, 머리 위에 모니터가 어떻게 있는지 모르겠다.


2. 저는 요즘 사람을 보면 첫인상을 기억하려고 해요. 나중에 친해져서 알려달라고 저에게 물어보면 답해주고 싶어서요. 제 첫인상을 기억하세요?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사실 좀 차가워 보였어요 근데 잘 웃는 걸 보고 한 번 말해보고 싶다는 생각 했었어요

확실한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어떤 때에는 밝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고, 어떤 때에는 집중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이 매우 상반된 것 같아 확실한 것을 좋아하는구나라고 생각이 든다.

안경을 쓰고 얼굴이 빨간 아이

사실 지은 양과는 조교와 학생 사이로 시작된 관계인지라 진짜!! 처음!! 본 날의 인상은 기억나지가 않습니다... 우리의 첫 만남은 2019년 9월 어느 날 야간의 컴퓨터 실습실 안에서, 였을 텐데 그때의 전 매우 긴장해 있었고, 제 앞엔 너무나도 많은 학생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굳이 따지자면 지은 양과의 첫 만남, 제가 기억하는 지은 양의 첫인상은 지은 양이 저에게 수업 내용 관련해서 질문하러 왔을 때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쾌활하고, 열정이 넘쳐 보였어요. 항상 혼자 뚱하게 앉아 있는 저에게 이토록 밝게 다가올 수 있다니... 참 신기하고 멋진 친구네!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있는 활발한 모습이 기억나네요

때는 고등학교 입학 1학년 첫날, 반장을 뽑기 전까지 임시 반장이 필요해 누구 할 사람 없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아주 정직한 자세로 손을 번쩍 든... 내 앞의 이지은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 보통내기가 아닐 것 같단 생각은 했었습니다만...

넵, 처음엔 뭔가 차가운 인상이었습니다!


사람과 친해지면 첫인상을 물어본다. 적어도 차갑다는 인상은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예상 외다. 처음에 따뜻한 인상을 주려면 말을 자주 걸고 챙겨주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는데, 일할 때는 내 일 하기도 바빠서 주위를 둘러볼 시간이 없었다. 누군가 새로 오면 내가 집에 더 늦게 가더라도 말 한마디 더 붙여야겠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라는 느낌을 주고 싶다.


내가 질문을 던진 이들 중에 첫인상이 기억에 남는 사람이 얼마나 있나 했는데, 거의 없었다. 내가 다수에 속해있을 때는 소수를 유심히 살필 수 있었지만, 내가 소수가 되었을 때는 분위기를 익히느라 사람 한 명 볼 여력이 되지 않았다.


3. 그때의 이미지와 비슷한가요, 혹은 다른가요? 지금의 저를 어떤 색과 비슷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차갑다가 첫인상이면 정말 달라요 색으로 표현한다면 초록색?

지금도 동일합니다. 색으로 비유하자면 하늘색? 낮과 밤이 다르니까

비슷, 파란색

비슷하기도 다르기도 함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근래엔 지은 양의 상징과도 같은 해맑은 웃음보다는 깊은 생각을 하는 모습, 친구의 일도 자기 일처럼 진지하게 고민해 주는 속 깊은 모습이 더 눈에 띄었던 것 같아요. 지금의 지은 양은 '갈색'과 비슷합니다! 열정적인 붉은색이 좀 더 따스하게 무르익은 듯한 느낌이랄까요...

그때 이미지랑 비슷한 것 같아요 하늘색 같아요

비슷한 것 같아요. 마음은 초록 같고 분위기는 빨강 같네요.

그때의 이미지와는 완전 반대이고 노란색이나 하늘색!


나는 나를 옅은 갈색으로 보았다. 가물었던 흙이 영양가 있는 것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에 있는 거 같다. 이 말을 떠올릴 땐, 살아갈수록 감도가 떨어지는 거 같아 억지로라도 느끼는 능력을 욱여넣고 싶은 욕구도 있었다.


위의 답변도 예상외였다. 하늘색. 아쉽게도 내가 "이 색이 어떤 것을 의미하나요?"라고 물어보지 않아서 이 색이 주는 느낌을 내 멋대로 추측해야 한다. 청량한가? 깨끗한가? 맑은가? 이런 단어가 나와 어울리는지 모르겠다.


초록색, 빨간색, 노란색은 보듬어주는 느낌이 강했다. '낮과 밤이 다르니까'라는 말이 나의 다방면을 보여주는 문구였다. 앞에서는 맑게 웃으면서도 뒤에서는 생각이 많은 나를 보면 짙은 어둠 같은 사람이라고 느낄 법도 했다.


카피바라


4. 저는 누군가를 표현할 때, "너는 OO색 같은 사람이야."라고 말해요. 어떠한 특징을 분명하게 표현하기 어려울 때, 그 색감이 주는 느낌으로 대신해서 말할 수 있거든요. 그러면 저는 어떤 동물 같나요?

다람쥐

카피바라... 그 이상 그 이하도 설명할 수 없다...! 친화력 갑 동물

호랑이

살구색 펭귄

강아지? ㅋㅋㅋㅋㅋㅋ 제가 강아지 종은 잘 모르지만요... 보통 강아지들 주변 사람들에게 밝게 다가가고, 좋다고 웃어주면서도 자신이 아끼는 인간이 힘들어하거나 울면 가만히 등 맞대고 앉아서 위로해 주잖아요. 그런 모습들이 유쾌함과 진중함을 다 가진 지은 양과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람쥐 같은데요 어.. 뭔가 이런저런 여행이나 콘서트나 문화생활도 하면서 일도 하면서 바쁘게 사는 것 같거든요 다람쥐가 후다닥 후다닥 다니니깐? 비슷해 보여요

동물과 친하지 않아서 마땅한 걸 떠올리고 싶어도 떠오르지 않네요.

가끔은 강아지 또 가끔은 쿼카, 아! 캥거루도 있어요


사람과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 카피바라나 강아지를 떠올리는 거 같다. 다람쥐, 펭귄, 쿼카도 이해할 수 있는데, 캥거루는 도통 모르겠다. 누군가 잘 감싸 안는다는 뜻으로 의역해 본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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