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나는.
노란색 SNS 친구 목록에 있는 인원은 90명. 100명이 넘지 않도록 유지한다. 간혹 술자리에서 번호 교환을 하는 자리가 있어도 1년 내로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되면 숨김 처리를 하고 숨김 목록에서도 삭제한다. 이전에 친구가 된 적이 없는 것처럼 되돌린다. 목록에 보이는 이들은 내가 주기적으로 연락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질긴 사람이라, 한 번 연락을 시작하면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는다. 어느덧 누군가 떠오르면 메시지 버튼을 눌러 "잘 살아? 살아있어? 뭐 해?"라는 전 애인이 물어볼 법한 말을 건넨다. 통상적으로 이 말이 '너의 인생을 통찰해 보아라.'라는 말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들 알고 있다. 그래서 "나 잘 살지."라는 답변을 기대하지만, 무슨 일인지 올해는 "나 힘들어. 아파."라는 말을 더 자주 들었다.
그들이 나에게 아프고 힘들다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나를 말해도 되는 상대로 받아준 덕분이다. 이럴 때 인생을 못 살진 않았구나, 하고 되새긴다. 나에게 들어오는 안부인사는 명절 인사밖에 없어서 아직까지도 답변을 하는 게 어렵다. '잘 못 사는 거 같은데 잘 사는 척해야 하나, 못 살고 있다고 징징거려도 되는 건가.' 상대가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 그 순간마저 판가름을 한다는 것이 현실이다.
"잘 산다"는 무엇을 의미할까. 나에게 잘 사는 것은 사랑을 느끼는 것이다. 곰인형을 꽉 끌어 안아 털이 내 얼굴을 간지럽히는 것처럼 나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우러주는 다른 사람의 온도가 필요하다. 그동안 내가 "혼자서도 잘 살아."라고 말했던 건 다 거짓말이었다. "나는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야."라고 말하고 다니는 게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거 같아 부끄러워서 강한 척한 거였다.
상대가 내 말을 들어주거나 상대와 포옹했을 때 푸근하다. 나의 상태를 인정해 주는 상대의 모습이 위로가 된다. 힘이 되어서 다시 살아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마치 울고 있을 때 더 울어도 괜찮다고 말해주거나 주사를 맞을 때 "아유, 아프겠다, 어쩌지!"하고 호들갑을 떨어주는 것처럼 상대가 나의 본모습을 바라봐주는 게 참 고마웠다.
연락을 하려는 내 모습은 나의 상태를 묻는 것이기도 하다. 글자를 적는 날 보며 "나 이 사람 좋아하네?"라며 확신을 가지기도 하지만, 내 체력이 상대의 감정을 받아줄 준비가 되지 않아서 연락하길 주저하고 넘어가기도 한다.
한 달 전쯤 본가에 있는 김 씨를 만나 공원 벤치에서 한 시간 정도 말하고 온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그에게 "나는 한때 부모님이 언제 돌아가실지 몰라 안절부절못했던 순간이 있었는데, 각자 잘 사는 게 최선이더라."라고 전했다. 그때 나의 눈빛은 건너편에 있는 가로등을 향해 있었고, 내 눈을 본 그는 내 눈에 비친 가로등 빛을 보며 어쩌면 빛을 눈물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저녁에 헤어지는 길, 그는 나에게 "힘들 때 혼자 앓지 말고 연락해."라며 나를 보냈다.
나는 내가 힘들 때 혼자 생각을 다 끝내고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게 더 편하다. 그래서 이런 방식을 고수해 왔는데, 내가 힘들었던 당시에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찾지 않았다는 것은 그 상대에게는 '아, 내가 도움이 되지 못했구나.' 하는 아쉬움과 씁쓸함을 줄 수도 있겠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명확하게 말하지는 못해도 내가 안부를 툭 던지는 것처럼 "나 지금 부모님 관련되어서 걱정되는 게 있는데, 만나서 말할게."라고도 할 수 있는 거였다.
나의 꿈은 다른 사람에게 단단한 존재가 되는 것이었는데,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일단 나를 챙겨야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 '이 사람한테는 기대도 되겠구나.' 하는 감정의 깊음을 줄 수 있다는 걸 글을 써내려 가면서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