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있는.
연말이 되어 남은 연차를 몰아서 썼다. 마음이 숭숭한데 혼자 집에 있으면 우울감이 깊어질 거 같아 도피하려 했다. 그중 나를 반기는 곳은 본가였다. 둘 이상이 되고 싶을 땐 우리 집에 누굴 부르지 않고 내가 나간다. 내가 그 공간에 남아있는 것도 싫다.
가기 하루 전에 알렸다. 약속이 깨지면 쌓인 기대감이 무너져 속이 쓰리다고 부모님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다. 당신들의 부푼 마음에 부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제는 가져가는 짐도 줄이려고 한다. 회사에서 본가에 내려갈 때 무엇을 챙기는지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나는 옷가지, 화장품, 노트북, 헤드셋, 충전기 등 누가 봐도 어디 간다는 티를 냈다. 김 씨는 "우리 집인데 왜 그렇게 많이 가져가요?"라고 했다. 챙길 게 많다는 건 그만큼 왕래가 없었다는 걸 증명한다.
엄마는 나에게 "집에 좀 내려와."라고 하지 않으셨다. "본인이 오고 싶으면 오겠지. 오라고 하면 오고 싶어지나? 내가 오고 싶도록 환경을 만들어 두는 게 중요하지." 이게 엄마의 마음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본가라는 퍼스널 브랜딩에 빠져 살았던 것이다.
본가에 살 때는 집안일을 해본 적이 없었다. 엄마의 만족도를 채우지 못한 나의 잘못도 있었지만, 편하게 해 줘야 집에 들어오고 싶어 한다는 엄마의 마음이 녹아있었던 것이다. 여기서는 엄마와 나의 관점 차이가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설거지부터 신발 빨래까지 다 해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의다. 집안일을 아예 안 시키면 자녀는 집안일을 가족 구성원이 나눠서 하는 게 아니라 엄마가 하는 거라고 여기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는 무엇을 해줄 수 있나 고민해서 얻은 결과는 '옆에 있기'였다.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은데 내가 들으면 지루해할 거 같아서 부모님께서 일부러 자리를 피하시는 거 같았다. 실제로 재미없기도 했다. 기승전결 없이 기승기승을 반복하고 있을 때. 그땐 대놓고 "그래서 뭐라고?"라며 말을 끊었다. 다행히 나의 건방진 태도의 의미를 이해해 주셨다. "내가 전에 말했던 거 같은데"로 시작하거나 아예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를 하신다. 결론적으로는, 부모는 자녀와 말을 하고 싶어 하는데 방식을 몰라서 헤매고 있는 것이다. 부모도 부모가 처음이니까.
오늘 내가 잘한 것은 '가만히 있기'였다. 수영장에 다녀온 뒤, "아까 먹은 사과 남아있는 거 있어?"라고 물었더니 올해 추석 사과 마지막으로 남은 거라며 엄마는 귤을 사다 주셨다. 입에 귤 반 절씩 집어 넣으며 멀쩡한 의자를 두고 침대에 기대 바닥에 앉아있었다. 엄마는 "집에 보풀 있어서 못 입는 옷 있어?"라며 면도기를 들고 와 보풀 없애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그리고는 엄마를 화나게 한 취객 아줌마가 누군지 알려주셨다. 설거지를 할 때는 돌하르방처럼 서있었다. 또 귤을 까먹으며 있었더니 "많이 먹어서 감기를 이겨."라고 하셨다. 으음으음 하며 들을 수 있는 말들이 내 열을 지켜주는 목도리 같다.
이런 나를 만들어준 일화다. 대학생 때 엄마랑 말다툼을 하며 "아빠는 왜 먼저 전화도 안 하면서 나보고 전화 안 했다고 뭐라고 해?"라고 했더니 엄마는 "아빠는 너 방해될까 봐 못하는 거야. 아빠 기다리고 있어."라고 했다. 우리는 서로 기다리고 있는데 용기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