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쾌락이 아닌, 편안함
내가 느꼈던 행복이란 감정 중엔 쾌락이 있다. 도파민이 폭발하는 시기에 '난 행복해!'라며 다시 그 순간이 오길 바란다. 그 강력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때를 몇 번이고 되새긴다. 그리고 나에게 다시 물어본다. '최근에 행복했을 때는 언제야?'라고 하면 쾌락의 순간이 아닌, 편안한 사람과 있을 때였다.
5년 전, 가끔 서울에 올라올 때가 있었다. 본가 근처는 건물이 높지도 않고 건물 사이 간격이 널찍하여 빌딩숲이라 부를 만한 곳도 없고, 건물이 낙후되어 30년 전 역사를 보는 듯하다. 그때의 서울은 나에게 "여기서 우리나라 사건/사고가 다 일어나. 보고 있나?"라며 외치고 있었다. 눈에 그 높은 빌딩을 다 집어넣을 듯이 쳐다봤다. 이건 옆에 있던 사람이 내가 그럴 수 있게 지켜줬기에 가능한 거였다.
최상 혹은 최하의 기분을 느꼈을 때나 꽤 좋은 상태가 오래 지속되었을 때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후자에 편안한 상태가 포함된다. 편안함은 혼자서도 만들 수 있다. 침대 속에 들어가서 발을 이불 밖으로 내보내고 찬 공기를 들이켤 때. 빗소리를 들으며 술술 읽히는 책을 읽을 때. 따뜻한 카페라떼를 한 잔 쥐고 창 밖을 바라볼 때. 커피와 케이크를 하나씩 시켜 카페에서 음악을 들으며 나와 관계없는 것을 지켜볼 때. 그런데 이렇게 혼자 있을 때는 행복하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신경 쓸 게 없어 안정적이긴 하나 나를 자극할만한 대상이 아무것도 없다.
약간은 긴장된 상태가 회상된다. 내가 아닌 사람과 함께 있을 때. 10년 넘게 만난 친구들이 우리 집에 와도 혼자 있을 때보단 불편하다.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불편하진 않은지, 뭘 해줘야 하는지 관찰한다. 결과를 계속해서 도출하려 하고 가만히 있질 못한다. 그런데도 같이 있으면 몸은 바빠도 마음은 편하다. 내가 있는 공간에서 누군가 와서 웃고 간다는 게 의미 있는 일이 된다.
심지어는 누군가 오길 바라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상대의 침대 위에 있는 인형처럼 옆에 있어주고 싶고, 때때로는 빗소리처럼 시원하게 마음을 쓸어내려주고 싶고, 상대의 구경거리가 되고 싶다. 내가 있는 곳에 상대가 또 오고 싶다고 했을 때 흥이 났다.
반대로 내가 자주 찾는 곳도 있다. 그곳에서는 새로운 무언가를 기대하는 건 아니다. 예전처럼 나를 감겨주는 공기를 바란다. 이런 것처럼 내 곁으로 와주는 상대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