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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렌 Jan 14. 2024

나 안 행복해

힘들다는 말을 표현할 때

최근에 내가 자주 하던 말이다. 누가 나에게 행복하냐고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나의 불편한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 안 행복해. 내 주위의 사람은 짜증난다, 속상하다고 표현하지, 행복이라는 단어는 잘 쓰지 않는다. 왠지 사람들은 이 단어를 사용하기 부담스러워하는 거 같다.


나는 행복과 사랑이라는 단어를 자주 입에 붙이려 한다. 삶에서 중요한 부분일수록 무게감이 느껴져 잘 사용하지 않았는데, 반대로 밀도 있는 것일수록 더 가까이 해야 하는 거였다. 덕분에 답변하기 쉬운 상황도 생겼다. 김 씨가 나에게 "친구들이 에버랜드 가자고 하는데 내가 가기 싫다고 했더니, 놀이기구 안 타도 되니까 옆에만 있으라고 그러네."라고 하길래, "사랑이네."라고 했다.


친구끼리도 사랑한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친구들에게 사랑한다고 말은 못 한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면 계속 웃음이 나온다. 어제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저녁 약속이 있었는데 독감에 걸리는 바람에 나가지 못했다. 이들과 영상통화를 했다. 한 명은 내 얼굴 보며 웃다가 커피를 두 모금도 하지 못했고, 나는 그들을 보고 독감 걸린 날 중 제일 크게 웃었다. 그들이 찍은 4컷 사진이 마음에 들어서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바꾸어 두었다. 사랑이다.


행복과 사랑은 표현이 차이가 있다. 행복은 나의 상태이지만, 사랑은 나와의 관계를 지칭한다. 그래서 '나 안 행복해'처럼 부정어를 넣으면 '나 안 사랑해. OO를'이 된다. 무언가를 아끼고 애정하는 마음에는 도착지가 있다. 반면 행복은, 나 혼자서 쥐락펴락할 수 있기에 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거다.


이 두 단어를 영어로 바꾸어서 사용하는 경우는 많다. 반려동물의 이름에 해피가 들어가거나 love를 박아둔 장신구는 많다. 10년 전에는 자동차 쿠션을 만들 때는 뽀뽀하는 남녀 캐릭터 위에 LOVE를 새겨두는 게 유행이었다. 연애편지를 쓸 때는 검은색 종이에 화이트 펜으로 LOVE를 크게 적어두고 그 주위에 빼곡히 글자를 채우고 펜을 다 쓴 것을 증거로 내놓기도 했다.


나는 누구인가 고민한 이후로 이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상담을 받으면 "언제 행복하세요?"라는 질문을 듣는데, 그때는 과한 느낌을 받았다. "언제 기쁘세요?"라고 들었다면 비교적 가볍게 느꼈을 거다. 언제 행복한가에 대해 10번 정도 되뇐 후, 이게 내가 나에게 매일 물어봐야 할 질문이란 걸 알아챘다.


"무엇을 사랑하세요?"라는 질문은 들어본 적이 없다. 대신 "자기 자신을 사랑하세요?"라는 질문은 들어봤다. 사랑한다. 내가 피곤하지 않게 12시 반 전에는 자려고 하고, 활동량이 적어 몸이 아픈 날엔 산책도 하고, 녹색 음식을 먹지 않은 나를 위해 취나물을 사서 먹었고, 건강한 피부를 위해 씻고 자고 옷도 세탁해서 입는다. 나의 감정과 감상을 위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옆에 붙여둔다. 이게 나를 위한 사랑이다.


잠들기 전, 계속해서 나에게 물어보고 싶다. 지금 행복한가,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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