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두려워하는 순간
지인을 만나면 근황을 말한다. 오늘 최 씨는 얼굴을 보자마자 근래 힘들었던 회사 생활에 대해 토로한다. 마침 그가 힘들어하는 시기에 내가 옆에 있다는 게 나를 기쁘게 한다. 그는 내가 없을 때 침대에 등을 기대고 소리를 내며 울었을지 몰라도, 그 시기를 지나 보내고 나를 만나러 와준 것이 고맙다.
그가 아팠던 시간 동안에 나도 다른 일로 고통받고 있었다. 이 세상은 새로운 걸 시도하려는 사람에게 가혹하게 대한다. 내가 찾아보았던 것과는 달리 나만의 이야기가 새롭게 생긴다. 영상에서 알려준 대로 안전한 방식으로 집 계약을 하고 싶어도 어째 집주인은 계약에 대해 잘 모르는 거 같고, 회사 팀 내에서 새로운 걸 적용하려고 해 봐도 나와 같이 하려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나도 어찌 시간을 보냈다.
한바탕 과거를 풀고 나면 '그래서 이제는 뭘 할 건데'에 대해 말한다. 고맙게도 내 지인들은 말해준다. 단단한 나무토막에 못을 박기 어려운 것처럼, 나는 다른 이에게 내가 하고 싶은 걸 밝히는 게 어렵다. 이미 내 속에서는 못처럼 강한 마음이 있는데 망치처럼 누군가 나를 밀어주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세상엔 이런 사람이 별로 없다.
오늘 나는 그에게 직무 전환을 하고 싶다는 말을 하고 왔다. 이 말을 꺼내기 어려운 이유는 이 마음가짐이 내 인생에서 너무나 큰일이라는 걸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말은 이제까지 했던 거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말을 곱게 하는 거 같아 스스로 껄끄럽다.
나는 새롭게 도전하는 법과 남에게 나의 진심을 당당하게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산을 오르다가도 갈림길에 서면 방향을 틀 수도 있고 돌아갈 수도 있는 건데, 이상하게 정상으로 올바르게 가지 않고 산을 빙빙 돌아서 가면 시간만 끌고 목표 달성은 하지 못하는 바보가 된 거 같다. 실은 나무도 보고 산속에 사는 생물도 보고 산과 어우러지는 하늘도 보면서 느낄 수 있는 게 많은데, 나는 정상만 보고 가는 법을 배웠다.
이런 내 허점을 알아서, 이제는 내가 망치가 되어 나를 밀어보고 있다. 오늘 나는 그에게 유품정리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난 삶과 죽음은 맞닿아있다고 생각하고 '무엇이 나에게 행복일까, 어떻게 하면 잘 죽는 삶이 될까'를 매일같이 고민하며,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보내야 한다면 옆에서 돕고 싶다. 남들에 비해 더러운 걸 참지 못하고 계속 치우는 버릇이 있으며 곰팡이나 벌레를 보고 구역질을 하면서도 끝내 치우고야 마는 내 성향 덕도 있다.
그를 포함한 다수가 나에게 "너는 뭘 해도 될 사람이야."라고 말해줘서, 김 씨가 나에게 "난 네가 뭘 할지 궁금해. 얼른 새로운 걸 하고 나에게 말해줘."라고 덧붙여줘서 의지가 된다. 이 힘을 받고 나아가는 내가 필요하다.
이렇게 말해놓고 며칠 뒤에는 "해보니까 나랑 안 맞는 거 같아."라며 다른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시도해 본 게 어딘가. 이건 체육관에서도 배웠다. 얼마 전 누군가 "15kg 들고 윗몸 일으키기 하고 싶은데 무거워서 못할 거 같아요."라고 했더니, 앞에 계신 코치님께서 "한 번만 해봐도 괜찮아요. 시도한 거잖아요."라고 하셨다.
속에 품은 게 있다면 말해야 한다. 날 지지해 줄 사람은 차고 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