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에 미용실에 갔다. 서비스를 받으러 간 거였지만 목에 긴장이 들어갔다. 직원들은 나를 편하게 해주기 위해 가운도 입혀주고 머리도 감겨주었는데 나의 상태는 풀리지 않았다. 목과 어깨에 힘이 축 늘어지는 건, 집에 돌아온 후였다.
생각할 거리가 있는 날이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꼬리물기 식으로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오늘 아침에는 빨래를 널면서 왜 나는 집에 혼자 있고 싶어 하는지 물어봤다. 나는 나만의 박자로 나에게 질문/대답을 하고 싶은데,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상대의 속도에 맞춰야 하기에 혼자 있길 택한 거였다.
노래에 속도가 있는 것처럼 말을 할 때도 박자가 필요하다. 나는 혼자 있을 때보다 타인과 있을 때 박자가 빠르다. 다른 사람이 기다릴 수 있는 시간 안에 질문을 듣고 답변하느라 바쁘다. 질문의 의도대로 답을 하기 위해 긴장 상태가 된다. 상대와 나의 관계나 질문의 깊이가 집중하는 정도에 영향은 주지만, 편안한 관계거나 가벼운 질문이라고 해서 긴장이 없는 건 아니다.
영상을 보지 않을 때 나에게 집중이 잘 된다. 이때 나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했던 내용을 복기한다. 어제는 무슨 책을 읽냐는 질문에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고 했다. 왜 읽냐고 하길래 사람들은 살면서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궁금해서 그렇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 같은 질문을 다시 생각해 보니, 다른 이유도 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상황을 설명할 때 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져서 상대에게 질문을 하지 못하고 말이 끊긴 적이 있었다. 나에게 감성을 넣기 위해서 책을 읽었던 것이었다.
아쉽게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내 주위 청년들은 중요성은 알지만 경제적 여건으로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결혼을 한 뒤에야 이에 대한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결혼을 한다면 각 방을 쓰고 싶다. 연애할 때 항시 붙어있지 않는 것처럼, 부부가 되어서도 개인의 시간을 존중하는 관계가 되고 싶다.
앞으로도 꾸준히 나를 혼자 내버려 둬보려고 한다. 며칠 뒤에도 나는 나를 위해 가사 없는 음악을 켜고 잠자기 전에 책을 읽고 스탠드 하나 켜놓고 글을 쓰고 있을 거다. 그때의 감정이 무엇이 되었든 이 시간이 나를 단단하게 해주리라는 확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