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알아가는 법
만나는 사람들에게 "쉴 때 뭐 해?"라고 물어본다. 대부분 "누워서 유튜브 봐."라고 한다. 조금 더 그 사람을 알고 싶어도 갑자기 턱 막혀버린다.
누군가 나에게 질문한다면 난 이렇게 대답한다. 평일 퇴근 후에는 집에서 밥을 먹고 스픽 앱으로 영어 공부를 하거나 설거지를 한 다음에 8시 크로스핏 수업을 들으러 가. 샤워하고 집에 오면 10시 전이 돼. 그때는 책을 읽거나 보고 싶었던 영상을 봐. 토요일 낮에는 크로스핏 수업을 들어. 그 전까지는 집안일을 해.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로 바닥을 닦아. 운동 후에는 너처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혼자 책을 읽어. 일요일도 비슷한데, 그날은 브런치를 올리는 날이라 글을 써.
나도 영상을 보긴 하지만, 그게 주가 되진 않는다. 영상은 글자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배움과 재미의 장소이다. 에너지를 흘려보내는 공간으로 두지 않는다.
근래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다. 책을 읽다 보면 발전이 적은 나라로 방글라데시가 나온다. 책에 글자로 각인이 될 정도면 얼마나 안 좋은 걸까 하고 찾아보다가 여행 영상을 보게 되었다. 환경 문제가 부각되었다. 이 나라에서는 쓰레기 냄새가 나서 숨을 쉬기 어렵다고 한다. 폐수 위에 쓰레기가 흐르고, 심지어 썩기 어렵다는 플라스틱이 말라비틀어져 있다.
이걸 한 번 봤더니 이제는 알고리즘이 환경과 여행 관련된 온갖 것을 퍼부었다. 어제는 KBS 다큐에 나온 인도의 물 공급 문제를 다룬 것을 보았다. 정부에서 수도 시설을 만들 의지가 없다. 국민들은 4개월 넘게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하기도 하며, 물을 잘못 먹었다가 평생 병원 신세를 지기도 한다. 인도에 있는 코카콜라 공장에서는 정부에서 깨끗한 물을 공급받고 콜라를 판다. 국민들은 더러운 물을 마실 바엔 콜라를 택한다.
알고리즘만큼 인간의 취향을 빠르게 파악하는 건 없을 거다. 그래서 이젠 질문을 바꿨다. "근래 무슨 영상 봤어?" 혹은 "어떤 유튜버 좋아해?". 10년 친구인 이 씨는 아침에 준비할 때 게임 영상을 보았다. 게임하는 건 싫고 보는 건 좋다고 했다. 매일같이 한 회사에 있는 동료는 종로를 떠올리게 하는 트로트풍 음악을 들었다. 모니터를 보고 재생 목록까지 훔쳐보진 않았다. 작가인 소 씨는 성우 덕질을 했다. 한 달 간격으로 만나는데도 성우에 대해 말해본 적은 없었다.
질문 하나만으로 사람을 알아갈 수 있다. 불을 끈 채로 손을 더듬어 마침내 원하는 물건을 찾게 된 것 같다. 이제까지 상대가 스스로 말해줄 때까지 기다리기만 한 점에 대해 반성한다.
취향을 알아가는 것은 관계가 깊어지는 과정의 일부다. 영상의 시대가 펼쳐지는 한, 나는 이 질문을 계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