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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렌 Mar 17. 2024

헤어지는 법

사람이든 행동이든

헤어진다, 하면 연인이 떠오른다. 사귀던 사람과 헤어지는 것도 잘했다. 처음부터 잘한 건 아니었다. 학창 시절 내내 만났던 그와는 헤어질 때 질질 끌었다. 난 관계를 끊는 걸 원했던 게 아니라, '내가 이렇게 힘드니까 한 번만 봐주라'라는 말로 던진 거였는데 진짜로 헤어져버렸다. 몇 년의 관계는 한 통의 전화로 멈추었다.


이후로 몇 번의 헤어짐이 있었다. 이 과정을 얘기하면 친구들은 나에게 '차갑다, 잔인하다, 매몰차다, 아쉽지 않냐'며 나 대신 감정을 내보였다. 손톱 끝에 어설프게 자란 것이 거슬려 피가 나더라도 뽑아내야 하는 것처럼, 한 번 신경 쓰이면 정리를 해야 했다.


관계가 나아질 여지가 보이지 않았다. 태풍이 몰아친 다음, 내일은 태양이 뜨겠지 하며 미래를 보는 것처럼 나는 사람이든 영상이든 나의 버릇이든, 모든 것에 기대가 있었다. 내가 이 사람을 만난다면, 내가 짧게 요약된 영상을 본다면, 내가 12시 이전에 잠드는 습관을 만든다면 나는 뭐가 달라질까?


이런 내 행동에 후회한 적이 없었다. 끝을 볼 때까지 매달려봤다. 사람과 멀어질 거 같을 때는 경고했다. 영상을 볼 때는 스크롤을 내렸을 때 영상이 나에게 주는 이점이 뭔지 떠올렸다. '이걸 내가 지금 봤을 때 오늘 저녁에 잠들기 전에 떠올릴까?' 아니라면 껐다. 1시 넘어서 잤더니 다음 날 늦게 일어나 '난 오늘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겠네' 하며 시작부터 우울했다.


정. 한 사람을 오랫동안 만나면 "너 정 때문에 만나는 거 아니야?"라는 말을 쉽게 듣는다. 나에게서 떼어내기보단, 나에게 헤어짐은 '보내주다'와 같았다. 화장을 하고 강에 뿌려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처럼. 가라. 과정 속의 나는 항상 한숨을 쉬고 있었지만, 그 한숨은 나에게 숨을 쉬게 했다.


다음에 사람들을 만날 때는 무엇을 끊었는지 물어봐야겠다. 이제까지 뭘 시도했냐고 물어봤지, 한 번도 뭘 그만뒀는지 물어본 적이 없다.


헤어지는 걸 잘하면 새로운 것을 대면하는 것도 잘하게 된다. 이런 시도가 반복되면 '나 꽤 강한 사람이네' 하고 스스로 칭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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