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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렌 Mar 31. 2024

인연

"이것도 인연인데, 커피 한 잔 하시죠?"라는 말을 듣는다. 사람이 살면서 만날 수 있는 만남은 수만 가지. 출퇴근길에 5분만 서있어도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100명은 넘을 텐데, 그 사람들과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간다. 이런 걸 따지면, 누군가와 이야기할 수 있는 순간이 거의 없다.


한때 유명했던 줄임말인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 난 언제나 "이 세상에 자만추는 없어."라고 주장하고 다녔다. "네가 걸어 다니면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한테 개인적인 말을 걸 일이 있어? 없잖아. 아니면 물건을 바닥에 떨어트려서 누군가 주워줘. 그 사람이랑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애초에 누군가 주워줄 거라는 전제 자체가 잘못됐어."라며 '자연스러운'이 없음을 강조한다.


인연은 강제로 만들어야 한다. 내가 어딘가로 속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그것도 없으면 나이를 먹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되는 건 없다. 내가 상대와 친해지고 싶으면 말 엮을 거리를 하나라도 찾아야 한다. 나의 특기는 무조건 칭찬하는 것이다. 온라인으로 만났다가 어제 오프라인으로 처음 만난 분께 "화면에서 뵈었던 것보다 얼굴이 작으시네요. 전해 들었던 대로, 말투가 조곤조곤해서 잘 들리네요."라고 했더니, "요즘 어려운 거 있으세요? 뭐든 말하세요. 제가 다 해드릴게요."라고 하셨다.


내가 맛보았던 마지막 자연스러운 만남은 고등학교였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반배정을 받아서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과 엮여 지금껏 연이 이어졌다. 이 이후로는 다 나의 의지가 담겨있었다. 대학 원서 덕분에 본가에서 고속버스로 4시간이 걸리는 먼 곳까지 가게 되었고, 50곳이 넘는 입사 원서를 넣어서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들어가게 되었다.


만남을 위해선 때론 돈이 들어가기도 한다. 근래 많이 뜬 결혼정보회사는 한 번에 몇 백만 원이라고 들었다. 동아리 앱 내에서도 1회마다 돈을 받기도 한다. 내가 보았던 모임은 만나서 책을 읽고 점심에 먹을 라면을 가져가는데도 돈을 냈다. 장소 대관비였다. 처음에는 '내가 이 돈 주고 여길 들어간다고?' 싶다가도, 이건 투자야,라는 마음이 한 번 탁 서면 누구 하나라도 연락처 따보겠다는 마음에 들어가게 된다.


돈을 줘서까지 연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평소에 우리가 누군가와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소통할 수 있는 외부 사람은 온라인 커뮤니티 속 구성원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들과 대화한다고 할 수 없다. 댓글로 가득 찬 공간에서 우리는 뿌려진 의견을 훑어 읽기에 바쁘지, 그들과 직접적으로 오고 가는 대화를 하진 않는다.


연을 만들면 기회가 생긴다. 나의 장점을 봐줄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자존감을 높이는 데 좋고, 나에게 필요한 개선점을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성장에 더욱 좋다. 사람이 살면서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잘못됐다는 지적을 받을 일은 선생님 말고는 없다. "아유, 됐다. 뭘 말해주냐."라고 하면서 스쳐 지나갈 가능성이 매우 높기에, 쓴소리 해줄 사람을 곁에 두는 게 중요하다.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 1시간가량 독서에 대해 이야기했다. 주제는 '죽음'이었다. 우리는 같은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난 또 새로운 인연으로 날 도울 사람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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