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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렌 Apr 14. 2024

카메라 앞으로

이젠 나를 영상으로 내보내려고 한다. 화면 앞에 떠있는 나를 바라보는 것이 미친 듯이 두렵다.


지난 한 달간 인스타그램으로 활동을 했다. 나는 내 얘기를 잘하고, 다른 사람에게 질문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난 글 쓰는 사람이니까, 한 문장도 쓰기 어려워하는 사람을 도와주려 했다. 그런데 재미가 없었다. 감정이입이 잘 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걸 쓰면 되는데 어떤 게 어려울까?' 하고 머릿속이 멈췄다.


<아버지는 46살에 나를 낳으셨다>라는 영상이 2만 조회를 넘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20명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이 정도의 반응을 기대하지 못했다. 난 늦둥이에 외동이라 나 같은 사람은 별로 없을 줄 알았다. 학교 다닐 때는 내가 별난 애였다. 친구들은 2-4명 남매 중 첫째가 많았다. 심지어 부모님과 함께 놀이공원에 갔을 때, 직원이 나에게 "할아버지랑 같이 왔어?"라고 한 적도 있다. 이젠 상황이 바뀌었다. 나에게 DM을 보낸 14살 아이는 나랑 처지가 비슷했다. 좋아요를 누른 이들을 타고 들어가 보니, 학생들이었다.


내 이야기를 꾸준히 하다가, 얼굴을 드러내야 한다는 결과까지 도달했다. 몇 주간 노트에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하는 방식으로 도전해 보았다. 음성 녹음 하고 설명을 그림으로 그리니, 편집까지 40분 정도 걸렸다. 할만했으나, 꾸준히 유지할 힘이 부족했다. 나에게 그림은 단지 설명을 위한 수단이었다더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또한 말하는 걸 좋아하는 모습 내 모습이 진정성을 보여줄 거 같았다.


오늘은 카메라를 앞에 두고 영상을 찍었다. 영상을 찍으려고 마음을 먹기까지 1시간, 막상 화면을 켜고 녹화버튼을 누르기까지 10분, 녹화가 시작된 후 말을 떼는 데 5분 걸렸다.


얼굴 노출하기 전까지 걱정되는 게 많았다. 화장을 해야 하나? 대충 하거나 안 하기로 했다. 한다고 해서 기가 막히게 예뻐질 자신이 없다. 노출된 이후에 누가 알아보면 어쩌지? 아무도 모른다. 내 주위 사람들이 유튜브 하는 걸 몰랐던 것처럼, 앞으로도 모를 거다.


오늘이 제일 힘든 날이었을 거다. 앞으론 더 나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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