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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렌 Apr 21. 2024

감정적인 사람

사내 회식자리에서 "너 욱하는 성격 있잖아. 그거 바꿔야 해."라는 말을 들었다. 사건의 발단은 나의 질문이었다. 해보고 싶은 일이 있는데, 어떤 직급까지 보고해야 할지 몰라서 질문했다가 혼났다. 처음에는 상사의 발언에 '내가 그렇게까지 잘못했나?' 하면서 화가 났고, 그 다음에는 '상사가 기분이 안 좋은데 내가 질문한 거구나.'라면서 이해하기 시작했고, 평가받은 뒤에는 '맞네. 내가 뭘 몰랐네.' 하고 끝났다.


MBTI가 판을 치는 세상. 상사가 나에게 T(이성적)와 F(감정적)의 비율을 물어보았다. "T 60에 F40 정도?"라고 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극"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본인의 성격을 나타낸다. "난 극 T야, 난 극 F인데"라고 한다. 나처럼 그라데이션인 사람은 어디에 껴야만 하는 것인가?


상사에게 발언할 기회가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었다. "스스로 극 T라고 말씀하시지만, 제가 보기엔 극 F입니다." 일명 일잘러는 일을 감정적으로 하지 않는다. 불편한 감정이 있어도 숨기려고 하고, 일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해결하려고 한다. 그만큼 인간이 감정을 숨기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일잘러의 조건이 되기도 한다.


감정적인 면모가 있는 나는 일잘러로 평가받지 못했다. 혼났던 순간, "지금 당황한 상태로 답변하면 안 되니까, 감정을 죽인 다음에 답변하자."라며 일부러 메시지에 답변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만 그런 거였다. 상대 입장에서는 내가 빠르게 사과하고 깨우치길 바랐던 거였다.


경험이 없는 내가, 심지어 감정도 갖고 있는 내가, 무언가 빠르게 이해하는 게 어려웠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일은 로봇이 해야 한다'는 마음까지 생겼다. '나처럼 감정적인 사람이 하면 속도도 느려지고 나도 힘들고 일 시키는 사람도 답답할 거 아니야. 그러면 일은 다 로봇이 해야 하는 거 아니야?' 하고 극한의 효율만 따지기 시작했다.


이 마음이 반복되니, '일하면서 감정이 있는 인간은 잘못된 건가'라는 질문이 생겼다. 일만 두고 보면 깔끔하니 좋을 것이다. 하지만 감정이 아예 없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갈 수 있을까?


관계는 서로 주고받는 것이 있을 때 탄생한다. 마냥 주기만 해도, 받기만 해도 무너진다. 주고받는 대상에는 돈, 지식 등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감정이라는 숫자로 형용할 수 없는 것도 포함된다. 그런데 이 세상은 속도를 중요시 한 나머지, 가장 중요한 인간의 감정을 놓치고 있다.


일에 감정을 나타내는 사람은 일잘러가 되지 못하는 곳에서 어떻게 내 감정을 죽여야 할지 방법을 찾는 중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사과를 먼저 해야 하는 것인지, 지금처럼 감정을 죽인 뒤에 답을 하고 그냥 혼나는 상황을 맞이할 것인지, 아니면 일에 감정을 드러내어도 괜찮은 곳으로 갈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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