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헬렌 Apr 28. 2024

든든한 가족이라니?

미혼의 20대는 오늘도 질문을 받는다. "결혼 언제 할 거야? 적어도 결혼식장에 내 발로 걸어 들어가고 싶은데."라는 말을 5년 넘게 들었다. 처음에는 "못 걸을 날을 지금부터 계산해?"라고 했는데, 이제는 '걸을 수 있는 날을 매일 계산하고 있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이 바뀌었다.


성인이 된 직후, 나는 부모님께 권한을 부여받았다. "네가 어렸을 때는 우리가 너를 보호해 줬지만, 이제는 우리가 나이가 들었으니 네가 우리의 보호자야."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이제 다 컸으니 나보고 보호를 해달라고? 원하지 않은 의무를 덥석 물려받았다.


우리 부모님 세대까지는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것이 의무처럼 여겨졌다. 양가 부모님과 어린 나까지, 가족은 다 챙기면서 사셨다. 부모님은 '내가 이렇게 키워두면 나중에 내 새끼가 날 챙겨주겠지.'라는, 자식농사 개념을 갖고 계셨다. 반대로 나는 '나 하나 책임지는 것도 힘든데 우리 부모님을 부양해? 그건 그렇다고 쳐. 그런데 시부모에 내 자식까지 챙기라고?'라며 나 외에 누군가를 챙기는 것이 짐으로 느껴졌다.


아빠 없이 엄마와 단둘이 얘기할 때 "엄마, 결혼하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데 왜 해야 해?"라고 하면, "안 해도 돼. 내 자유가 없어지니까 답답해. 대신 나중에 나이 들면 그땐 외로울 수 있어."라며 나에게 선택권을 쥐어준다. 하지만 아빠는 정반대로 "아유, 노처녀 되려고? 나이 들어봐라. 가족이 있어야 든든한 맛이 나는 거지."라며 압박을 밀어 넣는다.


아직까지도 이해하지 못한다. 가족이 있어야 든든하다. 가족이 생기면 든든해지나? 지금도 부실한데 가족으로 뭉치면 더 잘 살고 싶어지나? 나에겐 마치 눈에 물 묻혀서 단단한 눈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마른 흙을 억지로 뭉쳐 바람 불면 날아갈 집을 만드는 거 같다. '하나보단 둘이 낫다'가 아니라, '하나가 둘보다 나을 수 있다'로 흘러가고 있다. 


든든하다는 것은 기댈만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가족은 기대고 싶은 존재보다는 함께하는 존재에 가깝다. 사는 결이 비슷한 동거인이라는 개념이다. 나와 가족이 될 사람에게 의지하기보다는 혼자 자립심을 키워 언제 동거인과 헤어져도 잘 살아가고 싶은 의지가 강하다. 나에게 결혼은 법적 동거인을 구하는 것이다.

이전 25화 감정적인 사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