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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렌 Mar 24. 2024

들고 가는 마음

다른 한 손에 쥐고 있는 것

지하철 퇴근길, 바로 앞에 걸어가고 있는 50대로 보이는 남성이 빵집 봉투에 빵을 잔뜩 넣어서 들고 간다. 다른 한 손엔 무엇이 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빵을 든 그 손이 무거웠는지, 몸은 한쪽으로 휘어있다. 그 속에 있는 것이 단지 빵뿐이었을까.


처음엔 이런 사람을 보면 "무겁겠다" 외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이 사람을 보니 우리 아버지가 떠오른다. 아버지께서 몇 년 전에 초등학교 동창들과 중국 여행을 다녀오셨다. 그때 엄마와 나는 "제발 아무것도 사 오지 마. 다 쓰잘데기 없는 거야. 먹고 즐기는 데 써."라고 했다. 아버지는 무언가 사 오는 걸 좋아하셨지만, 실제로 여행에서 가져온 물건을 제대로 쓴 적이 없었다. 모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만 쏙쏙 가져오셨다.


이 날은 특별하게 아버지께 편지를 썼다. 아빠, 잘 다녀와. 아무것도 사 오지 마. 엄마가 진짜 버린대. 아버지의 여행 물품을 모녀가 챙겼다. 캐리어에 내 편지를 넣어두었다. 겉으론 당당하지만 속으론 부끄러움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는 직접 나에게 편지 잘 읽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대신, 아버지의 친구분이 나에게 전해주셨다. "나도 네가 적은 걸 봤다. 너 같은 딸이 어딨니. 아빠한테 절대 아무것도 사지 말라고 할게. 걱정하지 마."


아버지는 빈 손이 아니었다. 옆에 친구들이 이것저것 쥐어오는 바람에, 혼자 그대로 가면 안 될 거 같은 압박감이 있었다면서. 아빠는 나에게 금목걸이를 주셨다. 진품 증명서가 있었지만, 사실 진짜인지 아직도 모른다. 나는 금이 아닌 은이 잘 받아서 아직까지 한 번도 착용해 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작년 여름 동남아 여행에서 어머니의 여름옷을 사 오셨다. 엄마는 "내가 사 오지 말랬지. 어차피 안 입는다니까."라면서 정말 한 번도 입지 않으셨다. 호피무늬 자글자글한 부드러운 소재의 나시 원피스였다. 해외에서 바닷가 앞에 서면 아무렇지 않아 보일 옷이지만, 내륙 지방에 사는 우리가 그것을 입으면 조선시대 산적으로 보일 법했다. 아빠가 "엄마가 입지 않으니, 너라도 입어라."라고 하셔서 내 여름 잠옷이 되었다.


지금에서야 아버지 마음을 깨닫는다. 뭐라도 주고 싶은데 뭘 좋아하는진 잘 모르겠고, 이때라도 마음을 쓰고 싶은데 어떻게 하지? 일단 뭐라도 가져가면 하나는 되겠지,라는 마음이셨던 거 같다. 난 받을 줄을 몰랐다.


뒤늦게 깨달은 딸은, 아빠와 함께 시장에 가서 호떡을 지긋하게 바라보고 아빠를 한 번 쳐다본다. 호떡을 먹고 싶진 않았지만 아빠가 나에게 사줘도 될 법한 것을 혼자 고른 것이다. 아빠가 날 쳐다보고 "이거 사줄까?"라고 한다. "응, 나 이거 사서 엄마랑 나눠먹을래."라고 했더니, "6개 사서 각자 2개씩 먹자." 하고 넉넉히 샀다. 자전거에 검은색 비닐봉지를 걸고 혼자 집으로 갔다. 엄마에게 아빠가 먹으래, 하면서 같이 먹었다. 엄마는 여전히 "사지 말랬지, 아유 맛없어." 하면서 다 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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