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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렌 Jun 17. 2024

나에게 딸린 것

무한도전을 돌려보면서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라는 말을 들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근래는 왜 하나만 쫓으려 했을까 하는 아쉬운 순간이 늘었다.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건 옷이다. 아무리 당근으로 많이 팔아도 여전히 옷장 속 80%는 검은 옷으로 가득하다. 결벽증 비스무리하게 갖고 있는 나에게 흰옷 목때는 봐줄 수 없는 존재다. 혹자는 "세탁소 가서 맡기면 되짆아."라고 하지만, 내 옷을 남에게 주는 것도 싫다. 나의 것은 내가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시꺼먼 걸로 가득 찬 이유는 정말 편해서였다. 더러워져도 티가 안 나는 것. 이 기준으로 물건을 선택할 때는 모든 걸 검은색으로 맞췄다. 가방, 필통, 머리 색, 바지, 심지어 핸드폰 케이스까지.


이제까지 물건을 구매하는 방법은 배웠지만, 엄마가 아닌 누군가가 잘 관리해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빠는 나한테 "돈은 쓸 때 써야지."라며 사서 쓰라고 하셨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너무나 익숙했다.


아이들은 어른의 행동을 똑같이 따라 한다. 어렸을 때 장난감이 없었다. 갖고 놀면 이틀 안에 질려서 다시는 쳐다보지 않았다. 놀고 싶을 땐 주방에 가서 의자를 거꾸로 뒤집고 냄비를 의자 다리에 걸어두고 젓가락으로 냄비를 때렸다. 엄마가 하지 말라고 했는데 흥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점토 대신 엄마가 밀가루 반죽을 만들어서 쥐어주셨다. 종이접기를 하는데 풀이 없을 땐 밥알 조금씩 떼어먹으며 종이에 발랐다.


신품 집착병에서 벗어나, 시간이 주는 가치를 느껴보고 싶었다. 새것이 반짝반짝하게 빛나는 게 고상해 보이지 않았다. 세월의 흐름이 바람처럼 나의 것을 스쳐 지나갈 때 버틴 흔적을 보고 싶었다.


지금 들고 다니는 가방은 10년째 사용 중이다. 어깨 쪽 스펀지가 터져서 엄마가 바느질로 수선해 주셨다. 침대 위에 있는 분홍색 커버도 이쯤 되었다. 내가 깜찍한 아이가 되길 바라시는 마음에 엄마는 이불을 분홍색으로 구매하셨다. 엄마가 예상하는 것과 정반대로 컸다.


한때는 택배가 오면 뜯고 새로운 걸 맛보는 재미에 살았는데, 이제는 택배도 시키지 않는다. 혼자 살면서 온라인으로 왕창 살 일도, 소비욕구도 줄었다. 물건을 갖는 과정이 좋았던 거지, 갖고 있으면서 행복했던 적은 거의 없었다.


짐이 될만한 게 없는지 돌아보자. 몸에 하나씩 달라붙어 있는 것들이 보인다. 시원하게 보내주자. 서로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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