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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o Jan 24. 2021

작자미상 03- 바늘땀

잃어버린 것들의 나라에서, 그대에게

살아남았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 다른 이야기.


한 땀, 한 땀 새겨지는 시간은 말하나 몸짓하나 잠시 떨어지는 시선 하나에까지 세세히 깃든다는 걸,

매순간 인지하고 사는 것만큼 피곤한 일도 없겠지.


 마르크스의 유령이 온 유럽을 떠돈다는 선언에 그토록 간담이 서늘한 이유는 그거 하나지. 근대의 자유주의가 그토록 설파하는 개인의 운명은 자신이 오직 결정한다는 믿음,  어느새 신격화되기까지 한 그 믿음을 나는 믿지 않는다.

  어떤날 가장 불우한 곳에서 다시 모든 특혜를 받은 아이는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의 끝에서 다시, 그 가장자리로 옮겨졌다. 그 어떤 자격도 없이 응당한 이유도 없다. 영원히 개인의 소관이 아니지. 어떤 의지나 열정만으로 되돌릴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이 반평생 지나 중년이 된 지금에 와서는 더 명확해진다. 그러니 삶에 대해 말할 때,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 속에 정교한 바늘땀으로 스며든 운명이 보일 때마다 이토록 아픈걸.

 비극은 그토록 교묘하고 눈에 띄지 않게 스며들어 언제고 취약한 이를 파멸시킬 궁리를 하는데, 굳이 괜찮은 척 운명의 주인은 오직 자기 자신인 척한다는 게 얼마나 안쓰러운 자기 위안인지 이쯤 되면 그 꼴을 봐주기도 딱할 지경이다.

  악에 받친 열망은 그저 헛소리로, 허공에 대는 발길질로 끝날뿐이다. 공허하고 공허해 종국엔 그 뚫려버린 자리엔 영혼의 슬픔이 곰팡이처럼 퍼져서, 병균보다 사람을 더 빨리 죽이니까. 이미 그들은 어린아이에 죽은 송장이 된다. 다만 너무 조기에 사그라져 눈에 띄지 않을 뿐.

 그 모든 이들과 하나 다르지 않은, 이미 일곱 살 인생에 죽어버린 산송장이었던 아기가 살아남은 건, 다시 여태까지 살아온 건 모두 기막힌 운이었던 걸, 어떤 목적도 의지도 없는 눈먼 신의 편애였다는 걸 잊을 수가 없다. 그런 불공평함에 안도하면서도 때론 치가 떨려 한밤엔 느닷없이 몸서리쳐지게 뼈마디마다 한기가 들어 문득문득 깊은 잠에서 깨어날 수밖에 없다.

  이토록 지독하고 끈질긴 불안은 그림자 영영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거란 걸 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진실한 사람이다. 하지만 나의 우울은 그렇게 진실하면서도 위험하다. 언제라도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그 주위 모든 정원을 통째로 불 지를 수 있는 깊은 분노가 수면 위에 떠 있다.

 그 어떤 후회와 망설임도 없이 이미 충분히 세상이 아름답지 않다는 걸, 더 나아지지도 않을 거란 걸 안다. 그것만이 내 유일한 종교다. 허무주의라 손가락질받을 수 있겠지만, 허무도 하나의 장르란 걸 설파한다면 아마, 이 명랑한 경성에 어울리지 않는 자란 게 금방 탄로 나겠지. 굳이 그렇게 가면을 벗어 얻을 게 없는 걸 뻔히 알면서도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상상력이 아직 남아있는 레지스탕스들이나 하는 일이다. 그러니 오직 가면으로 살아남은 아이인 나로서는 그댈 원망할밖에 별도리가 없다. 그 모든 회고가 제 살을 거듭 갉아먹는 일이란 걸, 그저 온갖 미련들이 엎치락뒤치락하다 종국에 결판나지 않는 저주인 걸 이젠 잘 알면서도, 그런데도 다시 똑같은 삶이 시작된대도 거듭 되풀이할 테다.

                                                            


 당신과 오래 맞닿아 있고 싶다. 실제로 서로가 닿아있던 시간보다 겁의 시간을 끊어진 채로 살아야 한 대도, 그 모든 후회와 고통이 당신이 준 빛보다 더 넘친대도 주저함이 없겠지. 그러니 지금부터 내가 우리 모두에게 한 거짓말에 대한 이 긴 고백은, 내 사랑을 고백하는 것과 같다. 이토록 끈질기고 애처로운 그리움을 영원히 자신의 마음에 매어둔 채 산 아이를 부디 애처롭게 여겨주길 바라면서  앞뒤 재지 않고 그래서 그만 투정을 부렸다.


 그해 겨울, 만주로 예정돼 있던 당신의 행로가 갑자기 경성으로 바뀌었다는 서신을 받았을 때,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어 불안에 떨던 때부터도 이미 당신이 현실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기에 앞서, 더 먼저 당신에게 투정 부리고 싶었음을, 아기 때처럼 토닥여주고 이미 너무 커버리다 못해 낡아버린 나를 품에 안아주기를 바랐던 걸 아는가. 감히 스스로 운명을 결정짓는 신이 되어, 용서받지 못할 짓을 하고서도 당신에게 이해받길 원하는 이 가증스러운 자는 다시 하나부터 열까지 기억해주기를, 곧 당신이 그 자신이 기억하던 것보다 더 많은 자기를 떠올려주기를 내심 바랐다.


 언젠가 나 자신은 외에는 내가 가진 세상 외에는 차마 이해할 수 없던 시절의 내가 당신에게 천진함을 무기로 물었었지. 교지에 실린 당신의 논설을 봤을 때 할 수 있다면 몸 안의 모든 피를 뽑아서라도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글자 그대로 걱정하면서, 내심 그 비애의 원인을 유추하여 내가 지어낼 수 있는 온갖 위로의 말들을 혀 안으로 굴려보면서 고작 한다는 말이 비수였음을 그 이후로도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았다.


 형이라면 기어코 제국의 훌륭한 신민이 될 거야.

그러니 조선인인 걸 걱정하지 말라고. 누가 뭐래도 이미 이 나라의 출중한 인재인데? 이 경성 바닥에서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음 어디 나와 보라지. 너스레까지 떨면서. 그때 그 어린 어깨에 들러붙은 짙은 그림자를 나는 그렇게 해석했다.

 그저  주류사회에 편입하지 못한 불안일 거라고, 어른들은 언제나 자기 자리가 확고히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형은 이제 어른이니까. 그에 대한 고민일 거라고. 언제나 당신이 웃고 있을 때조차도  그대로 부서져 버릴 것만 같은 건, 다 그 때문이라 시간이 지나서 응당 자신이 가야 할 자리에 가면 사라질 걱정이라 생각했다. 그런 식으로 얼마나 여러 번, 그대의 등 뒤에 순진한 아기의 얼굴로 칼을 꽂았던가.

 나는 아직 그조차 사과하지 못했는데, 당신은 항상 내가 보는 그 너머까지 세심히 헤아리고 토닥여 잃어버린 말을 되찾아 주었는데, 나는 언제나 그렇게 어설퍼서 그대의 마음 하나, 제대로 읽어 준 적이 없다. 그런데도 그대는 기어이 이 이야기의 마지막 문을 닫고 가면서 아무렇지 않게, 마치 이 모든 것들이 웃기는 농담인 것처럼. 대체 그간 무얼 걱정했던 거냐고, 제풀에 지쳐 성난 얼굴에 가만히 두 손을 대고 귓불을 감싸 안아주었지. 재차 확인하듯이 양 뺨을 쓸어 찬찬히 어루만져 주면서 주던걸.


“Si vales bene,

est ego valeo.

 당신이 잘 지내면 나도 잘 지냅니다..”

                   

“이미 내 삶은 당신의 꿈 안에 있으니.“




 그렇게 자신이 되지 못한 노인을 바라보듯이 나를 보던 그대여,



 처음 이 무용한 숨을 끊어놓아야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미사 때마다 새벽 창으로 쏟아지던 빛이 고인 스테인드글라스 노려보던 때부터,  당신의 그 말이 이미 내게 닿아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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