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지 않은 길 위에서 찾은 나의 경쟁력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은 아마도 새로운 길을 찾고 있을 겁니다. 남들 다 가는 길이 아닌, 나만의 전문성을 키워 빛을 발하고 싶은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늘 '길 밖'에 서 있었습니다. 1996년, IMF 외환위기가 몰아치기 1년 전 지방이 본사인 한 건설회사에 입사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부동산 경기가 좋아 아파트 건설 현장은 활기가 넘쳤죠. 저는 서울에 지사를 둔 건설회사의 본사에서 현장관리를, 그리고 직접 현장에서 시공관리까지 6년간 건설의 A부터 Z까지 몸으로 익혔습니다.
하지만 2002년, 믿었던 회사가 최종 부도를 맞으며 저의 첫 번째 직장 생활은 막을 내렸습니다. 그 충격 속에서 저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웹 전문 교육과정을 거쳐 홈페이지 제작 관련 취업을 모색했지만, 전공은 건축인 시골 소년이 뒤늦게 시작한 IT는 쉽지 않았습니다. 면접장에서 만난 면접관들은 저보다 나이가 어렸고, 몇 차례 실패 후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작은 편의점 벤더회사에서 전산관리를 시작했습니다. 업무는 단순했습니다. 본사에서 내려오는 데이터를 물류 프로그램에 업로드하면 끝. 1년여를 보내며 '과연 이곳에서 내가 더 성장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전 회사 입사 동기였던 ROTC 장교 출신 대리가 연락을 해왔습니다. M&A 된 회사에서 함께 일할 사람을 찾는다며 저를 불러준 것입니다.
다시 건설업계로 돌아와 품질관리라는 새로운 분야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5년 후, 회사에 해외사업부가 신설되며 사내 직원을 모집했습니다. 학창 시절 영어와 담을 쌓고 지낸 제가 "해외사업"에 지원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죠. 성문기본영어조차 제대로 본 적 없던 제가 말이에요. 하지만 가슴에서 뛰는 감정에 이끌려 도전했습니다.
당시 회사는 한강유람선, 연예인 붐을 데리고 있는 엔터테인먼트, 동남아 해운 등 40개가 넘는 계열사를 가진 거대한 그룹이었습니다. 회장님은 "배를 운영하고 물류를 담당하고 건설을 하는 회사가 한 가족이니, 건설경기가 좋을 때는 건설로, 안 좋을 때는 조선 쪽으로 투자할 수 있는 저력 있는 회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졌습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죠. 1999년 아파트 분양 후 2년 뒤 입주하면 1년 후 최소 5천만 원에서 1억 원은 뛰던 시대가 끝났습니다. 아파트 분양도 안 되고, 철강 같은 원자재 가격은 올라가니 건설회사와 조선회사 모두 타격을 입었습니다. 결국 2009년, 2년간의 화해신청-워크아웃-부도로 이어지는 수순 속에서 저의 화려했던 13년 건축 여정은 막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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