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원 운동 번외 편
슬기로운 광주 단식원 생활 여덟 번째 이야기
3, 4주 차 운동도 큰 틀에서는 1, 2주 차 루틴과 다르지 않았다. 아침 유산소와 저녁 무산소라는 골격은 그대로였다.
다만 환경에 익숙해지고 몸이 단련되면서, 목적지 끝자락만을 애타게 살피던 시선이 점점 주변으로 옮겨갔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천변길을 걷다 보면 종종 자전거를 탄 무법자를 만났다.
자전거 진입이 금지된 산책로인데도,
어떤 할아버지는 아무렇지 않게 보행자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평소처럼 이어폰을 꽂고 미친 듯이 걷고 있는데, 뒤에서 띠링띠링 짜증 섞인 벨 소리가 들리더니 자전거를 피해 주지 않은 나를 향해 쌍욕이 날아왔다.
영문도 모른 채 뒤통수에 욕뭉치를 맞은 나는 놀란 만큼 크게 반발했다.
문제가 심각해질 것 같았는지, 그는 이내 헐레벌떡 도망갔다.
너무 화가 나서 시청에 민원을 넣을까, 세상의 따끔한 맛을 보여줄까 고민하다가,
후덜 거리는 다리로 녹슨 페달을 허겁지겁 굴리며 멀어지는, 덜컹거리는 고물 자전거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나이가 주는 핸디캡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도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또 한 번은 음악을 들으며 걷다가 몹쓸 장면을 목격했다.
주인은 자전거를 타고, 강아지는 목줄에 묶인 채 끌려가듯 산책을 하고 있었다.
산책이란 주인이 견딜 수 있는 강도로 강아지에게 운동량을 맞춰주는 행위여야 할 텐데, 그 모습은 마치 고문을 위해 낑낑거리는 짐승을 끌고 가는 것 같았다.
만화 영화 속 강아지가 무언가를 쫓아 쌩- 달릴 때처럼, 녀석은 혀를 옆으로 늘어뜨린 채 비척거리고 있었다.
자전거의 매끄러운 회전 속도에 맞추기엔, 녀석의 네 발은 너무도 버거워 보였다.
말 못 하는 강아지 대신 뭐라고 한 마디 하려는 사이 금세 사라져 버렸다.
내 입술이 떨어지는 속도보다 더 빨리 달리는 자전거 앞에서 내 걱정은 강아지의 침처럼 목적 없이 흘러내렸다.
이 무렵부터 3, 4주 차 운동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변주되었다. 루틴은 지키되, 지루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운동 기구 대신 도시를 들었다.
애초에 단식원을 고를 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지역을 조건으로 둔 것도, 지루해질 수밖에 없는 다이어트 생활에 작은 재미를 얹어보고 싶어서였다.
펭귄마을, 담양 죽녹원 등등
광주 곳곳을 구경하며 걷기 시작했다.
담양 대나무숲은 옆방 언니의 차를 운 좋게 얻어 타고 다녀왔다.
이곳은 따로 시간을 내서 찾아왔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좋은 곳이었다.
빼곡한 대나무 사이로 바람이 스칠 때마다, 공기가 한 번 걸러졌다가 맑아져 다시 내뿜어지는 것 같았다.
단식원에서 들이마시고 온 따분한 인내의 공기를 내뱉으면 대나무가 신선하게 정화하여 내게 다시 불어넣어 주는 듯했다.
천연 공기청정기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았다.
펭귄마을은 광주 관광지로 가장 많이 추천받는 곳이었다.
명성이 자자한 곳이니 무언가 대단한 풍경이 기다릴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마을은 화려한 랜드마크라기보다, 누군가의 손때 묻은 일상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소박한 골목이었다.
굳이 이걸 보려고 일부러 시간을 빼서 올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낯선 풍경 속에 발을 담그고 있으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공간의 크기나 화려함보다 중요한 건, 내 의지로 이 낯선 길들을 정복하고 있다는 감각이었다.
관광지를 구경 다녀온 후에도 무거운 쇠판과의 호흡은 변하지 않았다.
무산소는 내 생활의 한 축이 되어있었고,
마지막 남은 힘 한 방울까지 모조리 쥐어짜 내어 기구를 들지 않으면 왜인지 몸이 근질거렸다.
4주 차의 마지막 밤, 거울도 없는 서늘한 헬스장에서 여전히 거친 숨을 내쉬며 투박한 쇠판을 들어 올렸다.
살을 깎아낸 자리에 단단한 의지의 근육이 돋아났다.
내 몸은 따로 명령하지 않아도 스스로 운동화 끈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이제 나의 목적지는 천변길 끝자락이 아니라, 내가 딛고 있는 바로 이 길 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