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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솔 Sep 11. 2024

화분 하나

#1 


사무실을 이전한 후 처음 방문한 후배가 이곳저곳 둘러보더니 한마디 툭 던졌다.


"선배, 사무실이 너무 삭막하지 않아요? 화분이라도 하나 가져다 놓으세요."


'시키, 지가 사 올 것이지'라고 속으로 욕하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 믹스 250개 들이를 두 박스나 사 왔으니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기특한 것.


얼마간 담소를 나누고 후배가 돌아가자, 혼자 남아 사무실을 찬찬히 관찰했다.

열두 평 남짓 되는 공간을 감싸는 흰색 벽과 새로 깔아 깔끔한 고급진 회색 데코타일,

그 위에 네이비로 깔맞춤 한 여러 개의 책상과 책장. 


나름 괜찮다고 생각하다가도 

'흠, 그렇게 삭막한가?'라는 의구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워낙 이런 데는 둔감한지라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서 일해도 크게 그런 느낌을 못 받았었는데,

후배의 말이 그 후로도 자꾸 나를 따라다녔다.




#2


삭막하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일하다 주변을 볼 때마다 

왠지 안구도 더 뻑뻑한 것 같고 마음도 말라가는 듯했다.

 

'아냐, 이건 플라시보 효과야, 자기 암시라구!'라며 고개를 저어봤지만

얼마 못 가 결국 스마트 폰을 집어 들었다. 


'역시 배송하면 X팡이지. 어디 보자 사무실 화분으로 검색해 볼까..'


스크롤을 내리며 수십 가지의 화분을 보다가 

평점 좋고 적당한 크기의 아레카야자를 주문했다.


다음 날 도착한 아레카야자는 위로 뻗은 잎사귀마다 제법 싱싱한 데다

생각보다 커서 만족스러웠다. 


먼저 몇몇 상한 잎 끝을 가위로 정리한 후, 조심스럽게 화분 받침대에 옮겨 닮아 생수를 졸졸 뿌려주었다.

물기로 부풀어 진해지는 흙을 보니 왠지 기분이 몽글해졌다.


어디에 화분을 놓을지 고민하며 눈을 여기저기 굴리다가 책상 왼쪽 건너편 선반 위에 두기로 했다.

고개를 15 °만 살짝 돌려도 보이는 위치라 적당해 보였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려 선명하게 보지 않아도 일할 때 아레카야자의 녹빛이 늘 시야에 머무니 안정감이 전해졌다.

일에 집중하다 눈이 피로하거나 피곤할 때마다 고개를 돌려 

아레카야자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잠깐의 휴식이 되었다. 


'아, 이래서 화분이 필요하구나.' 


갑자기 후배가 고마워졌다.   




#3 


화분처럼 가만히 있어도 위안과 휴식을 주는 사람이 있다.


한동안 일상에 치여 잊고 지내다가도 고개를 휙 돌리면 변함없는 모습과 표정으로 나를 반기는 사람.


연락의 빈도를 떠나 곁을 떠나지 않고 지근거리에 있는 사람. 


적당한 온도와 관심만 있으면, 오래오래 새 잎을 돋우며 관계의 가지를 뻗을 수 있는 사람. 


나도 누군가에게, 화분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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