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무실을 이전한 후 처음 방문한 후배가 이곳저곳 둘러보더니 한마디 툭 던졌다.
"선배, 사무실이 너무 삭막하지 않아요? 화분이라도 하나 가져다 놓으세요."
'시키, 지가 사 올 것이지'라고 속으로 욕하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 믹스 250개 들이를 두 박스나 사 왔으니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기특한 것.
얼마간 담소를 나누고 후배가 돌아가자, 혼자 남아 사무실을 찬찬히 관찰했다.
열두 평 남짓 되는 공간을 감싸는 흰색 벽과 새로 깔아 깔끔한 고급진 회색 데코타일,
그 위에 네이비로 깔맞춤 한 여러 개의 책상과 책장.
나름 괜찮다고 생각하다가도
'흠, 그렇게 삭막한가?'라는 의구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워낙 이런 데는 둔감한지라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서 일해도 크게 그런 느낌을 못 받았었는데,
후배의 말이 그 후로도 자꾸 나를 따라다녔다.
#2
삭막하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일하다 주변을 볼 때마다
왠지 안구도 더 뻑뻑한 것 같고 마음도 말라가는 듯했다.
'아냐, 이건 플라시보 효과야, 자기 암시라구!'라며 고개를 저어봤지만
얼마 못 가 결국 스마트 폰을 집어 들었다.
'역시 배송하면 X팡이지. 어디 보자 사무실 화분으로 검색해 볼까..'
스크롤을 내리며 수십 가지의 화분을 보다가
평점 좋고 적당한 크기의 아레카야자를 주문했다.
다음 날 도착한 아레카야자는 위로 뻗은 잎사귀마다 제법 싱싱한 데다
생각보다 커서 만족스러웠다.
먼저 몇몇 상한 잎 끝을 가위로 정리한 후, 조심스럽게 화분 받침대에 옮겨 닮아 생수를 졸졸 뿌려주었다.
물기로 부풀어 진해지는 흙을 보니 왠지 기분이 몽글해졌다.
어디에 화분을 놓을지 고민하며 눈을 여기저기 굴리다가 내 책상 왼쪽 건너편 선반 위에 두기로 했다.
고개를 15 °만 살짝 돌려도 보이는 위치라 적당해 보였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려 선명하게 보지 않아도 일할 때 아레카야자의 녹빛이 늘 시야에 머무니 안정감이 전해졌다.
일에 집중하다 눈이 피로하거나 피곤할 때마다 고개를 돌려
아레카야자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잠깐의 휴식이 되었다.
'아, 이래서 화분이 필요하구나.'
갑자기 후배가 고마워졌다.
#3
화분처럼 가만히 있어도 위안과 휴식을 주는 사람이 있다.
한동안 일상에 치여 잊고 지내다가도 고개를 휙 돌리면 변함없는 모습과 표정으로 나를 반기는 사람.
연락의 빈도를 떠나 곁을 떠나지 않고 지근거리에 있는 사람.
적당한 온도와 관심만 있으면, 오래오래 새 잎을 돋우며 관계의 가지를 뻗을 수 있는 사람.
나도 누군가에게, 화분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