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코스B (한림항←고내포구, 13km ) 6
육체가 무너지면 정신도 혼미해진다. 혼미해진 정신은 무언가를 결정할 때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한림항에는 공항 가는 버스정류장은 없었다. 공항 가는 급행 102 버스 타기 위해서는 한림환승버스정류장으로 가야 했다. 카카오맵을 한 번 흩고 지름길이라고 생각되는 길로 갔다. 그러나 헤맸다. 정신은 빨리 가야 한다는 급한 마음에 지름길을 찾았고, 어설픈 방향감으로 큰 도로를 찾았던 것이다. 오만했다. 알지 못하는 곳이었고, 이런 곳을 감으로 걷는 것은 눈 감고 걷는 것과 같았다. 모르는 곳이니 카카오맵에 의지해 천천히 걸어야 했다. 자책하며 다시 카카오맵에 의지하며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는 버스가 10분 전에 지나간 후였다. 시간표를 다시 검색해 보니 버스는 40분 뒤에 있고 공항에는 6시 넘어서 도착하는 것으로 나왔다. 7시 비행기를 타기에는 너무 빠듯할 것 같았다. 바로 택시를 탔다(이로써 이번 올레를 끝냈다). 힘든 상황이라도 정신을 제대로 부여잡아야 했다. 한림항에서 카카오맵에 의지해 정상적으로 걸었다면 충분히 버스를 탔을 것이다. 잘못된 작은 판단 하나가 이후 일의 진행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크게 심호흡하며 조급증을 옆으로 치우고 무너진 육체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던 생각을 가다듬어야 했다. 이런 경험도 올레가 내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한 번이면 족했다. 이런 상황에 또 놓이면 오늘을 생각해야 한다.
글을 쓰며 이번 올레를 되돌아보았다. 3일 동안 겨울을 제외한 제주의 다양한 날씨를 경험했다. 첫날은 바람이었다. 강풍이었고 걷는 내내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했다. 둘째 날은 전날의 영향 때문인지 종일 회색 구름이 하늘을 가려 흐렸다. 그리고 밤새 비가 내리다 새벽에 그친 셋째 날은 맑고 흐리고 짧은 비까지 이번 올레를 정리하는 종합선물 같은 날씨를 선물로 주었다. 이런 날씨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이번 올레는 만만치 않은 거리로 인해 시간에 쫓기듯 걸었다. 그래서 조급함에 신경은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잿빛 하늘과 바다가 선사한 풍경은 조급함을 더 키워 신경을 더 조였다. 마음을 비워내지 못하고 오히려 회색에 물들어 무거워지며 여유가 없었다. 여유가 없어 날카로워진 신경은 작은 경로 이탈에도 짜증을 내게 했다. 그럼 파란 물감이 칠해진 윤이 나는 푸른 하늘과 바다의 풍경이었다면 조급함은 줄어들고 여유는 숨 쉴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팽팽했던 신경은 풀어지고 편안한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지난 4월의 올레는 이번보단 날이 좋았다. 좋은 날은 감정을 출렁이게 했다. 그 출렁임을 자세히 적었다. 이번 10월의 올레는 바람에 무척 출렁인 흐린 날씨임에도 내 감정은 출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침잠해져 있었다. 그래서 내부보다 외부의 사실적인 것에 집중했는지 모른다.
새옹지마였다. 나쁜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올레는 알려주었다. 이런 외부적 악조건으로 인해 사실적인 것에 집중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그동안 피상적으로 알았던 제주를 좀 더 깊숙이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올레의 커다란 수확이었다. 제주의 지질, 인간의 흔적인 산담·집담·밭담, 방사탑, 염전, 돌하르방 그리고 영등할망의 신화와 4·3사건과 항몽의 역사 등. 거대한 현무암 위에 흙이 덮이고 그 흙 위에 사람들이 살아왔듯, 제주는 지질학적 시간 위에 인간의 시간이 덮이고 그 위로 현재의 시간인 올레라는 길이 놓였다. 길을 걸으며 이런 세 층위의 시간대를 둘러보았다. 그러면서 점점 제주의 다양한 면을 보게 되었다. 다음 올레길에선 아직 보지 못한 제주의 숨겨진 다른 면을 볼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와펜에 대해 (와펜2)
● 15코스 와펜 : 비양도(飛揚島)
한림항에서 1.1Km 떨어진 ‘비양도(飛揚島)’는 ‘하늘에서 날아온 섬’이라는 뜻으로, 고려 시대 중국에서 한 오름이 제주도로 날아와 비양도가 되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 《신 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기록에 따르면 1002년(고려 목종 5) 제주 해역 한가운데에서 산이 솟아 나왔는데, 산꼭대기에서 4개의 구멍이 뚫리고 닷새 동안 붉은 물이 흘러나온 뒤 그 물이 엉켜 기와가 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는 비양도에서 발생한 화산폭발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이를 통해 이 시기에 화산활동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용암의 나이를 과학적으로 조사한 결과 비양도는 27,000년 전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섬 중심부가 분석구(화산의 한 형태로, 주로 원추형이며 정상 분화구가 매우 큰 화산들을 말한다)로 이루어져 있다. 분석구는 물이 없는 환경에서 만들어지는데, 비양도는 바다에서 분석구로 이루어져 있어 지질학적으로 흥미롭다고 한다. 섬 해안을 따라 산책로가 잘 꾸며져 있고, 산책로 근처에 화산폭발로 공중으로 날아가 땅에 떨어진 용암 덩어리인 화산탄과 용암이 흐르다 습지의 물과 만나 수증기와 용암이 뒤섞여 분수처럼 솟구쳐 나와 쌓여 만들어진 굴뚝 모양 바위인 호니토를 볼 수 있다. <네이버지식백과, 비양도 안내판>
● 16코스 와펜 : 돌염전
일반적으로 염전은 갯벌에서 만들어진다. 갯벌에 칸막이를 만들고, 이 안으로 들어온 바닷물을 햇볕으로 말리면서 소금을 만든다. 이것이 천일염이다. 구엄포구에서는 천일염을 넓적한 바위에서 얻었다. 바위 위에 찰흙으로 둑(둑의 높이와 폭은 약 15cm 정도이고, 이 둑을 두렁이라고 한다)을 쌓았고, 이곳에 고인 바닷물이 햇볕에 마르면 소금이 생겼다. 그래서 이곳을 ‘돌염전’이라고 불렀고, ‘소금빌레’또는 ‘소금밭’이라고 하기도 했다. ‘빌레’는 제주어로 ‘너럭바위’이다. 이 방법은 조선 명종 14년(1559년)에 부임한 목사 강려가 구엄리 주민에게 알려주면서 시작되었고, 이후 1950년대까지 약 390년 동안 돌염전은 구암 마을주민들의 생업이자 삶의 바탕이 되었다. 돌염전의 길이는 해안을 따라 300m 정도였고 폭은 50m였다. 규모는 1,550평 정도에 한 가구당 20~30평 정도 소유했다. 상속도 가능하여 큰딸에게 상속해 주는 풍속도 생겼다고 한다. (2-21 돌염전, 그리고 터널에서)
● 17코스 와펜 : 동문시장
제주시 일도리 1146번지 남수각 하천 하류 주변에 각종 일용품 및 채소, 식료품 등을 판매하는 노점이 하나둘 생기면서 매일 장사한 것이 동문시장의 시초였다. 동문시장이라는 이름은 제주읍성의 동문에서 따왔다. 1945년 그 자리에 동문상설시장이 만들어지면서 제주 상업의 근거지가 되었고, 이때의 제주읍성은 다 헐리고 흔적만 남아있었다.
1954년 3월 13일, 동문상설시장의 건물 112채가 불타고, 재산피해가 당시 화폐단위로 1억 7900만 환에 달하는 대형 화재가 발생하였다. 같은 해 10월 28일에도 상인의 담뱃불로 다시 화재가 발생하여 첫 번째 화재로 타다 남은 건물 23채를 모두 태웠다. 이후 동문상설시장은 당시의 자리에서 지금의 동문공설시장(현재 동문시장 남쪽에 인접해 있음)의 자리로 옮겨 1954년 11월 9일 다시 개장되었다. 불탄 동문상설시장은 현재 동문로터리에 세워진 해병혼 탑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지금의 동문시장 자리이다. <나무위키 참조>
● 18코스 와펜 : 곤을동 4·3 마을
길은 바다로 작은 호를 그리다 화북천을 타고 내륙으로 올라갔다. 여기에서 4·3 유적지인 곤을동 마을을 만났다. 더 정확히는 안내석을 만났다. 마을은 없었다. 제주 4·3 당시 초토화되어 터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화북천 건너편에 풀로 덮인 돌담들이 보인다. 그곳이 곤을동 마을이 있었던 곳이다. 카카오맵을 보면 그곳은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으로 표기되어 있다. ‘잃어버린 마을’, 안타깝지만 맞은 이름이었다. 올레에서 돌아와서 곤을동에 대해 알아봤다. 곤을동터에 가면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이라는 안내판이 있고, 거기에는 사건을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적고 있었다.
.... 곤을동이 불에 타 폐동이 된 때는 1949년 1월 4일과 5일 양일이었다. 1949년 1월 4일 오후 3~4시께 국경수비대 2 연대 1개 소대가 곤을동을 포위했다. 이어서 이들은 주민들을 모두 모이도록 한 다음, 젊은 사람 10명을 바닷가로 끌고 가 학살하고 안고을 22 가구와 가운데곤을 17 가구를 모두 불태웠다.
다음 날인 1월 5일에도 군인들은 인근 화북초등학교에 가두었던 주민 일부를 화북동 동쪽 바닷가인 ‘연디밑’에서 학살하고, 밧곤을 28 가구도 모두 불태웠다. 그 후 곤을동은 인적인 끊겼다. ...
흩어져 어딘가에 살았을, 뿌리 뽑힌 생존자들의 고통은 가늠할 수 없다. 내 경험을 넘어선 것이라 감히 고통이라는 말조차 언급하기 조심스럽다. 사라진 곤을동을 글과 그림으로 살려내 이야기한 동화책이 있다. 2024년에 발행된 ‘곤을동이 있어요’(저자:오시은/그림:전명진/출판:바람의 아이들)라는 책이다. 책에서는 아름답게 피어나 폐허로 진, 수채화로 그린 곤을동 마을을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올레길에서 만난 북촌(19코스)과 표선읍(3코스 종점, 4코스 시작점)에 발생한 4·3 사건도 소설도 그려져 있다. 바로 현기영의‘순이삼촌’(북촌)과 한강의‘작별하지 않는다’(표선읍)이다. (2-12 제주 칠머리당영등굿에서)
● 19코스 와펜 : 신흥리 방사탑
방사탑은 부정과 악의 출입을 막아 마을을 편안하게 하고자 하는 신앙 대상물이다. 마을의 어느 한 방위에 불길한 징조가 보인다거나 어느 한 지형의 기가 허한 곳에 마을 공동으로 쌓아 올린 돌탑으로, 제주도 조천읍 신흥리 방사탑은 포구의 방파제 부근에 1기가, 북서쪽 바닷가에 1기가 있다. 그중 방파제 부근인 남쪽 포구에 있는 탑(신흥리 1호 탑)은 큰개에 있는 탑이라는 뜻으로 ‘큰개탑’, 새들이 움푹 파인 상부에 날아와 새끼를 부화하는 곳으로 이용하면서 ‘생이탑’이라고도 부른다.
또한, 북서쪽 바닷가인 ‘새백개’쪽에 자리한 탑(신흥리 2호탑)은 오다리 코지에 있는 탑이라 하여 ‘오다리탑’ 또는 상부에 세워 놓은 양근같은 석상 때문에 신흥리 1호탑인 ‘큰개탑’과 대비하여 ‘양탑’이라고 부른다. <korean.visitkorea.or.kr›detail 참조>
불행하게도 방사탑을 볼 수 없었다. 이곳에 도착했을 땐 해가 저물어 어두워서 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2-8 암흑 참조)
● 20코스 와펜 : 바람
20코스를 걷다 점심을 먹은 카페에서 주인이 말했다. “세화는 바람이 세기로 유명하다”라고. 그날 나는 주인이 말한 바람을 온몸으로 경험하며 걸었기에 세화에 풍력발전기가 많은 이유를 체화할 수 있었다. 와펜의 디자인은 바람과 풍력발전기를 형상화한 것 같다.
이로써 2024년 10월에 있었던 올레의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원래는 한 코스당 2화로 총 12화 정도 예상하고 시작했습니다. 쓰다 보니 길 위에 있는 이는 글 쓰는 저에게 많은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쓰라고. 저는 빨리 나아가 얼른 끝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호기심 많은 걷는 이는 걸음을 멈추고 기웃기웃 결국 자신의 호기심을 채웠습니다. 저는 그의 호기심을 헤아리며 열심히 썼습니다.
2024년 11월에 시작한 이야기는 27화까지 늘어나 2025년 6월에 났습니다. 이 시간 사이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계엄이 있었고 탄핵이 있었으며, 그 사이의 시간을 빛의 혁명이 채웠습니다. 4월에는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계엄과 탄핵 사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아버지의 죽음 등이 분노와 깊은 침잠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글쓰기는 구원이었습니다. 정신을 부여잡고 어떻게든 일주일에 한 편씩(그러나 많이 지키지는 못했습니다) 쓰려고 노력하면서, 자신을 태운 분노의 불꽃은 사그라들었고 깊은 침잠에서 저를 건져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길게 글을 쓸 수 있게 한 올레를 걸었던 호기심 많았던 그가 고마웠습니다. 또한 이 자리를 빌려 재미없는 제 글을 읽어주신 독자분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1~2주 정도 쉬려고 합니다. 2025년 5월에 다녀온 올레 이야기로 다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4.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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