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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도착

15코스 B (한림항←고내포구, 13km ) 5

by 커피소년

대칭이었다. 신화의 길에 있는 영등신-일곱 신은 영등할망을 중심으로 좌우에 배치되어 있다. 영등할망을 중심으로 영등나라에 머물러 있는 영등하르방이 왼쪽에, 영등대왕은 오른쪽에 있다. 영등할망과 가족관계에 있는 딸은 영등하르방 다음에, 며느리는 영등대왕 다음에 자리 잡고 있다. 날씨와 관련된 신인, 비를 내리는 영등우장은 딸 옆에, 해를 비추는 영등호장은 며느리 옆에 세워져 있다. 마지막으로 문·무의 신인, 문관인 영등좌수는 영등우장 다음에, 무관인 영등별감은 영등호장 다음에 와서 신화라는 길의 입구이자 출구인 문을 지키고 있다. (영등좌수, 영등우장, 영등할망 딸, 영등하르방, 영등할망, 영등대왕, 영등며느리, 영등호장, 영등별감 순이다) 그러나 어떤 의미로 각각 좌와 우로 나누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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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할망 신화공원을 벗어나면 만나는 해안도로>


신화를 머금은 길을 벗어난 올레길은 신화를 검은 아스팔트 아래 묻어두고 해안도로를 따라갔다. 먼바다를 봤다. 짙은 잿빛 구름은 천장에 설치된 캐노피 커튼처럼 하늘을 가렸다. 여러 대의 풍력발전기는 노란 장화를 신은 거인들이 팔을 벌린 채 엄청 느리게 건너오고 있는 느낌이었다. 바다는 잿빛 구름의 영향을 받아 벌써 어두워져 있었다. 명도만 달리하는 무채색의 바다 풍경을 보는 것은 곤혹이었다. 어두운 바다가 밀물처럼 밀려와 마음을 침잠시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음이 가라앉으니 몸의 피로는 더 선명해졌다. 그렇다고 바다가 아닌 내륙 쪽 풍경을 보자니 시멘트벽에 검은 비닐지붕을 한 긴 건물로 인해 더 갑갑했다. 차라리 고개를 숙이고 풍경을 보지 않고 걷는 것이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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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도로 풍경>


내륙을 향한 화살표가 보였다. 밭담과 집담 사잇길을 걸었다. 멀리 오름 하나가 보였다. 15-A 코스로 걸었다면 보았을 과오름이 아닐까? 계속 걸었다. 4차선의 큰 도로가 나왔다.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방향을 알려주는 화살표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 있는지 보려고 두리번거렸다. 그래도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짜증이 확 올라왔다. 짜증에는 길을 이탈한 것일지 모른다는 불안도 함께 묻어있었다. 카카오맵을 보니 역시 올레길에서 벗어나 있었다. 되돌아갔다. 중간쯤에 갈림길이 있었고 거기서, 오른쪽으로 꺾어야 했다. 그곳은 과오름을 보았던 곳이었다. 과오름을 보다 화살표를 못 본 것이다. 그러나 화살표는 모퉁이에 있는 전봇대 측면에 있어 잘 보이지도 않았다. 짜증은 화살표로 향했다. 화살표를 이렇게 잘 보이지도 않는 곳에 설치하면 어떻게 하냐, 경로를 이탈한 것은 내 부주의 때문이 아니다, 잘못 설치된 화살표 때문이라고 구시렁거리며 걸었다. 마음엔 여유가 없었다. 또 그만큼 지쳐있었다. 그래서 경로를 이탈하여 쓸데없이 체력을 소모한 것에도 불평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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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과오름이 보인다>


생각해 보면 이번 올레길은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첫날이 37km, 둘째 날도 38km 그리고 마지막 날인 오늘도 무사히 끝마친다면 29km이다. 문제는 숫자로 나타난 거리가 아니었다. 강행군으로 드러난 문제는 그 거리를 나타낸 숫자에 도달하기 위해 걸었던 몸이었다. 몸은 하루에 10~12시간을 걸으며 버텼다. 게다가 첫날은 서울에서 밤새 잠을 못 잔 상태로 제주에 도착했고, 강풍 때문에 맑은 날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다. 숙소에서는 자기 바빴고 일어나기 바빴다. 그러니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피로는 하루하루 누적되었다. 그리고 오늘 누적된 피로는 정자가 보이면, 카페가 보이면 그곳에서 바로 쉴 것을 요구했다. 정말 몸은 조금이라도 쉬고 싶어 했다. 그러나 머리는 알고 있었다. 지금 주저앉으면 안 된다는 것을, 한번 주저앉은 몸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만큼 몸은 만신창이였다. 시간 내에 한림항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힘들더라도 어쩔 수 없이 그냥 걸어야 했다. 그것 외는 방법이 없었다. 어기적어기적 걸었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나는 내부에서 울려오는 삐거덕거리는 기계음을 들어야 했다. 나는 좀비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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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해안도로 풍경. 전봇대에 어지럽게 엉킨 전선이 그때의 몸과 정신상태였다.>


되돌아온 길은 해안도로와 만났다. 이후 내륙으로 꺾이는 수원리 표지석까지는 꽤 긴 길이었다. 지나간 마을마다 용천수는 바다에 흔적을 남겼고, 정자가 바다 쪽으로 나가 설치되어 있었다. 정자는 쉬어가라고 앉아가라고 유혹하고 있었으나 무시하고 묵묵히 걸었다. 바다 풍경의 사진을 찍고 있었으나, 풍경은 마음에 들어와 자리를 잡지 못했다. 모든 풍경은 하나의 색으로 뭉겨졌다. 잿빛이었다. 그리고 잿빛 속에 숨어있는 것들을 확인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길의 이미지는 매우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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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천수와 바다로 나가는 길>


길이 수원리라는 마을의 안내석에서 해안도로와 작별하고 내륙으로 들어갈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강한 비는 아니었다. 보슬비였다. 우산 펴기가 귀찮아 비를 맞으며 걸었다. 젖는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한림항에 도착하는 것만이 걷는 유일한 목적이어서 다른 것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직선의 밭길이 이어졌다. 수원리라는 마을로 들어섰다. 비는 그새 그쳤다. 지나가는 비였다. 마을 길을 걷는 동안 머리는 한계에 다다랐는지 마을만 벗어나면 종점(사실 긴 항구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에 거의 다 왔다고 단정 지었다. 그래서 조급해졌다. 조급한 마음은 마을을 벗어나 한림항에 도착한 것 같은데 종점이 보이지 않으면서 짜증으로 폭발했다. 왜 안 나와? 한림항 아닌가? 아직 멀었나? 분명 카카오맵은 종점이 아직이라고 보여주고 있지만, 커다란 배와 비양봉이 가까이 보이자, 머리는 또 다 왔다고 단정해버렸다. 그렇게 단정해버리면서 마음은 조급해졌고 육체는 조금 더 가면 된다는 체면에 걸린 듯 어떻게든 버텼다. 그러다 종점이 안 나타나자 육체와 정신은 한 번에 무너져버렸다. 급격한 피로가 육체에 밀물처럼 밀려들었고, 짜증이 머릿속에서 클레이모어 지뢰처럼 폭발했다. 자폭이었다. 이렇게 무리한 계획을 짠 나에게 화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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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리 밭과 마을길>


바다를 가르는 직선의 도롯가에는 오토바이들이 즐비하게 주차되어 있었고, 대부분의 라이더는 낚시하고 있었다. 이곳은 낚시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이런 사실이 중요하지 않았다. 빨리 종점에 가고 싶었다. 거리가 줄어들수록 마음의 거리는 오히려 좁혀지지 않거나 더 멀어졌다. 때론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피곤으로 절은 몸은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갔지만, 짜증에 점령당한 마음은 몸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버릇인 듯 한수리를 알리는 안내판과 죽도연대가 있었던 터라는 사실을 알리는 안내석이 보이자 읽었다. 다시 걸었다. 드디어 몸이 도착한 종점에 도착하자 마음도 순간이동을 한 듯 순식간에 몸을 따라 도착했다. 15시 40분이었다. 종착 스탬프를 찍고 바로 물을 마셨다. 오는 동안 물 마실 시간마저 아까워 마시지 않았다. 이것이 올레가 바란 모습일까? 깊은 자괴감이 들었다. 잠시 쉬는 동안 14코스에서 온 두 사람이 종점 스탬프를 찍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과 말을 섞을 시간과 여유가 없었다. 그들을 뒤로하고 버스 정류장으로 걸었다. (2024.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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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항과 멀리 비양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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