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코스 B (한림항←고내포구, 13km ) 2
해신당에서 한 블록 더 가면 길은 오른쪽 골목으로 꺾였다. 그 모퉁이에 하얀 벽면의 건물이 있다. 벽면의 그림에 시선이 갔다.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벽화를 계속 주시하며 다가갔다. 하얀 벽면에서 1/2 정도 칠해진 노랑 바탕에 하얀 옷을 입고, 부채를 든 흑인 여성이 크게 그려져 있었다. 그녀는 진주 목걸이를 걸쳤고, 초록 잎의 빨간 카네이션으로 장식된 모자를 썼다. VIVA CUBAA라는 글자는 그녀의 왼쪽 어깨 상단에 엷은 그림자처럼 놓였다. 초록 바탕에 노랑 글씨의 간판이 그림의 출처를 알리는 견출지처럼 건물 옆에 붙어있다. 전체적으로 노랑, 주황, 초록의 트로피컬 한 컬러가 그림을 채웠다. 열대의 분위기가 풍겼다. 그런데 조금만 주변으로 눈을 돌리면 열대의 분위기는 급격히 사그라든다. 주변은 조용한 제주의 일반 농가였고, 사람도 없어 한산했기 때문이다. 주변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주변을 아랑곳하지 않는 독특함이 건물에 열대의 분위기를 짙게 농축시키고 있었다. 쿠바 샌드위치를 파는 ‘VIVA CUBA’였다.
‘VIVA CUBA’를 끼고 골목을 들어선 길은 집들이 차츰 사라지고 나타난, 갈대와 들풀 그리고 긴 현무암 더미의 쓸쓸한 초록 평원으로 이어졌다. 집들이 뒤로 물러난 길의 초입에서 마주한 느낌은 낡음이었다. 갈림길에 있던 녹슬어 가는 컨테이너가 무관심 속에서 낡아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바다로 나간 곳에 있는 정자는 바다를 보며 지아비를 애타게 기다리다 망부석이 된 여인처럼 하염없이 바다를 보고 있었다. 애월항과 애월리 그리고 그 너머의 고내봉이 한눈에 들어왔다. 해안 가까운 곳에 파도가 띄엄띄엄 하얀 포말로 조용히 사라졌다. 이곳이 제주의 독특한 조업 방식인 원담이었다. 썰물 때, 바닷물이 물러나면 현무암으로 쌓은 긴 원담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밀물일 때, 원담은 바닷물에 잠겨 사라진다. 볼 수는 없어도 밀려오는 파도가 조금 높게 쌓인 원담에 부딪혀 하얀 포로로 무너지는 것으로 원담의 위치를 알 수 있다. 주변에 포구가 있고, 해변 가까이에서 파도가 조용히 작고 하얗게 부서지면 그곳에 원담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돌담을 따라 걸었다. 돌담 너머, 회색빛의 갈대들이 바닷바람에 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돌담 중간에 안내문 하나가 서 있다. 애월환해장성을 알리는 안내문이었다. 환해장성?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성벽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가만, 이 밭담 같은 것이 환해장성? 성벽이라 하기엔 너무 낮고 그동안 보아온 환해장성과 너무도 달랐다. 다른 곳은 규칙적으로 쌓아져 있어 그래도 성곽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성곽의 형태라기보다는 그냥 일렬로 쌓여 있는 현무암 돌무지 같았다. 안내문이 없었다면 환해장성이라고 절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밭담 같은 환해장성을 따라 걸었다. 환해장성 너머에 휴대용 손 선풍기 모양의 거대한 시설물 두 개가 우뚝 서 있다. 왠지 괴리감이 들었다. 저 원형의 거대한 시설물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압도되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거대한 것을 보면 공포를 느끼는 거대공포증, 메갈로포비아일까? 아닐 것이다. 19, 20코스에서 거대한 풍력발전기들과 마주했을 때 압도는 되었지만, 불안감은 없었다. 아마 그것이 풍력발전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즉 휴대용 선풍기 모양의 거대한 시설물들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인간은 알지 못한 존재와 마주할 때 두려움을 느낀다. <상상력 사전>에서 베르나르 베르베르는‘모르는 존재는 인간에게 상상을 통해 두려움을 확대시킨다’라고 했다. 저 거대한 원형의 시설물의 용도와 이름을 모르기에 머리는 상상하기 시작했다. 침략한 외계인이 인간을 감시하기 위해 설치한 시설물이라고. 참 어리석은 생각이었지만 그 시설물에 감시탑이라는 이름과 감시라는 용도를 부여하자 불안은 조금씩 엷어졌다. 결국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거대함에 대한 공포와 만나면서 마음의 결이 어긋나 무척 불안했던 것이다. 내가 너무 예민한 것일 수도 있다. 근처에 돌탑에 세워져 있어, 그곳에 예민함의 일부를 잘라 놓아두고 다시 걸었다.
환해장성이 끝나는 곳은 경계였다. 어양마을을 알리는 경계석이 세워져 있었다. 그곳에서 바다를 봤다. 노랑과 검은색의 시설물이 바다에 설치되어 있었다. 등표였다. 이곳에 암초가 있으니 배들은 접근하지 말라는 암초 등표였다. 등표는 주변 해역이 위험한 곳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항로표지이고 암초나 해저면에 설치한다. 등표와 비슷한 등대는 육지나 항구가 있음을 알려주는 항로표지로 곶, 섬, 방파제에 설치된다.
빗물이 고인 웅덩이가 군데군데 생긴 길을 따라 전봇대들이 일렬로 행군하고 있었다. 전봇대들의 행군이 멈춘 곳부터 갈대들은 지친 보병의 소총수처럼 고개를 떨구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갈대의 휴식을 흔들며 걸었다. 현무암으로 가득한, 석탄을 뿌린 것 같은 까만 해변에서 걸음을 멈췄다. 먼바다에 풍력발전기들이 식당 광고를 위해 춤추는 바람 인형처럼 날개를 움직이며 바다에 고정되어 있다. 까만 해변을 보았다. 이곳이 한때 소금을 만들었던 ‘배무숭이 소금물밭’이다. ‘배무숭이’는 배가 부서진 곳이라는 뜻이고, 이곳의 안내석에 소금을 만든 방법이 적혀있다. 여기에‘허벅’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허벅은 제주에서 물을 길 때 사용하던 항아리이고, 때로는 제주민요를 노래할 때 장구 대신 노래 장단을 맞추기 위한 타악기나 제주 민속춤인 허벅춤의 무구로도 사용한다고 한다.
소금밭은 구들돌을 놓듯이 평평하게 다져놓고 그 위에 모래를 깔았다. 모래에 바닷물을 여러 차례 부어 말리기를 며칠 동안 반복하면 모래에 소금꽃이 핀다. 이것을 움푹하고 널찍한 돌 위에 얹어놓아 짠물을 빼낸다. 허벅으로 짠물을 받아 집으로 가져가 가마솥에서 졸이면 소금이 만들어졌다. 짠물을 그대로 물소금으로 간장처럼 사용하기도 하였다.
제주도에는 소금을 만들 때 사용하는 방식과 도구- 종달리의 가마솥, 구엄포구의 넓은 바위, 배무숭이의 돌과 모래 그리고 가마솥-도 다양했다. 그러나 다양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것을 보존하는 방식도 다양했다. 종달리는 체험관으로, 구엄포구는 형태의 보존으로 그러나‘배무숭이’는 표지석 하나 세워놓고 방치하고 있었다. 솔직히 바닷물을 빼내는 널찍한 돌이 어느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배무숭이 소금물밭’ 주변 여기저기 쓰레기들이 버려져 있었다. 무관심에 쓸쓸했다.
길은‘배무숭이 소금물밭’에서 위로 향하다 대문 역할을 하는 정낭이 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꺾였다. 허공에 있는 떠 있는 노란 것에 눈길이 갔다. 커다란 노란 컵이었다. 옆에는 두 대의 녹슨 펌프가 놓여있고, 펌프 왼쪽에 글자가 빠진 A와 Y가 오른쪽엔 PUMP라는 하얀 영문자가 세워져 있다. 이곳이 레이지 펌프라는 카페였다. 원래는 양어장이었는데, 물을 긷던 펌프장을 개조하여 만든 카페다. LAZY, ‘게으른’ 또는 ‘여유로운’이니, ‘L’과 ‘Z’를 넣어 고치지 않는 간판을 보면 ‘게으른’이 맞고, 카페를 보면 ‘여유로운’이 어울릴 것 같았다. ‘L’과 ‘Z’가 없는 게으른 간판이 VIVA CUBA에서부터 이곳까지의 풍경을 은유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길에는 다른 길에서 느낄 수 없는 쓸쓸함이 깊게 배어있다. 외면받고, 끝내 무관심 속에 버려진 곳을 바라볼 때 느껴져 오는 쓸쓸함이었다. 초입의 녹슬어 낡아가는 컨테이너가, 돌무지 같은 환해장성이, 검은 현무암 해변 같은 배무숭이 소금물밭이 그랬다. 안내문이나 안내석이 없었다면 그 형태로는 존재 이유를 몰랐을 것이다. 암초 등표마저 이곳의 접근을 경고하고 있다고 해석되었다. 그래서 외면으로 고립된 무상함의 초록 평원 같았다. 초록 평원은 쓸쓸함으로 메말라 갈대의 회색으로 바스러져 바람에 허공으로 흩어질 것 같았다. 그럼에도 존재들은 무상함의 쓸쓸함 속에서 초연하여 단단하게 남아 있었다. 그래서일까? 주인의 외면으로 L과 Z가 없어 온전한 글자가 되지 못한 간판이 지나온 길의 결과로, 지나갈 길에 대한 예비로 느껴졌다.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들이 올라온 길을 내려갔다. 그리고 풍경은 확 바뀌었다.
(2024.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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