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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돌염전, 그리고 터널

16코스(고내포구←광령1리사무소, 15.5km) 4

by 커피소년


드디어 바다로 나왔다. 구엄포구였다. 파랬다. 가는 선 하나가 횡으로 파란 공간을 갈랐고, 위아래로 농담이 달랐다. 농담에 따라 하늘과 바다는 뚜렷이 구분되었다. 하늘은 밤새 벌어진 구름과의 전쟁에 힘을 쏟은 까닭인지 바다보다 묽은 파랑이었다. 그러나 하늘은 그 대가로 평화를 얻었고, 그 평화는 바다의 난폭한 성질마저 잠재웠다. 그래서 바다는 본래의 색을 드러낼 수 있었다. 해안 길을 걷는 내내 내륙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고 대부분 평화가 스며있는 바다를 봤다. 스마트폰의 카메라가 하늘과 바다로 향하면 여지없이 화면에는 농담이 다른 두 파란색이 담겨있었다. 구엄포구에서 신엄포구를 거쳐 고내포구까지, 그리고 그 뒤의 15코스는 해안 길이었고, 이 길은 지금 나에게 파랑으로 각인되어 있다.

<해안쪽 풍경은 어디나 파랬다>


지난 이틀 간의 날씨가 스쳤다. 첫날은 잿빛 하늘 아래 미친 듯이 분 강풍이 길을 지배했다. 강풍은 잿빛 배경의 풍경을 빨랫줄에 걸린 옷처럼 거칠게 흔들었다. 어제, 바람은 잦아들었지만, 하늘은 여전히 잿빛이었다. 고요한 잿빛. 지금은 그 잿빛마저 사라지고 파란색이 세계를 물들이고 있다. 이번 올레의 날씨는 그러데이션 했다. 무채색의 세계에서 유채색의 세계로, 폭풍에서 한들 바람을 지나 무풍으로. 자고 나면 어느새 변해있었다.


구엄포구에서 마주한 단어는 염전이었다. 일반적으로 염전은 갯벌에서 만들어진다. 갯벌에 칸막이를 만들고, 이 안으로 들어온 바닷물을 햇볕으로 말리면서 소금을 만든다. 이것이 천일염이다. 구엄포구에서는 천일염을 넓적한 바위에서 얻었다. 바위 위에 찰흙으로 둑(둑의 높이와 폭은 약 15cm 정도이고, 이 둑을 두렁이라고 한다)을 쌓았고, 이곳에 고인 바닷물이 햇볕에 마르면 소금이 생겼다. 그래서 이곳을 ‘돌염전’이라고 불렀고, ‘소금빌레’ 또는 ‘소금밭’이라고 하기도 했다. ‘빌레’는 제주어로 ‘너럭바위’이다. 이 방법은 조선 명종 14년(1559년)에 부임한 목사 강려가 구엄리 주민에게 알려주면서 시작되었고, 이 방법은 조선 명종 14년(1559년)에 부임한 목사 강려가 구엄리 주민에게 알려주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후 1950년대까지 약 390년 동안 돌염전은 구암 마을주민들의 생업이자 삶의 바탕이 되었다. 돌염전의 길이는 해안을 따라 300m 정도였고 폭은 50m였다. 규모는 1,550평 정도에 한 가구당 20~30평 정도 소유했다. 상속도 가능하여 큰딸에게 상속해 주는 풍속도 생겼다고 한다. 그 당시에 여성에게 상속되었다고 하니 일반적이지는 않아서 어떤 이유가 있을 것만 같았다.

<돌염전 안내판>


돌염전은 넓은 바위에 여러 개로 구획된 두렁이 때문에 거북이 등처럼 보였다. 한눈에 봐도 바위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자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두꺼운 철갑을 두른 생명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새벽까지 비가 온 탓인지 전시를 위해 만들어 놓은 돌염전 두렁이에 빗물이 채워져 있었다. 관광객 두 명 중 한 명이 두렁이에 올라 자세를 잡고 다른 이가 사진을 찍었다. 어느 좋은 날에 두렁이에 채워진 물에 파란 하늘마저 담기면 멋진 그림이 될 것 같았다.

<돌염전의 두렁이>


염전이라고 하니 21코스 종점에 있던 종달리 염전이 생각났다. 구엄포구와 종달리의 염전은 같은 것일까? 종리달에서 넓적한 바위를 보자 못 했다. 돌아와 검색해 보니 종달리는 근처 지미봉과 두산봉에서 땔감을 가져와 가마솥에 열을 가하여 소금을 생산했다고 한다. 돌염전과는 다른 방식이었고, 소금을 생산하는 방식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종달리 염전에서 구엄포구 안내판에 있었던 이름을 또 보게 되었다. 바로 ‘강려’였다. 그는 1573년(선조 6년)에 제주목사로 부임하면서 종달리 주민을 육지로 파견해 제염술을 익히게 했다고 한다. 강려는 제주 소금 생산의 아버지가 아닌가? 싶었다. (강려는 1555년 이후, 군관과 대정현감, 그리고 목사로 제주와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구엄포구에는 명종 14년(1559년)에 돌염전을 전수했다고 하니, 그때 그는 제주목사는 아니고 대정현감 정도였을 것이다)

<거북이 등딱지 같은 바위>


거북 등딱지 같은 돌염전을 보며 걸었다. 16코스 해안 길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길은 대부분 해안 도로를 따랐지만 해안 도로에서 바다로 뻗어나간 곳이 있다면 올레길은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때론 소나무 방풍림이 우거졌고, 때론 낮은 풀들의 평원이었다. 올레길은 어떻게든 바다를 가까이 곁에 두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 덕에 나도 바다를 조금 넓게 볼 수 있었다. 올레길이 해안도로를 따라 쭉 이어졌다면 계속되는 아스팔트의 검은색으로 인해 많이 지루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길이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어서 파장이 긴 파동 같았다. 내리막의 끝에 포구가 있고 포구를 지나면 다시 오르막이었다. 배와 사람 그리고 물자가 드나들려면 해수면과 같은 곳이어야 하고, 파동의 골 같은 곳에 포구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를 보면 인간의 삶의 조건은 자연에 많이 좌우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파동의 마루 같은 곳은 절벽이었고, 그곳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은 거칠 것 없는 개방감으로 가슴을 시원하게 했다. 그 시원함으로 다시 걸을 수 있었다.

<어디나 이런 풍경이었다>


중엄새물을 지나 애월돌고래전망대를 거쳐 완만한 오르막을 걷다 보면 언덕배기 숲 사이에 나무로 만든 데크가 있다. 고래전망대라는 하는데 고래를 보려면 시간적 여유가 많아야 할 듯했다. 이곳부터 서서히 내리막이 시작되는데 어느 순간 급격하게 절벽 아래로 내려가 해안가에 닿는 계단이 있다. 방파제가 보였는데 그곳이 신엄 포구였다. 포구로 가는 길에 제주의 뗏목 배인 테우의 모형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 테우가 설치된 이유를 모르겠다. 테우에 대한 설명만 있고, 이곳에 설치한 이유는 없었다. 이호테우 해수욕장처럼 테우 축제가 열리나? 이곳의 테우를 타고 바다로 나가면 파도가 조금만 높아도 무척 두려울 것 같았다.

<테우와 고래전망대에서 본 바다>


신엄포구를 지나면 다시 서서히 오르막이 시작된다. 오르다 보면 길은 짧게 바다 평원으로 빠져 다시 해안 도로로 돌아온다. 이 샛길 입구에는 나무가 만든 둥그런 작은 터널이 있다. 터널 너머로 파란 바다가 보이고 거길 지나면 왠지 다른 세계로 들어갈 것 같았다. 엉뚱하게 둥근 터널은 동굴을 연상시켰고, 동굴은 플라톤을 불러냈다. 그즈음 플라톤의 동굴 비유와 영화관에 대한 짧은 글을 쓰며 끙끙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터널을 통과한 후에 그 글에 관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돌아와서 그때의 생각을 기초로 글을 다듬었다.

<이 작은 터널로 인해 동굴과 플라톤 그리고 영화관으로 생각이 이어졌다>
<다락 쉼터와 고내포구 간세>


샛길에서 도로로 돌아온 길은 완만한 내리막이었다. 다시 바다로 난 초록 평원이 나왔고, 다락쉼터였다. 하단에 aewol이라고 적혀있는, 가슴에 하트 모양으로 구멍이 난, 넉넉한 돌하르방이 자리를 잡았고, 평원의 끝에 빨간 전화부스가 세워져 있었다. 자전거가 근처에 있고 라이더 복장의 남자가 안에서 뭔가를 찍고 있었다. 이곳이 올레처럼 제주도를 자전거로 일주할 때 기념으로 스탬프를 찍는 곳이었다. 계속 걸었고 드디어 고내포구에 도착했다. 스탬프를 찍었을 때가 오전 11시 40분이었다. 몸에서 무리하고 있다는 신호가 오고 있었다. (2024. 10. 22)


아래는 둥근 터널을 지나며 길에서 떠오른 단상을 정리해서 영화에 관해 쓴 글이다.


영화관에 가는 이유


빛의 명암이라는 단순함으로 세상을 보여주는 곳이 있다. 그곳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가 비유한 동굴을 현실화시킨 곳이다. 그러나 의미는 반대로 읽힌다. 바로 영화관이다. 캄캄한 암흑이 용인되고, 어둠에 대한 두려움마저 소멸한 공간, 전면에 배치된 환하고 거대한 스크린 그리고 후면의 작은 구멍에서 암흑을 가르며 스크린 위를 비추는 한 줄기 빛. 빛의 명암만으로 스크린 위에는 하나의 세계가 펼쳐진다.


플라톤에게 본질은 이데아였다. 현실 세계는 이데아의 모사에 지나지 않았다. 우화에서 동굴 밖의 진짜 세상이 이데아였고, 횃불에 의해 동굴 안 벽에 비친 그림자는 모사였다. 그리고 동굴 안의 죄수들은 이 그림자를 보고 진짜 세계라고 착각했다.


영화관 밖의 세계는 진짜 세계다. 내가 앉아 있는 깜깜한 영화관은 동굴이고, 한 줄기 빛에 의지해 스크린 위에 그려진 영상은 진짜 세계의 모사이다. 영화라는 모사를 보고 있는 나는 플라톤에 의해 죄수가 된다. 다만 플라톤의 비유와 다른 점은 동굴 속의 죄수는 바깥 세계의 존재를 모르고 그림자를 진짜 세계라 믿지만, 난 극장 밖의 세계가 진짜임을, 그리고 스크린의 영상이 그 세계의 모사임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플라톤이 이런 내 모습을 보면 한심해했을 것이다. 진짜 세계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보지 않고, 그것도 시간과 돈을 들여 그 모사를 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스크린 위에 떠 있는 모사의 세계를 통해 영화관 밖에서 내가 보지 못했던 진짜 세계를 이해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간들, 상황들 그리고 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진짜 세계를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그러므로 영화관이라는 동굴은 본질의, 또는 진짜 세계의 무덤이 아니라 본질이, 진짜 세계가 부활하는 공간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스크린 위에 비친 빛을 거꾸로 따라가 극장 밖, 진짜 세계로 나가고 있다.


이런 면에서 플라톤은 틀렸다. 그는 예술을 이데아의 모사라는 현실 세계를 또다시 모사한 거짓된 것이라며 정말 싫어했다. 오죽했으면 '국가'에서 시인을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을까. 그러나 그것은 직선적인 세계관이 낳은 폐해다. 이데아라는 본질에 두 단계 떨어져 있으니 거짓의 농도가 더 짙어졌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그 직선을 휘어서 서로 이으면 본질은 예술과 연결된다. 이에 따라 예술은 본질을 비추고, 본질은 예술로 인해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


우리의 현실 세계는 매우 복잡하다. 그래서 요즘은 복잡한 허상의 숲을 뚫고 본질에 다가가는 것이 더욱 어렵다. 그나마 예술이라는 수단이 있어, 본질의 작은 파편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내가 돈을 지불하고 시간을 내서 영화관에 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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