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정치를 습관으로 만들어야 하는가 1부 | EP.05
당신이 가진 정치 감정은
그 자체로 순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미디어가 걸러서 보여준 정보,
SNS가 강화시킨 감정,
댓글 창에서 감염된 단어들이
감정을 ‘강화’시킨다.
2부. 성공하는 시민들의 3가지 습관(11회)
3부. 관심의 원을 영향력의 원으로 확장하기(8회)
어느 날, 뉴스를 끄고 싶었다.
화면 속 정치인의 말이
내 감정을 자극했다.
“저 사람 말하는 태도 봐.”
“또 시작이야.”
“이젠 지긋지긋해.”
그리고 생각했다.
“이래서 정치가 싫어.”
그렇게 리모컨을 내려놓았을 때,
나의 하루는 잠시 평온해졌지만,
내 안엔 또 하나의 피로가 쌓였다.
‘혐오’였다.
정치 혐오는 이상하다.
분노하면서도 무력하다.
화를 내면서도 피로하다.
“이건 정말 아니지.”라고 말하면서도
“그래봤자 뭐가 바뀌겠어.”라는 말로 끝난다.
당신도 느껴본 적 있지 않나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부조리.
그러나 말해봤자 허무할 뿐인 그 감정.
그게 바로
‘정치 혐오’가
우리 안에서 살아남는 방식이다.
누구는 말한다.
“정치가 문제야.”
“정치인은 다 똑같아.”
“정치 자체가 구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이
내가 한 말인지,
누가 시킨 말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정치 혐오는
분노의 문제일까,
피로의 결과일까?
아니면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 마음이
내 감정의 형태를 바꾼 걸까?
질문이 필요하다.
�♀️ 나는 왜 정치에 화가 나는가?
�♂️ 나는 왜 정치에 피로감을 느끼는가?
� 나는 그 피로감을 말하고 있는가, 쌓아두고 있는가?
정치 혐오가 반복된다는 건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스템은
내 감정을 먹고 자란다.
정치는 내게 기대를 품게 만들고,
실망하게 하고,
무기력하게 만들고,
다시 외면하게 만든다.
그 모든 감정의 순환 속에서
내가 잃어버리는 건
‘참여의 힘’이다.
정치 혐오의 반복,
그건 단순히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삶의 시스템이 나에게 감정을 강요하는 방식이다.
뉴스를 켜면 늘 싸움이다.
국회는 회의보다 고성으로 유명하다.
토론은 실종되고,
자극적인 언어만 떠다닌다.
왜일까?
정치는 본래 갈등을 조정하는 기술이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 구조는
갈등을 확대하는 기술처럼 작동하고 있다.
언론은 왜 싸움만 보여줄까?
왜 자극적인 표현만 기사 제목에 남을까?
답은 간단하다.
조회 수다.
댓글 수다.
노출 알고리즘 때문이다.
“○○ 의원, ○○에게 폭언”
“이재명-윤석열, 또 설전”
“○○당, 전당대회에서 계파 갈등 폭발”
이런 제목은 클릭을 부른다.
그래서 언론은 다툼을 키운다.
그리고 시민은 피로해진다.
SNS는 더 심각하다.
내가 보는 정보는
나와 비슷한 생각만 보여준다.
의견이 다르면
숨김.
반박.
차단.
조롱.
결국
소통이 아닌
진영의 확증만 남는다.
당신이 가진 정치 감정은
그 자체로 순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미디어가 걸러서 보여준 정보,
SNS가 강화시킨 감정,
댓글 창에서 감염된 단어들이
감정을 ‘강화’시킨다.
정치 혐오는 개인의 성격이 아니다.
시스템이 설계한 감정 반응일 수 있다.
정치 갈등 구조는
‘내가 옳고, 너는 틀리다’는
이분법 위에 세워진다.
정당은
정책이 아니라
인물과 구호에 집중한다.
“우리가 이겨야 한다.”
“저쪽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이런 언어는
혐오를 정당화한다.
당신은 사실,
정치인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를 '이렇게밖에 못하게 만든 구조'에
실망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실망은
자주 '사람'에 대한 혐오로 변질된다.
정치 혐오는
결국 구조가 만들어낸 ‘감정의 피로’다.
우리가 이 구조를 인식하지 못하면
그 피로는 반복된다.
그 감정은 점점 둔감해진다.
그리고
참여는 멀어진다.
처음엔 화가 났다.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지?”
“이건 정말 말이 안 돼.”
그다음엔 지쳤다.
“봐도 똑같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도 없어.”
그러다 점점
안 보게 된다.
뉴스도, 토론도, 투표도.
“아무리 봐도 바뀌지 않아.”
“내가 뭘 해도 소용없어.”
그리고 나중엔
혐오하게 된다.
“정치인 다 똑같아.”
“정치는 다 썩었어.”
“정치라는 단어만 들어도 짜증나.”
이게 정치 혐오의 흐름이다.
처음은 ‘정당한 분노’였지만
그 분노는 방향을 잃고
피로가 되고,
무관심이 되고,
혐오로 돌아온다.
정치 혐오는 ‘느낌’이 아니라
습관이 된다.
뉴스를 보면 피곤하고,
정치 이야기를 들으면 짜증이 나고,
정책 토론을 시도하면 입을 닫는다.
그러다 나중엔
정치에 대해 말하는 사람까지
멀리하게 된다.
그게 무서운 것이다.
정치 혐오가 깊어질수록
정치와 함께
사람과도 멀어진다.
가족끼리 정치 얘기하지 않는다.
친구끼리 정치 얘기 꺼내지 않는다.
동료끼리 정치 이야기를 조심한다.
우리는
서로 말하지 않는 연습을 하며
민주주의를 잃는다.
한 심리학 논문에서는
“감정이 강할수록 행동이 위축된다”고 말했다.
너무 화가 나면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정치 혐오는
‘강한 감정’이지만
‘무력한 행동’으로 이어진다.
그게 악순환이다.
우리는
혐오를 느끼지만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
변화를 시도하지 않으니
정치는 변하지 않는다.
정치가 변하지 않으니
또 혐오가 생긴다.
이 순환이 멈추지 않는 한,
시민은
소외되고,
정치는
기득권의 장이 된다.
그래서 혐오를 멈춰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혐오를 ‘의심’해야 한다.
이 감정은 어디서 왔는가?
정말 내가 느낀 것인가?
아니면, 구조가 나에게 학습시킨 것인가?
질문이 시작되는 순간,
악순환은 끊어진다.
혐오는
바깥을 향한 분노 같지만
사실은
나를 향한 체념이다.
혐오는
그들을 미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나 자신에게 무력감을 남긴다.
혐오는
“내가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어”라는
마음의 표현이다.
그 감정은
처음에는 뜨겁고 날카롭지만
곧 무겁고 둔해진다.
그리고
당신은 점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된다.
정치는 말하는 사람의 것이다.
정치는 질문하는 사람의 것이다.
정치는 감정을 넘어서
참여하는 사람의 것이다.
그러나 혐오는
말을 멈추게 한다.
질문을 포기하게 한다.
참여의 문을 닫는다.
혐오는
나를 보호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나를 고립시킨다.
혐오는
일종의 감정 방어막처럼 보이지만
결국
참여하지 않는 시민을 만든다.
정치는
참여하지 않는 시민을 기다리지 않는다.
기다리는 건
기득권이다.
조직이다.
변화를 거부하는 힘이다.
그래서 우리는
혐오를 멈추는 연습이 필요하다.
아니,
혐오를 의심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 감정은
정당한가?
반복되는가?
내가 바꿀 수 있는가?
그 질문이
참여의 문을 다시 연다.
그 질문이
내가 정치 속으로 다시 들어오는 통로가 된다.
혐오를 멈추는 것은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감정을 넘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감정은 있어도 된다.
하지만 그 감정이
참여를 멈추게 해서는 안 된다.
�♀️ ① 감정을 구체적인 말로 표현해보자
“짜증 나” 대신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서 화가 났어.”
“이 정책이 나 같은 사람은 고려하지 않는 것 같아.”
이렇게 감정을 ‘문장’으로 정리하면
‘비난’에서 ‘문제 제기’로 바뀐다.
� ② 문제와 사람을 분리해보자
사람에 대한 분노가
정책 전체에 대한 거부감으로 번지지 않도록.
‘정책’의 구조를 바라보면
누가 아니라
‘무엇’을 바꿔야 할지가 보인다.
� ③ 혐오 대신 탐색을 선택하자
정치인을 욕하는 글 대신
정책이 어떻게 결정됐는지를 검색해보자.
‘청년 주거 정책 변화’,
‘출산장려금 예산의 지역별 차이’,
‘무상급식 논쟁의 실제 내용’
정보는 감정을 줄이고,
참여를 부른다.
� ④ 친구나 동료와 정치 대화를 시도해보자
처음엔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느꼈는데, 너는 어땠어?”
라는 말은
정치를 감정에서 관계로 확장시킨다.
� ⑤ 작은 실천을 해보자
구청 민원 창구에 글을 남기기,
지역 주민의견 설문 참여하기,
SNS에 정책 제안 공유하기.
단 한 줄의 말이
정치를 다시 ‘나의 일’로 만든다.
정치는 거창한 언어보다
매일 반복되는 감정의 선택에서 바뀐다.
당신이 오늘
감정에서 멈추지 않고,
질문하고,
관심을 갖고,
한 걸음만 움직인다면
정치는 당신의 것이 된다.
� “나는 언제 정치에 분노했고, 언제 그 분노를 잊었나요?”
� “정치 혐오의 감정은 누구에게 이득이 되었고, 나는 무엇을 잃었나요?”
� “오늘 나는 감정을 넘어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까요?”
정치는 감정의 언어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정치는 행동의 언어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그 행동은
언제나 감정에서 시작됩니다.
분노하되 무기력하지 않기.
비판하되 외면하지 않기.
실망하되 포기하지 않기.
그 감정의 훈련이
시민의 시작입니다.
1) 정치혐오의 하위요인과 정치참여와의 관계 연구 –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 2019)
2) "국민의힘 민주당 다 싫고, 심판론도 지겹다"…2030세대 16명의 속내 - (머니투데이, 2024.04.06)
3) 정쟁 보도는 국회와 언론의 공동작품 – (신문과방송 2004년 11월호 No.407)
4) ‘AI 뉴스 추천 알고리즘’ 무심코 믿다간 큰코다친다 – (신동아, 2021.03.15)
『성공하는 시민들의 3가지 습관』
� 7화: 기득권은 왜 시민의 무관심을 좋아하는가
에서는 왜 기득권 세력은
시민의 침묵과 무관심 속에서 더 강해지는지를 살펴봅니다.
정치가 우리 손을 떠날 때,
그 빈자리를 누가 채우는지 함께 확인해보세요.
시민의 침묵은 곧 누군가의 권력입니다.
다음 회차에서 ‘권력과 무관심’의 관계를 함께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