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관계능력 BVS.06 | EP.1
대인관계능력은 단순히 ‘사람과 잘 지내는 능력’ 그 이상이 된다.
그것은 감정을 읽고, 인정하고, 돌보는 기술이다.
“그냥 커피 한 잔 하자고 했을 뿐인데… 어색했던 분위기가 정말 거짓말처럼 풀렸어요.”
민지 대리는 여느 날처럼 회계 보고서 마감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주 앉은 구매팀의 준혁 과장과 또다시 의견이 부딪쳤다. 단순한 수치의 해석, 납기일 기준, 단가 적용 방식 하나하나마다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닌데, 두 사람은 매번 다르게 해석했다. 그 차이보다 더 깊은 문제는 ‘말투’와 ‘표정’, 그리고 ‘감정의 방식’이었다.
회사란 곳이 언제부터 이렇게 말이 어려워졌을까?
‘예민하게 굴지 마’, ‘그건 감정적인 대응이야’, ‘프로답지 못해’라는 말들.
그 말들이 서로를 조용히 닫아걸고 있었다.
『리워크1 – 일이 싫어진 시대』를 쓰며 나는 그 첫 번째 에피소드에 ‘감정은 업무의 낭비가 아니라 신호다’라는 문장을 남긴 적 있다. 실제로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일은 감정 없는 기계적 반복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업무는 언제나 감정이라는 필터를 통과해서 해석된다.
“예민한 게 아니라, 감정센서 감수성이다”,
“감정을 다룰 줄 아는 것이 요즘 시대의 리더십이다”
라는 이야기를 했던 것도 그래서다.
민지 대리 역시 그걸 알고 있었다. 감정의 문제를 감정으로만 푸는 게 아니라는 것도.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쌓이는 감정은 쌓여 있는 만큼 어색하고, 결국엔 회피가 일상이 된다. 같은 팀원임에도 이메일로만 대화하고, 같은 사무실에서도 인사는 건너뛰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팀장에게 회의실로 불려간 민지는 예상치 못한 장면을 마주했다. 회의실 한가운데 앉아 있는 준혁 과장이 커피 두 잔을 들고 있었다. 낯설게 웃으며 말했다.
“민지 대리, 우리 오늘은 숫자 말고, 커피부터 하죠.”
그렇게 시작된 커피 타임은 놀랍게도 업무 이야기가 아닌 서로의 속사정으로 이어졌다. ‘이거 진짜 고생 많았겠다’, ‘그런 상황이었다는 걸 몰랐네요’, ‘요즘 솔직히 저도 좀 지쳤어요’ 같은 말들이 서툴게 오갔다. 그리고 그 말들은, 수치나 보고서보다 훨씬 큰 진심을 전하고 있었다.
감정이 일을 망치기도 하지만, 감정이 일을 살리기도 한다.
그 대화 후, 두 사람은 보고서 방식에서 절충점을 찾았다. 민지 대리의 속도와 준혁 과장의 꼼꼼함은 상호 보완적이었다. 서로의 강점이 드러났고, 마감은 훨씬 수월해졌다.
돌이켜 보면, 업무에서 갈등은 피할 수 없다. 다만 갈등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좋은 협업’과 ‘나쁜 분위기’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감정의 리더십’이란 결국 그런 것이다. 불편한 대화를 회피하지 않고, 불편한 감정을 외면하지 않는 것.
커피 한 잔은 거창하지 않다. 그러나 때로는 그 한 잔이 누군가의 마음을 녹이고, 협업의 첫 단추를 다시 꿰게 한다.
민지 대리는 지금도 가끔 그때를 떠올린다.
그리고 신입사원이 말없이 앉아 있는 걸 보면 먼저 커피 한 잔을 건넨다.
“요즘, 일하기 어때요?”
그 한마디로, 또 다른 갈등이 예방되기 때문이다.
“그냥 한 말이었어요.”
“별 뜻 없이 던진 말이었는데요.”
“농담이었어요.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받아들이세요?”
사람들이 말실수로 불편한 상황을 만들고 나서 흔히 내놓는 해명이다. 하지만 그 ‘그냥 한 말’이 누군가에겐 며칠 동안 마음속에 남고, 때로는 회사를 떠나게 만든다. 관계를 끊고, 마음을 닫게 한다. 문제는 말의 의도가 아니라, 전달 방식과 맥락, 그리고 받는 사람의 감정이다.
말은 가볍게 던질 수 있어도, 감정은 가볍게 받지 못한다.
회사에서 일어나는 갈등 중 상당수는 ‘업무’보다 ‘태도’에서 시작된다.
그 말투, 그 표정, 그때의 타이밍.
그것들이 감정의 뇌리에 찍히고, ‘그 사람은 나를 존중하지 않아’, ‘나는 팀에서 소외됐어’ 같은 인식을 만든다.
문제는 그 인식이 실제보다 더 오래가고, 더 깊게 스며든다는 점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감정의 잔상 효과(emotional residue)”라고 부른다. 한 번의 부정적인 상호작용이 남긴 인상이, 이후의 모든 업무 해석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단 한 번의 무심한 말이, 그 뒤의 모든 협업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우리는 모두 ‘다른 환경’, ‘다른 언어감각’, ‘다른 민감도’를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말을, 어떤 사람은 무시로 받아들인다.
어떤 사람은 “그건 아닌 것 같아요”라는 표현이 의견 차이일 뿐이지만, 다른 사람에겐 ‘공격’으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화를 연습하지 않는다.
보고서 쓰기, 프레젠테이션, 기획서 작성 등은 무한히 훈련하면서,
정작 ‘사람과의 대화’는 경험으로만 터득하려 한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대화도 업무다. 감정도 일의 일부다.
그런데 우리는 대화에 대해 ‘자연스럽게 하면 된다’, ‘진심이면 통한다’는 막연한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러다 실패하고, 상처 주고, 오해하고, 관계를 잃는다.
대화는 감정의 마찰을 줄이는 윤활유여야 한다.
하지만 훈련되지 않은 대화는 도리어 감정을 상하게 하고, 갈등을 키운다.
결국 문제는 말의 내용이 아니라, 대화의 감각이다.
어떤 말이 언제, 어떻게, 어떤 온도로 전달되는가.
사소한 말로 상처받는 이유는,
우리가 ‘말을 선택하는 능력’, ‘표현하는 방식’, ‘상대의 맥락을 읽는 감수성’을 일상에서 너무 가볍게 여겨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무심함이, 우리가 일하기 싫어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된다.
‘일만 잘하면 되지, 왜 감정까지 챙겨야 하죠?’
많은 직장인들이 이 질문을 한 번쯤 마음속에 품어봤을 것이다. 실제로도 ‘프로페셔널’이라는 말은 오랫동안 ‘감정 없이 일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덧입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공식이 달라졌다.
좋은 직장인, 훌륭한 리더, 강한 팀이 되기 위한 핵심 능력은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조율할 줄 아는 것, 즉 ‘대인관계능력’이다.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은 대인관계능력을 이렇게 정의한다.
“동료, 상사, 고객 등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다양한 상황에서 적절히 소통하고 협력하는 능력”
겉으로 보면 단순한 ‘좋은 인간관계 만들기’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훨씬 더 깊은 내면의 작동이다.
대인관계능력은 단순한 예의범절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의 감정을 인식하고, 내 감정을 조절하며, 그 차이를 조율해가는 복합적인 심리적 협업의 기술이다.
즉, 감정을 ‘통제’하거나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인식하고 다루는 능력’이다.
실제 업무에서 이 능력은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자주 등장한다.
갈등이 생겼을 때, 먼저 피하거나 공격하지 않고 ‘논점’을 중심으로 대화하는 능력
피드백을 줄 때, 비난이 아닌 개선의 메시지로 전달하는 표현 방식
상대방이 지친 티를 낼 때, 눈치 채고 잠깐 커피를 제안하는 따뜻한 감각
다양한 성격의 동료들과 협업하면서도 각자의 스타일을 존중하는 조율력
위기 상황에서 먼저 흥분하지 않고 침착하게 분위기를 다잡는 감정 리더십
이런 상황은 대부분의 직장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때 실수하거나 실패하는 사람은 ‘일 못하는 사람’보다 ‘관계 못하는 사람’일 때가 많다.
결국 조직은 일보다 사람 때문에 힘들어지고, 사람 때문에 해결되기도 한다.
NCS 관점에서 대인관계능력은 크게 세 가지 하위 역량으로 나뉜다.
1. 조직 내 관계 형성 능력: 동료·상사와의 신뢰 형성, 갈등 예방 및 해결
2. 고객 및 외부와의 관계 관리 능력: 고객의 요구 파악, 신뢰 기반의 소통
3. 협력 기반의 팀워크: 공동 목표에 대한 몰입, 역할 분담, 시너지 창출
이 모든 역량의 핵심에는 ‘감정’이 흐르고 있다.
팀워크도, 고객 신뢰도, 협업 성과도 결국 감정을 얼마나 세심하게 인식하고 반응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이 감정의 흐름을 훈련하고, 예민하게 감지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결국 그것은 관계라는 현상을 감정 단위로 이해하고, 감정 단위로 해결하려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즉, 감정이 없어서 좋은 조직이 아니라, 감정을 ‘잘 다루는’ 조직이 좋은 조직이다.
대인관계능력은 단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감정을 중심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협업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초 체력이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 그 능력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기본 소양’이 되었다.
"AI가 감정도 읽을 수 있을까?"
몇 년 전만 해도 낯선 질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고객의 감정을 분석하는 챗봇, 이메일의 어조를 교정해주는 추천 시스템, 회의에서 감정 온도를 시각화해주는 프로그램까지.
AI는 이제 '사람 간 감정'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영역에까지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론 AI가 직접 관계를 맺거나 감정을 느끼는 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감정의 미세한 흐름을 포착하고, 조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감정 보조장치로서의 역할은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다.
다음은 실제 업무 환경에서 AI가 대인관계능력 향상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메일이나 보고서를 작성할 때, AI는 문장의 어조와 분위기를 분석해 과도하게 공격적이거나 지나치게 수세적인 표현을 교정해준다.
“이건 좀 너무 단호합니다. 부드럽게 수정할까요?”
“이 부분은 독자가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완곡한 표현으로 바꿔보세요.”
이는 단순한 맞춤법 검사 수준을 넘어서, 정서적 맥락을 고려한 커뮤니케이션 훈련을 가능하게 한다.
화상회의 툴 중 일부는 참여자의 표정, 말투, 발언 빈도 등을 분석해 회의의 감정 온도를 시각화해준다.
회의 도중 특정 참가자가 발언이 적거나, 부정적 정서가 높아졌을 때 조용히 관리자에게 알림을 보내는 기능도 있다.
이는 “무슨 일이 있어요?”라는 작은 질문이 갈등의 씨앗을 사전에 차단하게 만든다.
사내 설문조사 결과, 이메일 키워드 분석, 팀 간 협업 로그 등을 종합해 팀과 조직 전체의 감정 흐름을 시각화한 ‘감정지도’를 그리는 기술도 있다.
AI는 이를 통해 조직 내 감정적 리스크, 소외감, 피로 누적 지점 등을 미리 포착한다.
예컨대 특정 팀에 반복적으로 부정적 정서가 감지된다면, 그 팀에 대한 리더십 코칭이나 조직문화 개선 워크숍을 제안할 수 있다.
AI 기반 시뮬레이션에서는 다양한 직장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감정적 갈등 시나리오를 제공한다.
“동료가 부당하게 당신을 무시하는 발언을 했을 때,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이에 대해 사용자가 선택하거나 문장을 직접 입력하면, AI는 그 반응의 정서적 파급력과 적절성을 평가해 피드백을 제공한다.
이는 실제 직장에서 감정을 다루는 리더십 능력을 안전하게 훈련할 수 있게 만든다.
AI는 감정을 ‘느끼는’ 존재는 아니지만, 감정을 데이터로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는 존재다.
그리고 인간은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더 세심하게 감정을 다루고, 더 따뜻하게 관계를 설계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HR테크 기업들은 AI 기반의 감정 진단, 감정 피드백, 조직 심리 분석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이는 곧 대인관계능력을 단순한 감에 의존하지 않고, 기술적으로 점검하고 훈련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사실은 다음과 같다.
AI는 ‘사람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사람 간 관계를 돕는 도구’라는 점이다.
진심, 배려, 공감은 여전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러나 그 진심을 더 잘 전달하고, 그 공감을 더 잘 표현하게 돕는 기술이 있다면,
우리는 그 기술을 통해 더 따뜻한 협업, 더 건강한 조직을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종종 조직에서 ‘능력’을 이야기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능력인 감정 센서는 간과한다.
사람과 함께 일한다는 것은 언제나 감정과 함께 일하는 일이다.
회의의 톤, 이메일의 어조, 칭찬의 시기, 피드백의 방식까지—
그 모든 순간이 감정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달된다.
그리고 이 감정의 교류가 조직의 신뢰를 만들고, 협업의 유연성을 결정한다.
이 지점에서 대인관계능력은 단순히 ‘사람과 잘 지내는 능력’ 그 이상이 된다.
그것은 감정을 읽고, 인정하고, 돌보는 기술이다.
특히 리더라면, 이 능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정서의 미세한 떨림을 감지하고,
그 파동을 팀의 생산성과 연결지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제 감정 센서를 탑재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센서를 AI라는 증폭기를 통해 더 민감하고, 더 정밀하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마주했다.
AI는 인간의 감정을 대체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감정의 데이터를 의식 위로 끌어올리는 도구가 된다.
그로 인해 우리는 더 책임 있게 관계를 맺고,
더 섬세하게 협업을 설계하며,
더 건강한 조직 문화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감정 센서’를 달고 태어났음을 기억하자.
다만 어떤 사람은 그 센서를 의도적으로 훈련하고,
어떤 조직은 그 감정 흐름을 설계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어떤 기술은 그 감정의 흐름을 증폭시켜 문제보다 사람을 먼저 보게 만든다.
대인관계능력은 이제 감정을 다루는 일이다.
그리고 감정을 다룬다는 것은,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려는 태도이자 실력이다.
기술의 도움을 받되, 그 중심에는 사람을 향한 감각이 남아 있어야 한다.
그 감각이야말로, 우리가 AI와 함께 더 나은 일터를 만들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능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