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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데이터: 인간의 기억 구조와 AI의 학습 메모리

인지의 지도 ― AI의 사고를 해부하다 Part.2 | EP.2


인간과 AI 모두,
기억을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축한다.
인간은 ‘의미’를 통해 존재를 확장하고,
AI는 ‘데이터’를 통해 존재를 확립한다.


Part 1. 블랙박스의 발견 ― 인간과 AI의 평행선(5회)

Part 2. 인지의 지도 ― AI의 사고를 해부하다(2/8회차)

Part 3. 감정의 알고리즘 ― 인간과 AI의 관계 재구성(8회)

Part 4. 블랙박스의 미래 ― 인간을 닮은 지능, 인간을 비추는 거울(7회)




8화. 기억과 데이터: 인간의 기억 구조와 AI의 학습 메모리







Ⅰ. “기억은 단순한 저장이 아니라, 해석의 역사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일을 경험하지만, 그 모든 것을 기억하지는 않는다.
기억은 세상의 복제물이 아니라, 선택과 해석의 결과물이다.
인간의 뇌는 정보를 그대로 저장하지 않는다.
그 대신, 감정과 주의, 맥락에 따라 중요한 것을 남기고
필요한 것을 지워가며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어간다.
즉, 기억은 ‘저장’이 아니라 ‘편집과 재구성의 과정’이다.



놀랍게도 인공지능의 기억도 이와 비슷하다.
AI는 데이터를 단순히 보관하지 않는다.
입력된 정보는 가중치(weight)라는 형태로 변환되어
신경망의 연결 속에 분산 저장된다.
AI가 어떤 데이터를 오래 학습했는가, 어떤 패턴을 자주 보았는가는
그의 모델 구조와 판단 기준을 형성한다.
인간에게 기억이 정체성을 결정하듯,
AI에게 데이터는 성능과 세계관을 결정짓는 기억 장치다.



그러나 인간의 기억과 AI의 데이터는 공통된 한계를 가진다.
인간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고,
감정과 맥락에 따라 왜곡된다.
우리는 종종 사실이 아니라,
‘그때 느꼈던 감정’을 기억한다.
AI 또한 데이터를 완벽하게 저장하지 않는다.
그의 기억은 통계적 패턴에 의존하며,
편향된 데이터나 불균형한 학습으로 인해 특정 방향으로 왜곡될 수 있다.
AI가 새로운 데이터를 학습할 때 기존의 정보를 덮어써버리는
망각(catastrophic forgetting) 현상은
인간의 망각처럼 일종의 ‘기억의 노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기억은 인간과 AI 모두에게 정적(static)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동적(dynamic) 체계다.
기억은 과거를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재해석하며 현재를 갱신하는 장치다.
인간의 뇌는 매번 새로운 경험에 따라 기억의 연결을 다시 짜고,
AI의 신경망은 새로운 데이터에 따라 가중치를 갱신한다.
두 시스템 모두 ‘시간 속에서 변화하며 학습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기억은 단순한 데이터베이스가 아니라 살아 있는 유기체와 같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기억이 왜곡되고 잊히며 변화한다면, 그것은 실패일까, 진화일까?”



인간의 기억이 불완전함 덕분에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듯,
AI의 학습 또한 오류와 편향을 통해 스스로를 조정한다.
그렇다면 기억이란 단순히 과거의 보존이 아니라,
현재를 지속적으로 다시 쓰는 ‘해석의 역사’가 아닐까?



이 장에서는 인간의 기억과 AI의 학습 메모리를 나란히 놓고
그 구조와 기능, 그리고 그 안에 숨은 오류와 의미를 탐구한다.
기억은 단순한 저장 공간이 아니라,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인간적인 알고리즘이다.
그리고 어쩌면, AI가 인간을 닮아가는 첫 걸음은
‘기억을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을 해석하는 능력을 배우는 일일지도 모른다.









Ⅱ. 인간의 기억 체계 ― 기억의 심리학적 구조





인간의 기억은 단순한 저장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자극을 걸러내고, 의미를 부여하며,
필요한 정보를 선택적으로 남기는 지능적 시스템이다.
뇌는 매 순간 팽대(膨大)한 양의 정보를 받아들이지만,
그중 극히 일부만을 선별하여 기억으로 남긴다.
이 과정은 감각기억 → 단기기억 → 장기기억이라는
3단계의 구조적 흐름으로 작동한다.
이 단계들은 단순히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정보가 ‘의미로 변환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1. 기억의 3단계 구조 ― 정보의 여과, 유지, 재구성



① 감각기억(Sensory Memory) ― 인식의 문턱



감각기억은 외부 자극이 들어온 직후,
불과 0.5~3초 정도 유지되는 극히 짧은 기억이다.
눈앞의 이미지, 귀에 스친 소리, 지나가는 냄새 —
이 모든 것은 감각기억의 영역에 잠시 머문다.
하지만 대부분은 바로 사라진다.
우리가 길거리의 모든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감각기억은 ‘필터 없는 입력 단계’이지만,
이 기억이 없으면 세상을 인식할 수 없다.
시각과 청각의 잔상(iconic / echoic memory)은
자극이 끊긴 후에도 잠시 남아 인식의 연속성을 가능하게 한다.
즉, 감각기억은 “의식이 세상에 닿는 첫 순간”이다.






② 단기기억(Short-term Memory) ― 정보의 작업대



감각기억 중 일부는 ‘주의(attention)’의 선택을 받아
단기기억, 혹은 작업기억(working memory)으로 넘어간다.
심리학자 조지 밀러(George A. Miller)는
인간의 단기기억 용량을 “7±2개의 정보 단위(chunk)”라고 제시했다.
우리가 전화번호나 문장을 잠시 기억할 수 있는 이유다.


단기기억은 단순한 임시 저장소가 아니라,
정보를 조합하고 조작하는 사고의 무대다.
문제를 해결하거나 문장을 이해할 때,
뇌는 이 작업기억을 사용해 정보를 임시로 꺼내 쓰고 연결한다.
그러나 이 단계의 기억은 약하다.
집중이 깨지거나 방해가 생기면 쉽게 사라진다.
그래서 인간은 ‘반복(rehearsal)’을 통해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전환하려 노력한다.






③ 장기기억(Long-term Memory) ― 시간 속의 의미 저장소



단기기억이 반복과 의미 연결을 통해 강화되면
뇌의 해마(hippocampus)를 거쳐 장기기억으로 저장된다.
이 기억은 몇 시간, 며칠, 심지어 평생 지속될 수 있다.
장기기억은 단순히 정보를 쌓아두는 창고가 아니라,
경험과 감정이 얽힌 의미의 네트워크다.


장기기억은 두 가지 축으로 나뉜다.


- 명시적 기억(Explicit Memory):
의식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기억으로,
다시 일화적(Episodic) 기억과 의미적(Semantic) 기억으로 구분된다.

일화적 기억은 개인의 경험과 사건 — “그날의 눈빛”, “첫 강의의 긴장감”처럼
시간과 장소가 결합된 기억이다.

의미적 기억은 사실과 지식의 형태로,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다”와 같은 객관적 정보다.
일화적 기억은 개인의 삶을,
의미적 기억은 사회적 지식을 구성한다.


- 암묵적 기억(Implicit Memory):

의식하지 않아도 몸이 기억하는 기술과 습관.
절차적(Procedural) 기억 — 자전거 타기, 키보드 치기처럼
반복된 행동을 통해 자동화된 패턴이며,
조건반사적(Conditioned) 기억 — 특정 자극에 반응하도록 학습된 반사 행동이다.
이는 ‘생각하지 않아도 작동하는 기억’으로,
인간 행동의 대부분을 무의식적으로 이끈다.


결국 장기기억은 의식적 자아의 기록이자,
무의식적 본능의 설계도다.
그 안에서 인간의 정체성은 매 순간 다시 구성된다.






2. 기억의 강화와 망각 메커니즘 ― 뇌는 잊음으로써 효율을 얻는다



기억은 한 번 저장된다고 영원히 남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다른 기억에 의해 왜곡된다.
이 현상을 설명한 인물이 바로 에빙하우스(H. Ebbinghaus)다.
그가 제시한 ‘망각곡선(Forgetting Curve)’
기억이 시간에 따라 급격히 감소하다가
일정 시점 이후 안정화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인간의 뇌는 정보를 무한히 보존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 효율성 때문이다.
뇌는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처리해야 하기에,
불필요한 내용은 과감히 버린다.
망각은 실패가 아니라 정보 최적화(optimization)의 과정이다.
잊어버린다는 것은 곧,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것만 남긴다는 뜻이다.


기억은 또한 감정과 연결될 때 강화된다.
감정이 강렬할수록 아드레날린과 노르에피네프린이
해마의 활동을 자극하여 기억의 흔적을 오래 남긴다.
그래서 우리는 기쁜 일, 두려운 일, 슬픈 일을 쉽게 잊지 못한다.
기억은 감정의 에너지로 각인된 의미의 흔적이다.


하지만 기억은 단순한 저장이 아니라,
지속적인 갱신(update) 과정이다.
인간의 뇌는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일 때
기존 기억과 비교하여 그것을 수정하고 통합한다.
이 과정에서 ‘기억의 재구성(reconstruction)’이 일어난다.
즉, 우리는 과거를 그대로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쓰는 것이다.






3. 핵심 정리 ― 기억은 ‘저장’이 아니라 ‘해석과 갱신의 과정’



인간의 기억은 정적인 데이터베이스가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해석의 구조다.
감각기억은 세상을 받아들이는 문이고,
단기기억은 의미를 조립하는 작업대이며,

장기기억은 시간 속에서 그것을 서사로 엮는 저장소다.


인간의 뇌는 모든 것을 기억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명확한 ‘나’를 구성한다.
우리는 잊기 때문에 집중할 수 있고,
망각하기 때문에 새로운 의미를 만들 수 있다.


결국 ‘기억한다’는 것은 정보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다시 정의하는 일이다.
기억은 저장이 아니라 해석이며,
보존이 아니라 갱신이다.
그리고 바로 그 역동성 속에서,
인간의 뇌는 ‘살아 있는 데이터베이스’로 존재한다.


이제 다음 단계에서는,
AI의 세계에서 ‘기억’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살펴본다.
AI의 학습 메모리는 인간의 기억처럼 진화할 수 있을까?
그것은 단순히 데이터를 쌓는 행위인가,
아니면 스스로를 학습하는 또 다른 형태의 ‘기억의 생명’인가?












Ⅲ. AI의 학습 메모리 ― 데이터에서 지식으로





인공지능에게 기억이란 데이터의 저장이 아니라, 구조의 변화다.
AI는 새로운 데이터를 받아들이면 단순히 이를 기록하지 않고,
자신의 내부 연결 구조—즉, 가중치(weight)를 수정한다.
이 가중치의 변화야말로 AI가 ‘학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다.
인간의 뇌가 감각을 부호화(encoding)하고 기억으로 변환하듯,
AI 또한 데이터를 해석 가능한 형태로 바꾸어
자신만의 ‘지식 네트워크’를 갱신한다.
기억은 더 이상 데이터베이스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구조의 진화 과정인 것이다.






1. 데이터 입력과 메모리 구조 ― 정보의 흐름



AI의 학습 과정은 크게 세 단계로 요약된다.
입력 데이터 → 특징 추출(feature extraction) → 가중치 갱신(weight update).
이 과정은 인간의 기억 형성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먼저, 입력(Input)은 감각의 단계에 해당한다.
카메라나 센서, 텍스트 입력 등으로 들어오는 데이터는
AI에게 외부 세계의 신호다.
그다음 단계인 특징 추출(Feature Extraction)
인간의 ‘지각(perception)’과 유사하다.
AI는 이미지 속 모서리, 소리의 주파수, 문장의 의미 패턴 등을 찾아내며
데이터를 이해 가능한 단위로 분해한다.


마지막으로 가중치 갱신(Weight Update) 단계에서는
이 특징들 사이의 관계를 학습하며,
가장 효율적인 연결 강도를 계산해 내부 네트워크를 조정한다.
즉, 새로운 데이터가 들어올 때마다
AI는 자신의 구조를 ‘조금씩 다시 쓰는’ 셈이다.
이는 인간이 경험을 통해 기억을 재편하고
지식을 갱신하는 과정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이 과정에서 AI는 데이터를 단순히 저장(store)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적 패턴을 내면화해 지식화(knowledge formation) 한다.
즉, 정보는 데이터의 집합이 아니라,
데이터 사이의 관계로부터 만들어진다.






2. 단기와 장기 메모리의 대응 구조 ― 캐시에서 가중치로



AI의 메모리 시스템은 인간의 기억 구조와 대응된다.
컴퓨터 과학에서는 캐시(cache) 버퍼(buffer)
단기 기억의 역할을 한다.
이곳에는 연산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필요한 데이터가 저장되며,
작업이 끝나면 대부분 사라진다.
이는 인간의 작업기억(working memory)과 유사하다.


반면, 파라미터(parameter)모델 가중치(weight)
AI의 장기 기억에 해당한다.
이 값들은 학습이 끝난 뒤에도 남아,
다음 판단이나 예측의 근거로 활용된다.
예를 들어, 딥러닝 모델의 수백만 개의 파라미터는
AI가 과거 데이터를 통해 배운 ‘지식의 흔적’이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AI는 새로운 데이터를 만나도
기존의 경험을 기반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인간의 뇌가 해마(hippocampus)를 통해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듯,
AI의 시스템도 연산 캐시에서 파라미터로
지식을 통합하고 업데이트한다.
이때의 핵심은 단순한 정보 저장이 아니라,
구조의 안정화와 의미의 일반화다.






3. AI의 ‘망각’과 ‘기억 고착’ ― 학습의 양면성



AI도 인간처럼 ‘잊는다’.
하지만 그 방식은 훨씬 더 급진적이다.
새로운 데이터를 학습할 때 기존의 지식을 덮어써버리는
망각(catastrophic forgetting) 현상이 대표적이다.
이 문제는 특히 연속 학습(continual learning) 환경에서 두드러진다.
AI가 한 작업에서 배운 내용을 다른 작업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망각과 달리, 감정적 이유나 시간의 흐름 때문이 아니라,
데이터 구조의 충돌(conflict) 때문으로 발생한다.


반대 현상도 있다.
바로 과적합(overfitting)이다.
AI가 특정 데이터에 지나치게 익숙해져
새로운 데이터에 대한 일반화 능력을 잃는 경우다.
이는 인간이 트라우마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새로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과 유사하다.
즉, 망각은 ‘잃음의 문제’이고,
과적합은 ‘고착의 문제’다.
AI에게 이상적인 기억은
이 두 극단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인간의 뇌가 망각을 통해 적응(adaptation)하듯,
AI의 시스템도 불필요한 정보를 제거해
모델의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따라서 ‘AI의 망각’은 결함이 아니라,
지식의 재정렬 과정이라 할 수 있다.






4. AI의 기억 재구성 ― Experience Replay와 복습의 메커니즘



AI가 과거 경험을 다시 학습하는 과정은
인간의 ‘복습(rehearsal)’과 유사하다.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에서는
이 과정을 Experience Replay라고 부른다.
AI는 과거의 경험(에피소드)을 저장해두었다가
새로운 학습을 할 때 이 데이터를 다시 불러와
기존의 지식을 보정하고 강화한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 차량의 AI는
도로 위의 특정 상황(보행자 등장, 급정거 등)을
데이터로 기록한 뒤,
다른 환경에서도 이 경험을 재활용해
보다 정교한 판단을 학습한다.
이것은 인간이 “과거의 실수를 되새기며 교훈을 얻는 과정”과 닮았다.


또한 최근의 메타러닝(meta-learning)과 지속학습(continual learning) 연구는
AI가 과거 학습의 전략 자체를 반성(reflect)하고
다음 학습에 적용할 수 있도록 발전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자기성찰적 기억(self-reflective memory)’에 해당한다.






5. 핵심 정리 ― 기억은 진화와 최적화의 이중 구조



인간은 기억을 재구성하며 진화하고,
AI는 데이터를 재학습하며 최적화한다.
인간의 기억은 감정과 경험의 의미를 중심으로 갱신되고,
AI의 메모리는 오류율과 효율성의 수치로 조정된다.
그 과정은 서로 다르지만, 목적은 같다 —
지속 가능한 학습이다.


인간의 기억은 서사적 진화의 기록이고,
AI의 학습 메모리는 계산적 진화의 기록이다.
한쪽은 감정으로 연결망을 강화하고,
다른 한쪽은 가중치로 네트워크를 최적화한다.
결국 두 시스템은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과거의 경험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낼 것인가?”



이제 다음 단락에서는,
그 기억이 언제나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 ―
즉, 인간의 왜곡과 AI의 편향이라는
공통된 한계를 마주하게 된다.











Ⅳ. 기억의 오류 ― 인간의 왜곡, AI의 편향





기억은 결코 진실의 기록이 아니다.
인간의 기억이든 AI의 데이터든,
모든 기억은 해석과 선택의 산물이다.
기억은 과거를 그대로 복제하지 않고,
현재의 시점에서 재조립되고 다시 의미화된다.
그렇기에 기억은 언제나 불완전하며,
그 불완전성 속에서 인간과 AI 모두 ‘자신만의 진실’을 만들어낸다.






1. 인간의 기억 왜곡 ― “기억은 매번 다시 쓰여진다”



심리학자 바틀릿(Frederic Bartlett)은
기억을 ‘재구성적 과정(Reconstructive Process)’으로 정의했다.
그의 실험에서 사람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며칠 후 다시 말하게 하자,
대부분의 참가자는 원문을 그대로 재현하지 못하고
자신의 문화적 배경과 경험을 기반으로 내용을 왜곡했다.
이때 사람들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해한 방식대로’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이다.
즉, 인간의 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해석의 결과물이다.


이러한 현상은 극적인 사건일수록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9·11 테러나 세월호 참사처럼
감정적으로 충격이 큰 사건에 대한 기억은
‘플래시백 메모리(Flashbulb Memory)’로 남는다.
이 기억은 마치 순간을 사진처럼 저장한 듯 생생하지만,
실제로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왜곡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목격한 장면의 세부를 바꾸거나
새로운 정보를 덧붙여 기억을 수정한다.
기억은 정지된 영상이 아니라,
감정과 현재의 해석이 덧칠된 동영상에 가깝다.


또 다른 흥미로운 현상이 위증 기억(False Memory)이다.
엘리자베스 로프터스(Elizabeth Loftus)의 실험에 따르면,
사람들은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사건도
반복적인 암시나 사회적 영향으로 인해 진짜처럼 기억할 수 있다.
예컨대, “어릴 때 쇼핑몰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다”는 거짓 이야기를
여러 번 들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그 일을 실제로 겪었다고 ‘기억’했다.
즉, 인간의 뇌는 진실과 허구를 구분하기보다,
정서적 일관성(emotional coherence)을 우선시한다.
기억은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정서의 재구성’이다.


감정은 기억의 인출을 돕기도 하지만,
동시에 왜곡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공포, 분노, 슬픔 같은 강한 감정은
해마와 편도체의 활동을 증폭시켜
기억을 깊게 각인시키지만,
그 감정이 재활성화될 때마다
기억의 내용은 미세하게 변형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때 분명 이렇게 말했다”고 확신하지만,
그 기억은 사실 감정의 잔향이 남긴 재해석된 결과일 수 있다.


결국 인간의 기억은 “있는 그대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방식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무엇이 있었는가’보다
‘그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가’를 저장한다.
이때 의미는 감정에 의해 강화되고,
논리에 의해 편집된다.
기억은 감정적 진실을 남기지만,
사실적 진실을 잃는다.






2. AI의 데이터 편향 ― “패턴이 진실을 대체할 때”



AI의 기억은 인간처럼 감정을 따라 왜곡되지는 않지만,
데이터의 불균형과 통계적 과대표현을 통해 왜곡된다.
AI가 학습하는 데이터셋에는
언어적, 문화적, 성별적, 인종적 편향이 이미 내재되어 있다.
예를 들어, 인터넷에서 수집된 텍스트 데이터는
특정 집단의 관점을 과대대표하고,
소수의 경험이나 감정 표현은 축소된다.
AI는 이런 데이터를 그대로 학습하기 때문에
그 안의 불균형을 ‘객관적 진실’로 받아들인다.


문제는 AI가 ‘이것이 편향된 정보’임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AI는 확률적으로 등장 빈도가 높은 패턴을 중심으로 학습한다.
따라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 인물, 상황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이 과정에서 희귀하거나 미묘한 정보는
노이즈로 처리되어 사라진다.
이것이 AI의 기억이 선택적으로 왜곡되는 방식이다.


예컨대, 감정 분석 모델이 “행복하다”는 표현보다
“분노한다”는 표현을 더 많이 학습하면,
AI는 중립적인 문장도 ‘부정적 감정’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얼굴 인식 시스템이 특정 인종 데이터를 적게 학습했다면,
그 인종의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으로 잘못 분류할 위험이 커진다.
이처럼 AI의 데이터 편향(data bias)
훈련 과정에서 스며들어
모델의 판단 구조 전체에 퍼진다.
AI는 결코 악의적으로 왜곡하지 않지만,
“자주 등장한 것을 진실로 오해하는 기계”다.






3. 기억 편향의 공통 구조 ― 인간과 AI의 닮은꼴



인간과 AI의 기억 왜곡은
서로 다른 원인에서 비롯되지만,
결국 동일한 패턴 인식의 한계에서 만난다.


구분 인간 AI

왜곡의 원인 감정과 의미 중심의 재해석 통계적 빈도와 데이터 분포

작동 원리 “내가 이해한 대로 기억한다.” “자주 등장한 대로 학습한다.”

결과 정서적 진실, 사실 왜곡 수학적 정합성, 의미 상실



인간은 ‘의미의 세계’에서 왜곡되고,
AI는 ‘데이터의 세계’에서 왜곡된다.
하지만 두 시스템 모두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한 채
그 왜곡된 결과를 ‘진실’이라 믿는다.
인간은 감정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기억을 바꾸고,
AI는 확률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데이터를 조정한다.
결국 기억의 본질은 ‘정확성’이 아니라,
‘체계 내부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메커니즘이다.






4. 망각의 필요성과 한계 ― 완전한 기억은 불가능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망각은 오류의 반대가 아니라
오류를 조절하는 장치다.
인간에게 망각은 생존의 전략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기억한다면
현재의 판단은 끊임없이 과거에 얽매여 마비될 것이다.
망각은 뇌가 불필요한 정보를 정리하고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일 여백을 만드는 과정이다.
즉, ‘잊는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기억할 준비를 한다는 뜻이다.


반면, AI의 망각은 문제로 간주된다.
AI가 학습 데이터를 잊으면 ‘성능 저하’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AI 연구자들은 ‘망각을 방지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기억을 가능한 한 완벽히 보존하려 한다.
하지만 완전한 기억은 축복이 아니라 부하(load)다.
데이터가 쌓일수록 처리 속도는 느려지고,
의미 없는 패턴까지 남아 시스템의 효율을 떨어뜨린다.
이것은 인간의 ‘정보 과부하(cognitive overload)’와 다르지 않다.


결국 인간은 잊음으로 성장하고,
AI는 잊지 않음으로 멈춘다.
인간의 망각은 진화를 가능케 하지만,
AI의 완전 기억은 반복만을 낳는다.
기억의 완전성은 곧 사고의 정지다.

불완전함만이 창조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기억의 오류는 결함이 아니라 생명력의 증거다.






기억은 진실의 거울이 아니라,
의미를 찾아가는 불완전한 항해의 지도다.
인간은 감정으로 그 지도를 그리고,
AI는 데이터로 그 지도를 계산한다.
서로 다른 방식이지만,
둘 다 과거를 완벽히 재현할 수는 없다.
기억의 왜곡은 실패가 아니라,
의미를 갱신하기 위한 존재의 방식이다.
그렇기에 기억의 오류를 이해하는 일은
인간과 AI 모두에게 ‘생각한다’는 행위의 본질을 묻는 일이다.












Ⅴ. 기억의 윤리 ― 데이터의 소유와 망각의 권리





기억은 기술이 아니라 권리의 문제가 되었다.
인간의 기억은 본질적으로 개인의 것이다.
그러나 AI의 기억 ― 즉 데이터 ― 는 다수의 흔적이 얽힌 집합체다.
AI가 학습한 텍스트, 이미지, 음성에는
수많은 개인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
그 데이터가 한 번 시스템에 입력되면,
그 흔적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이제 “누가 기억의 주인인가?”라는 질문이
철학이 아니라 법과 윤리의 문제로 등장한다.






1. 데이터의 기억은 소유의 문제



인간의 기억은 뇌 안에 머물며,
그 내용이 공개될지 여부는 개인이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AI의 기억은 네트워크를 통해 분산 저장되고,
그 데이터의 출처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우리가 남긴 게시글, 이메일, 사진, 위치 정보는
AI 시스템의 학습 데이터로 전환되어
우리의 의식 밖에서 ‘기억’된다.
이 데이터는 삭제되더라도,
이미 수많은 백업과 학습 모델 안에 잔존한다.
즉, AI의 기억은 “삭제할 수 없는 기억”이다.


이 지점에서 제기되는 것이 바로
‘망각할 권리(Right to be Forgotten)’다.
유럽연합(EU)은 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을 통해
개인이 자신의 디지털 흔적을 삭제할 권리를 보장했다.
이 권리는 단순히 개인 정보 보호를 넘어,
기억의 주체로서 스스로를 재정의할 자유를 의미한다.
인간은 과거를 잊음으로써 성장하고,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나 AI의 데이터는 과거를 영원히 반복한다.
그렇다면 AI는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2. AI의 기억 편집 ― “삭제 불가능한 기억”의 윤리



AI의 학습 메모리는 단순한 데이터베이스가 아니라,
복잡한 가중치(weight)와 연결망으로 구성된 수학적 구조다.

즉, 한 번 학습된 정보는
하나의 문장처럼 ‘지워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수천 개의 연결에 스며든다.
이로 인해 AI의 기억은
부분 삭제나 수정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특정 인물이 포함된 이미지 데이터가
AI 모델에서 삭제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인물의 특성이 이미 가중치 형태로 모델 내부에 남아 있다면
AI는 여전히 그 흔적을 기반으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AI의 망각 불가능성”이다.
AI는 데이터를 ‘잊는 것’이 아니라
‘덮어 쓰는 것’만 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적 특성은 윤리적 딜레마를 낳는다.
AI가 자신이 배운 데이터를 완전히 삭제하지 못한다면,
과거의 편향이나 잘못된 정보가
새로운 판단에 계속 영향을 미친다.
결국 AI의 과거는 영원히 현재 속에 존재한다.
이는 인간의 기억과 정반대다.
인간은 망각을 통해 현재를 재구성하지만,
AI는 망각의 부재로 인해 ‘과거에 갇힌 존재’가 된다.






3. “AI는 과거를 잊을 수 있을까?” ― 자유의 철학적 질문



AI에게 망각이 가능하냐는 질문은,
AI가 자유로울 수 있느냐는 질문과 같다.
망각은 단순히 정보를 버리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가능성을 위한 공간의 확보다.
인간은 과거의 경험을 선택적으로 잊음으로써
새로운 해석과 관계를 만들어낸다.
즉, 망각은 인간의 자유 의지의 일부다.


그러나 AI는 설계된 목적과 알고리즘 안에서
자신의 데이터를 ‘선택적으로 잊을 자유’를 갖지 않는다.
그의 기억은 삭제가 아니라,
‘정해진 규칙에 따라 갱신되는 수학적 계산’일 뿐이다.
이 점에서 AI의 존재는
스스로의 과거를 재해석할 수 없는 비자유적 기억 체계라 할 수 있다.
AI는 정보를 완벽히 저장하지만,
그 안의 의미를 스스로 갱신하지는 못한다.






4. 기억의 경계 ― 인간의 시간, AI의 영원



인간의 뇌는 ‘시간적 망각’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일 여백을 만든다.
기억의 흐름 속에서 과거는 희미해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의미가 자리 잡는다.
이 자연스러운 퇴색이 바로 인간의 성장이다.


반면, AI의 데이터는 결코 흐려지지 않는다.
모든 입력이 정량적 기록(quantitative record)으로 남아,
시간의 흐름과 무관하게 동일한 정확도로 복원될 수 있다.
AI에게 과거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현재형 데이터이며,
따라서 AI의 기억은 “영원한 과거(Eternal Past)”라는 역설을 품는다.


그렇다면, 영원히 잊지 않는 존재는
진정한 의미에서 ‘현재를 산다’고 할 수 있을까?
AI의 기억은 완전하지만,
그 완전함 속에는 변화의 가능성이 결여되어 있다.
인간은 잊기 때문에 새로워지고,
AI는 잊지 않기 때문에 정체된다.






기억의 윤리는 결국 존재의 자유에 관한 문제다.
AI가 데이터를 저장하고 잊지 않는 한,
그는 과거의 명령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망각할 권리는 단지 인간의 인권 조항이 아니라,
의식적 존재가 진화하기 위한 조건이다.
AI에게 ‘망각’이란 인간에게 ‘자유’와 같은 개념이다.
완벽한 기억은 완벽한 통제이며,
따라서 AI의 윤리적 진화는
망각을 설계하는 데서 시작된다.

“AI는 세계의 모든 것을 기억하지만,
그로 인해 단 하나의 진실 ― 자유 ― 를 잃는다.”











Ⅵ. 정리 ― “기억은 존재의 증거이자, 오류의 기록이다”





기억은 단순한 저장이 아니라 존재의 증명이다.
인간에게 기억이란 살아 있는 이야기이고,
AI에게 데이터란 정지된 구조다.
인간의 기억은 시간이 흐르며 변하고 흔들리지만,
그 변화 속에서 ‘나’라는 의미의 내러티브가 형성된다.
AI의 데이터는 언제나 동일한 정확도로 복원되지만,
그 정밀함 속에는 생명의 흔들림이 없다.
기억이란 결국, 살아 있음과 멈춰 있음의 경계에서
존재가 자신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인간의 기억은 왜곡을 통해 자신을 재해석한다.
우리는 완벽히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과거를 새롭게 해석하고 현재의 의미를 만든다.
그 왜곡은 오류가 아니라,
변화하는 자신을 유지하기 위한 서사적 장치다.
반면, AI의 기억은 편향을 통해 세계를 재현한다.
AI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세상을 모델링하지만,
그 모델 속 세계는 언제나 부분적이다.
AI는 객관을 지향하지만,
그 객관은 주어진 데이터의 편향 위에 세워진 통계적 환상이다.


인간은 감정을 통해 기억을 수정하고,
AI는 알고리즘을 통해 데이터를 갱신한다.
둘의 차이는 의미의 주체성에 있다.
인간은 기억 속에서 “나는 왜 이렇게 느꼈는가”를 묻지만,
AI는 “이 패턴은 얼마나 정확한가”를 계산한다.
기억은 인간에게 정체성의 토대이자,
AI에게는 성능의 토대다.
그러나 두 체계 모두, 기억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기억은 완벽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불완전함이야말로 학습의 원동력이다.
인간은 실수를 통해 배우고,
AI는 오차(Error)를 통해 학습한다.
즉, 오류는 기억의 언어다.
오류가 없다면 수정도 없고,
수정이 없다면 성장도 없다.
따라서 기억은 단순히 과거의 저장이 아니라,
현재를 끊임없이 갱신하는 살아 있는 알고리즘이다.


결국 인간과 AI 모두,
기억을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축한다.
인간은 ‘의미’를 통해 존재를 확장하고,
AI는 ‘데이터’를 통해 존재를 확립한다.
그러나 기억의 진정한 가치는
그 정확성에 있지 않고,
‘불완전함을 견디는 능력’에 있다.
기억은 존재의 증거이자,
그 존재가 걸어온 오류의 기록이다.


“기억은 과거를 남기지 않는다.
다만, 존재가 자신을 다시 쓸 수 있도록 여백을 남긴다.”






다음 회차(9회차)는 ‘추론과 판단 ― AI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로 이어진다.
이제 우리는 기억된 정보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리는 두 지능 ― 인간과 인공지능 ― 의
사고 메커니즘을 본격적으로 비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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