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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스타 Feb 08. 2023

좋은 상품은 좋은 고객을 모은다.

필자는 성인 교육 도메인에서 기획 일을 하고 있다. 교육 상품은 고객이 본인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선택한 수단이다. 기획자는 많은 고객의 선택을 받기 위해 기획 단계에서 어떤 사람이 어떤 사고방식을 갖고 교육 상품을 찾을지에 대해 상정한다. 브랜드 퍼소나를 정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교육 상품의 특징이 있다면 퍼소나가 여럿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입사 초반에 주로 IT 및 개발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와 컨셉의 교육 상품을 담당했다. 아무래도 고객 입장에서 IT나 개발과 관련된 기술은 취업, 창업, 직무 역량 함양, 자기 계발 등 특정 목적이 있어야 찾게 되는 것이라서, 필자의 상품엔 교육 상품이라는 수단을 통해 본인의 인생을 바꾸고자 하는 동기가 있는 고객이 모일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보기 좋게 틀렸다.


다 똑같은 시바 같아 보여도 알고 보면 다 다른 시바들이다


필요한 건 공부인가 돈인가

매주 정해진 분량의 강의를 수강하고 과제를 수행하고 퀴즈를 50% 이상 맞추면, 매주 일정 금액을 환급받을 수 있는 교육 상품이 있었다. 환급 기준이 엄청 빡세거나 시간이 지나 완강을 하고 나서야 환급을 받을 수 있는 타사의 상품과 달리, 소액이더라도 매주 고객의 통장에 현금이 꽂힌다는 차별점이 있었다. 매주 환급이라는 작은 성취의 누적을 통해 고객이 끝까지 학습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실제로 환급 업무를 담당하는 동료가 매주 목요일 오후마다 고객의 계좌로 환급금을 쐈다.


목요일 점심시간 이후부터 회사에 고객 문의가 빗발친다. 십중팔구 이번 주 환급금이 아직 안 들어왔다는 문의다. CX 담당 동료는 목요일 늦은 오후마다 지금 순차적으로 입금하고 있고 오늘 중으로 확인하실 수 있다는 답변을 하기 바빴다. 필자가 수강 후기를 살펴보면 강의의 퀄리티에 대한 평보다 환급을 최대한 쉽게 받을 수 있는 꿀팁에 대해서 다룬 고객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필자가 상정한 대로 본인이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 어려워 작은 성취의 누적이 필요한 고객도 있었지만, 뒷돈(?)이 필요한 고객도 많았던 것 같다. 이분들은 직무 역량을 키우는 것보다 몇 만 원이 십분이라도 빨리 들어오는 것이 더 큰 가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간절함의 정도가 궁금해

개발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교육 콘텐츠, 서비스, 취업 연계 등을 이용할 수 있는 온라인 무료 교육 상품이 있었다. 다만 현실적으로 아무나 개발자로 취업할 수 없기에 쇼미더머니나 슈퍼스타K 같이 단계마다 서류, 인터뷰, 테스트 등 소정의 절차를 통해 고객을 탈락시키는 시스템을 운영했다. 실력자를 선별하기 위해서라기보다 간절함을 바탕으로 성실한 사람을 선별하기 위한 목적이 더 컸다. 그래서 상품을 홍보할 때도 간절한 사람을 찾는다고 어필했다.


탈락자 선정 메일을 보내고 나면 꼭 들어오는 회신이 있다. 정말 간절하니 기회를 한 번만 더 달라는 내용이다. 사연도 구구절절하다. 필자는 회신을 보내는 것도 또 다른 간절함의 표현이라 생각하고 회신을 보낸 고객에게 기회를 한 번씩 더 드렸다. 하지만 기회를 한 번 더 받은 고객은 열이면 열 다음 단계에서 동일한 사유로 다시 탈락했다. 공부를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아마 이분들은 개발자 취업에 대한 간절함보다 지금 당장 공부하는 것의 어려움이 더 컸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원하는 직장을 갖기 위한 교육보다 하루라도 빠르게 취업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니었을까.



기획자보다 상담사가 필요할 수도

수강료를 최소 400만 원 이상 지불하고 6개월 동안 개발자 취업에 필요한 모든 교육 콘텐츠 및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개발자 교육 상품이 있었다. 고객이 내일 배움 카드가 있다면 국비지원을 통해 (거의) 무료로 유사한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면 필자의 상품보다 훨씬 유명한 부트 캠프도 많았다. 하지만 양질의 교육 콘텐츠, 강사진의 네임밸류, 수료생의 취업 결과 등에서 메리트를 느낀 고객이 이 상품을 선택했다.


상품의 가격이 비싸고 교육 기간이 긴 만큼 바로 구매를 결정하기보다, 상품을 구매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 고객이 많았고 이분들의 특징은 문의가 많았다. 강사진, 콘텐츠, 서비스 등 교육 상품에 대한 문의보다 “매니저님 제가 끝까지 할 수 있을까요?”, “제가 나이가 좀 있는 편인데 취업 가능한가요?”, “직장인인데 병행할 수 있을까요?” 등과 같은 고민 상담이었다.

이 단계의 고객은 사실 상품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육 상품의 담당자를 찾아서 고객이 본인의 고민을 상담하는 것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욕구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소주 말고..


필자가 처음에 상정했던 고객만 생각하여 '이 교육 상품으로 당신의 인생을 바꾸세요'라고 계속 소구했으면 아마 당장 망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고객의 퍼소나는 상품을 출시하기 전과 상품을 출시하고 나서 실제로 고객을 만난 후가 다를 것이다. 또한 한 가지 전형적인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모습의 고객들이 있을 것이다. 기획자는 이를 이해하고 내 상품의 고객이 어떤 모습들이 있는지 빠르게 캐치해서 유형을 분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유형별로 유효한 소구점과 설득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필요시 유형에 맞게 상품의 개선도 필요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좋은 상품으로 좋은 고객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이고, 내 상품이 좋지 않으면 좋지 않은 고객이 모일 것이다. 기획자는 고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서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많은 고객을 모아야 할 것이다. 오늘의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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