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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Oct 04. 2016

왜 우리는 노벨상을 못 받을까?

한국과 일본의 결정적 차이

매년 가을이 되면 한국인들을 스트레스받게 하는 뉴스가 있으니 바로 노벨상 수상자 발표입니다. 문학, 경제학,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등 기초학문 분야 및 평화 등 사회활동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낸 이들에게 주어지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 노벨상은 언제부터 우리에게 스트레스가 된 것일까요?


노벨상 발표가 스트레스가 되는 이유는 그 권위있는 상의 한국인 수상 소식이 없다는 것이 첫번째이고, 주변국들의 수상 소식이 두번째일 겁니다. 특히 여러 분야에서 우리와 경쟁하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감정이 쌓여온 일본이 대표적이지요.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는 2015년 기준으로 24명입니다. 올해도 생리의학상 수상자가 한명 추가됐으니 현재 25명이군요. 반면 우리나라는 1명이 전부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에 평화상을 수상하셨지요.

2016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오스미 요시노리 교수

일본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갯수도 갯수지만 일본이 받은 노벨상의 분야가 문학,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등 기초학문 분야에 널리 퍼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일본이 쌓아온 학문의 기초가 튼튼하다는 뜻으로 웬만한 것은 일본을 무시하기로 이름난 한국사람들마저도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자, 그럼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일본인들이 한국인보다 우수한 유전자를 타고난 것일까요? 어떻게 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능력의 차이가 두 나라 사람들의 사이에 있는 것일까요? 


저는 문화차이를 타고난 능력의 차이로 귀인하는 이런 방식의 이해는 '진화론적'인 것으로서 문화를 이해하는데 매우 좋지 않은 방식임을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진화는 수십, 수백만년의 시간이 걸리는 과정으로 문화차를 진화의 정도로 이해한다는 것은 나라나 민족 간에 생물학적 우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인류는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거나 가스실에 처넣는 시대에서 벗어나기 위해 값비싼 댓가를 치러야만 했습니다. 더이상 사람들에게 우와 열의 딱지를 붙이지 맙시다. 게다가 한국 중고등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세계 1,2위를 다툴 정도입니다. 지능을 유전때문이라 한다면 한국인들의 지능은 세계에서 최상위권이란 말씀이죠. 한국이 노벨상을 못 받는 것이 절대 타고난 능력 때문은 아닙니다.



그러면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오늘은 '문화적 동기'라는 개념으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사람들에게는 먹고, 자고, 싸고..와 같은 기본적인 욕구가 있는데요. 각자가 속한 문화에 따른 문화적 욕구 혹은 동기 역시 존재합니다. 문화에 따라 원하고, 바라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지요.


저는 노벨상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차이에는 바로 이 문화적 동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는 '장인(匠人)'문화입니다. 여러분들은 교토에 있다는 500년 넘은 우동가게나 300년 넘는 두부가게 등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일본에서 제일 오래된 회사는 무려 백제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하죠. 그만큼 일본인들은 자기들의 일에 충실하며 옛 것을 잘 지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러한 일본의 장인정신은 사실 사회변화의 폭이 적고 계층 이동이 어려웠던 일본의 역사와 관계가 깊습니다. 두부 만드는 사람이 다른 직업이나 계층으로 이동할 수 있는 여지가 그만큼 없었다는 것이죠. 또한 국화와 칼에서 루스 베네딕트도 지적한 것처럼, 일본인들은 '모든 사람(사물)들은 정해진 곳에서 정해진 일을 다 해야 한다'는 강력한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자신의 사회적 역할이 결정되면 그 결정이 취소되기 전까지는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것을 숙명처럼 생각하며, 그러한 질서가 흔들릴 때 매우 불안감을 느낍니다. 아래 사진은 1974년 필리핀의 정글에서 발견된 일본 군인 오노다 히로(小野田寬郞) 소위입니다.

30년을 한 자리에서..

무엇이 2차대전 종전 후 29년 4개월 동안 그를 그 자리에 있게 했을까요? '주어진 자리에서 소임을 다한다'. 이 동기는 일본인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개념입니다. '군인정신'이나 '상관의 명령' 이전에 일본인으로서 내재화된 문화적 동기인 것이죠.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오스미 요시노리 일본 도쿄공업대 명예교수 역시 50년 동안 한 분야를 연구했다고 합니다.


이와 대비되는 한국의 문화적 동기는 '잘 살아보세'로 요약할 수 있는, 부와 명예의 추구입니다. 물론 한국인들이 이런 동기를 타고난 것은 아닙니다. 한국은 조선시대에도 일본에 비해 신분과 계층의 이동이 자유로운 편이었고,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치면서 기존의 질서가 완전히 무너집니다. 


그리고 7,80년대 가파른 경제성장을 이뤄내면서 현대의 한국사람들은 '내가 선택한 분야에서 노력한 만큼 잘 살 수 있다'는 가치를 내면화하게 됩니다. 여기서 '잘 산다'는 것은 돈 많이 벌고, 큰 집에 살고, 유명해지고, 권력을 갖는 등의 대단히 세속적인 가치와 관련이 깊습니다. 


따라서 한국인들이 공부를 하는 이유는 돈 많이 벌어서 나 보란 듯이 사는 것입니다. 세계 학업성취도 1,2위를 차지할 만한 머리를 가진 학생들이 소위 '돈 되는 공부'에 몰리는 것이죠. 특정 학과나 직업을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암기위주와 성취지향적 교육환경(정책)이나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연구 문화 등이 한국의 노벨상 수상을 가로막는 원인으로 지목되기는 하지만, 결정적 이유는 이것입니다. 


공부가 재미있고 그 분야에 흥미가 있어서 한다기 보다는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인정받기 위한 목적으로 하는 것이죠. 그 좋은 머리로 판검사, 의사가 될 공부를 합니다. 물리학, 화학을 공부하다가 돈이 안되면 수능을 다시 봐서라도 의대나 한의학과를 갑니다. 또는 공무원 시험을 봅니다.


국가의 교육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랜 시간 연구가 축적되어야 하는 분야보다는 돈이 되는 분야 위주로 투자를 하다보니 연구자들이 '돈도 안되는' 분야를 깊게 팔 수가 없습니다. 성과위주의 문화 때문에 소속 기관에서 연구실적은 또 계속 요구를 해대니; 연구자들은 돈 되는 분야에서 쉽게 실적을 뽑아낼 수 있는 얕은 연구들 밖에는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은 MBA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현상의 뿌리가 되는 것은 돈 되는 것이 성공이라는 한국인들의 문화적 동기입니다. 한국사람들도 눈물없이 떠올릴 수 없는 현대사의 질곡 끝에 이러한 동기를 내면화하게 되었겠지만서도.. 사실상 이런 동기가 바뀌지 않고서는 노벨상은 요원하다 할 수 있습니다. 


노벨상이 학문을 하는 최종 목표는 아니겠습니다만, 우리가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문화적 동기를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 학업성취도 1위인 우리의 청소년들이 자신이 흥미로워하는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물론 문학이나 기초과학을 하더라도 '잘 살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입니다. 상금이나 직위 등 포상 따위의 근시안적 접근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도 밥 굶고 따돌림 당하는 일 없이 잘 살아갈 수 있단다'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먼저라는 말씀입니다.



시간 이야기가 나와서 말씀인데요. 또 하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연구에 대한 투자와 연구의 축적이라는 면입니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 이래 서구 열강의 제도를 받아들여 근대적 교육체계를 세웠습니다. 동경대학교(1877), 와세다대학교(1882), 쿄토대학교(1897) 등 유수의 교육기관이 세워지고 기초학문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이루어졌습니다.


일본이 첫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1949년입니다. 최소 70년 이상의 투자와 연구의 축적 끝에 그 성과가 나타난 것이지요. 그리고 일본은 그 이후로 77년의 세월 동안 2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습니다. 일본의 노벨상 수상에는 150년 가까운 그들의 노력이 축적되어 있는 것입니다. 

일본 첫 노벨상 수상자, 유카와 히데키(물리학)

한국은 어떨까요? 한국이 본격적으로 과학에 투자하기 시작한 것은 대전에 과학연구단지가 조성된 1990년대 초반입니다. 한국도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근대적 교육기관을 세우는 등 근대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곧 일제강점기가 되었고.. 일제가 36년 동안 조선 기초과학의 토대를 잘 닦아주었을까요?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남북간의 내전(6.25)과 복구작업으로, 또 냉전과 남북한 긴장으로 우리의 기초과학은 뿌리를 내릴 시간이 없었습니다. 1992년에 문을 연 대덕연구단지를 시작으로 과학에 대한 본격적인 투자가 이루어졌고 연구자들이 양성되었으며 연구가 축적되기 시작했습니다. 길게 잡아도 30년이 안 되는 시간입니다.

대덕 연구단지 

사회변화를 상대적으로 덜 겪고, 자기 분야에서 (다른 선택지 없이)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도록 동기화된 일본인들도 70년이 걸린 노벨상 수상입니다. 이제 연구가 축적되기 시작한 지 30년도 안 되는 한국에서 노벨상이 쏟아지는 것도 굉장히 이상한 일 아닐까요?


결론적으로, 노벨상을 못 받는다고 스트레스 받지 마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해마다 발표되는 노벨상 발표에 너무 조급해 하실 필요 없다는 말씀입니다. 현재로서는 한국에 노벨상이 안 나오는 것이 당연합니다. 


아직 우리가 한 일들이 많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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