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실왕과 세종대왕, 그리고 한국인 심리학의 선택
가실왕은 가야금을 만든 것으로 전해지는 가야의 왕입니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만드신 분이죠. 그런데 한국인 심리학은 여기에 왜 끼었을까요? 오늘은 한글날 특집으로.. 별 관계없어 보이는 가야금과 한글, 한국인 심리학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가실왕은 신라 진흥왕(AD 540~576)과 비슷한 시기에 재위했던 가야의 왕입니다. 가야는 삼국시대에 존재했던 나라지만 고구려, 백제, 신라에 비해 알려진 바가 많이 없는 신비의 왕국이죠. 그 가야에서 이름이 알려진 몇 분 가운데 하나가 이 가실왕입니다.
가실왕의 이름이 나오는 것은 삼국사기의 악지(樂志)인데요. 기록에 따르면 가실왕은 "여러 나라의 말이 다르거늘 어찌 음악이 같을 수 있겠느냐"며 우륵에게 명하여 악기를 만들도록 합니다. 우륵은 중국의 쟁(箏)을 본따가야금을 만들고 12곡의 음악을 짓습니다.
우리가 눈여겨 볼 것은 가실왕이 악기를 만들고 곡을 짓게 한 이유입니다. 당시 가야는 중국(唐) 음악을 쓰고 있었는데 굳이 가야의 음악을 만들게 하면서 "여러 나라의 말이 다른 것처럼 음악도 달라야 한다"는 이유를 들고 있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말이 다르면 음악도 달라야 할까요?
중요한 것은 가실왕이 가야금을 만들고 곡을 만들지 않았다면 우리에게는 가야금도 가야금으로 연주하는 아름다운 음악도 없었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지금쯤 국악 대신 중국 음악을 연주하고 듣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죠.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드신 이유도 다르지 않습니다. 세종대왕이 보시기에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우리의 말과 한자가 서로 통하지 아니하니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이를 표현할 방법이 없더라"는 것이죠. 그래서 불쌍한 백성들을 어여삐 여겨 만드신 것이 바로 한글입니다.
어떻습니까? 말이 다르면 문자도 달라야 할까요?
중요한 사실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드시지 않았다면 우리에게는 한글도 한글로 씌여진 아름다운 문학작품들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글을 읽으시는 인터넷도 한자로 되어 있었을지 모릅니다.
한국인 심리학은 한국인의 마음에 대한 심리학입니다. 문화심리학의 한 갈래인 토착심리학(indigenous psychology)의 한국판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한국인들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설명하는 개념과 의미를 찾아 그 구조와 기능을 밝히는 학문입니다.
한국인 심리학의 연구주제는 한국문화에서 공유되는 한(恨), 정(情), 신명, 자존심, 눈치, 체면, 억울 등등의 문화적 개념들인데요. 모두 한국인들이 쓰는 한국말로 되어 있는 개념들이며 그 용법과 의미가 한국의 문화적 바탕에서 규정된 문화적 개념입니다.
어떻습니까? 말이 다르면 심리학도 달라야 할까요?
이 지점부터는 글을 이어가기가 조금 어려운데요. 현재 한국인 심리학은 학계로부터 그다지 인정을 못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인 심리에 대한 연구가 발표될 때면, 사람들은 "그런 건 지금 심리학에도 있는 개념 아닌가?", "지금 심리학으로도 설명할 수 있는 거 같은데 굳이 한국인 심리학이 필요한가?" 등의 반응을 보입니다.
그런데 이 장면.. 어딘가 익숙합니다. 따지고보면 가야금과 그 음악도, 한글도 지금처럼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적지 않은 우여곡절이 있었거든요.
가실왕이 가야금을 만든 이유를 굳이 설명한 이유도 가야의 신하들이 '중국의 음악이 있는데 굳이 가야의 음악을 따로 만들 필요가 있느냐'며 반대했기 때문일 것일테고, 최만리를 비롯한 조선의 사대부들이 훈민정음을 반대한 이유도 "중국의 문자를 잘 써 왔는데 굳이 따로 문자를 만들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가야금이 현재까지 전해지기까지는 더한 역경이 있었습니다. 가야가 망하자 우륵은 가야금을 가지고 신라로 망명합니다. 신라의 신하들은 "망국의 음악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부하지만, 진흥왕은 "음악에는 잘못이 없다"며 가야금과 가야의 음악을 받아들입니다.
이후, 가야금과 그 음악은 신라를 거쳐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전해졌으나 일제시대를 거치며 그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처합니다. 일제와 친일파들에 의해, 술집에서 기생들이나 타던 퇴폐적인 음악이라는 인식이 뿌리를 내린 것입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타파하고 서울대 음대에 가야금 교육과정을 개설하도록 애쓰신 분이 이혜구 선생이십니다.
한글 역시 사대부들에 의해 '언문', '암클' 등으로 불리며 천시받다가 일제강점기에 민족말살정책으로 사라질 뻔 했지만, 주시경 선생과 한글학회 등의 노력으로 현재까지 이어질 수 있었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라며 자랑해 마지않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 되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한국인 심리학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한국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알까요? 우리는 자신의 감정이나 기분에 이름을 붙입니다. '즐겁다', '슬프다', '화가 난다', '신난다'처럼 말이죠. 그런 말을 들으면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떠오릅니다. 말인즉슨 결국 우리는 말로써 마음을 경험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한국인의 마음을 영어로 이해하는 것은 타당한 일일까요? 자존심을 알기 위해 self-esteem을 가져오고, 화를 알기 위해 angry를, 한(恨)을 알기 위해서는 grudge를, 신명을 알기 위해서는 pleasure나 joy를 알면 되는 것일까요?
오늘따라 유난히 물음표가 많은 것 같습니다. 조금 골치아프지만 이 물음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구요. 마지막으로 이 말씀으로 글을 맺겠습니다.
여러 나라의 말이 다르거늘 어찌 마음이 같을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