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장에 대한 오해 총정리
고려장..이란 말 들어보셨을 겁니다. 늙은 부모를 더이상 모실 수 없게 된 아들이 깊은 산 속에 부모를 내다 버린다는 풍습인데요. 고려..라는 말이 붙은 걸 보아 고려시대의 풍습으로 알려진 채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고려장은 우리나라의 풍습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효(孝)를 가장 중시했고 국가적으로 이를 장려했습니다. 부모를 버리는 풍습이 국가적으로 존재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부모를 학대하거나 버릴 경우에는 국법으로 엄벌에 처해졌습니다.
그럼에도 고려장은 고려라는 나라 이름과 함께 '한국의 어두웠던 과거'를 상징하는 풍습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요. 오늘은 이 고려장에 대한 오해들을 바로잡아 볼까 합니다.
일단 고려장, 즉 부모를 버리는 풍습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상당히 폭넓게 존재합니다. 어릴 적부터 옛날 이야기로 많이들 듣던 이야기들이니만큼 이것이 우리나라 이야기구나 하고 받아들여지기 쉬운데요. 그러나 이 이야기들의 출처는 우리나라가 아닙니다.
널리 알려진 고려장 이야기는 크게 세 종류가 전해집니다.
하나는 아버지가 늙어 고려장을 하려 했으나 차마 아비를 버릴 수 없었던 자식이 몰래 아버지를 집에 숨기고 봉양하던 중, 이웃 나라에서 낸 어려운 문제를 아무도 풀지 못하여 나라가 위험에 빠졌는데 아버지가 이 문제를 풀어 나라를 구하고 이후로 고려장이 없어지게 되었다는 것이구요.
또 하나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늙은 할아버지를 지게로 갖다 버리라고 시켰는데 아들이 산에 할아버지를 버리고 지게를 도로 가져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가 그건 왜 가져왔냐고 묻자 아들이 '나중에 아버지 갖다 버릴 때 쓴다'고 대답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가 후회하고 다시 할아버지를 모셔오라고 했다는 것이죠.
마지막 하나는, 아들이 늙은 어머니를 버리려고 산 속을 가던 중 어머니가 자꾸 나뭇가지를 꺾습니다. 아들이 이유를 묻자 어머니는 '너 돌아갈 때 길 잃지 말라고' 그런다고 대답하고 아들은 어머니의 사랑에 감동하여 어머니를 다시 모시고 온다는 이야기입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불경 잡보장경(雜寶臧經)의 기로국조에 실려 있는 것으로, 불교가 전파되면서 불교권의 여러 나라에 전파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기로(棄老)라는 나라 이름과 고려의 발음의 유사성 때문에 고려장이라는 말이 생기지 않았을까 싶구요.
강대한 이웃나라와의 불평등한 외교관계를 담고 있다는 점이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고려장 고려기원설의 원형이라고 생각되는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는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두번째 이야기는 세종 때 간행된 삼강행실도 원각경부(元覺警父) 편에 실려있는 이야기인데요. 이는 중국 '효자전'에 있는 '원각 이야기'를 실은 것으로 동양 여러 나라에서 전승되고 있으며, 이와 유사한 이야기는 중동, 유럽, 아프리카에서도 발견됩니다.
세번째 이야기는 일본의 오바스테야마(姥捨て山) 전설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오바스테야마는 말 그대로 '할머니 버리는 산'인데요. 황금종려상까지 받은 일본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는 이 전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가장 유명한 나가노현의 오바스테야마 외에도 일본의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는데요.
일단, 이러한 이야기들은 사회안전망이 구축되기 이전 시대, 효와 인륜을 강조하는 보편적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 어느 시점에 어떤 문화에서 존재했었을 수도 있는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교훈적인 목적에 의해 창작되었을 수도 있는 있는 것이죠.
그러나 많은 한국인들은 고려장이 한국의 풍습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 계기는 일제강점기인 1924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출간된 '조선동화집'에 실린 '어머니를 버린 남자'부터로 볼 수 있습니다. 일제의 조선문화 말살이 본격화되던 시기, 조선 총독부가 어떤 의도로 이 이야기를 삽입했을지는 충분히 짐작 가능한 일입니다.
고려..라는 비교적 가까운 과거까지도 조선은 부모도 부양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고, 조선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제 부모를 내다버렸던 이들이라는 이미지를 주기 위함이었겠지요. 실제로 고려장은 일제의 도굴을 정당화하는 논리로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부모를 버린 이들의 무덤이니 파헤쳐도 괜찮다는 식이죠.
부모를 공경하고 효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인류 보편적인 이야기로서의 '기로설화(부모 버리는 이야기)'를 읽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들이라고 믿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오히려 실제 지명을 바탕으로 '부모 버리기 풍습'에 대한 비교적 생생한 묘사들이 남아있는 곳은 오바스테야마 전설의 일본이 아닌가 싶군요.
어쨌든 고려장은 우리의 풍습이 전혀 아닙니다. 세계화 시대의 바른 자기 인식을 위해 잘못된 상식이 빨리 사라지기 바랍니다.
덧붙여..
사실, 일본에서도 부모버리기 풍습이 실제로 존재했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일본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 오바스테야마 전설은 노모가 아들의 돌아갈 길을 위해 나뭇가지를 꺾었다는 부분만 빼면 불교의 '잡보장경'에 실린 이야기와 정확히 같은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아마도 불교가 일본에 전파되는 과정에서 불경의 이야기가 현지화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죠.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는 5,60년 경에 많이 만들어지던 동양 발 오리엔탈리즘 영화의 잔재인지도 모릅니다. (나라야마 부시코가 처음 영화화된 것은 1958년으로 알고 있습니다) 동양 영화들이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서양인들이 보고 싶어하는 동양 이미지(어둡고 낙후된)를 활용한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졌으니까요. 우리영화 '고려장'을 포함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