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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Sep 13. 2021

왜 고모보다 이모가 편할까

한국이 OO사회였다는 증거

한국인들은 식당에서 일하는 분들(여성)을 '이모'라고 부릅니다. 한때 이모라는 호칭이 문제가 있다며 '차림사'..라는 용어가 대체안으로 제기되었으나 "그럼 도둑은 절도사냐?"는 등 많은 사람들의 비웃음 속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죠.

식당 종업원 뿐이 아닙니다. 자녀가 있는 친구들을 만날 때 여자분들은 본인을 '이모'라 칭합니다. 엄마아빠도 아이에게 누구 이모라고 소개를 해주죠. 인터넷에서나 볼 수 있는 셀럽의 자녀들에게도 본인을 이모라 부르며 상호작용을 시도하는 랜선이모도 마찬가지입니다(남자들은 같은 경우에 대개 '삼촌'이란 호칭을 씁니다).


이는 일단 사회적 관계를 가족 관계의 확장으로 보는 한국형 인간관계의 사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궁금한 게 있는데요. 왜 고모가 아닐까요? 

어머니 항렬(?)의 여성 친족에 해당하는 말이 aunt밖에 없는 영어와는 달리 우리말은 고모(아버지의 여자형제), 이모(어머니의 여자형제, 숙모(아버지의 남자형제의 부인), 이들을 통칭하는 우리말 아주머니 등 다양합니다. 그런데 왜 다른 호칭이 아니라 이모가 대표 호칭이 되었느냐 이 말이죠.

언어는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문화와 심성을 반영합니다. 한국인들에게 고모보다 이모가 편한 이유가 있을거라는 얘긴데요. 그 이유는 바로..

한국이 모계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상당히 뜬금없다는 느낌 받으신 분 많으실겁니다. 한국은 유교 가부장 사회라고 듣고 배우셨을테니까요. 그러나 가부장적 질서가 모계사회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부터 한국이 모계사회인 근거를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우선 우리나라의 전통적 결혼제도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자가 결혼하는 것을 '장가간다', 여자가 결혼하는 것을 '시집간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시집간다'는 말은 후대에 생긴 말이고 오랫동안 결혼은 남자가 결혼할 여자의 집(장인의 집=장가)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남자가 여자의 집으로 들어가 살다가 아이가 성인이 되면 분가를 하는 식이었죠. 여러분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 아시죠? 율곡 이이가 자란 집이 강릉 오죽헌, 즉 신사임당의 친정입니다. 이이의 아버지 이원수에게는 처가가 되겠지요.


오죽헌 (사진출처: 강릉관광개발공사)

요즘 식으로 생각하면 '처가살이'를 한 것인데요. 이 시대의 처가살이는 현대 한국에서 처가살이가 갖는 의미와 사뭇 다릅니다. 임진왜란 전까지는 남자들이 장가(처가)가서 사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니까요.

이러한 풍습은 고구려 서옥제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고구려조에 보면, 고구려 사람들은 결혼할 때 남자가 여자의 집으로 가 여자의 아버지(장인)에게 결혼 허락을 구합니다. 허락이 내려지면 여자의 집에서는 집 한켠에 서옥(壻屋; 사위집)을 짓고 거기서 딸 부부를 살게 했다는 것이죠.

이러한 결혼제도는 한국에서 여자의 집안이 갖는 권위를 잘 보여줍니다. 결혼한 남자가 아내 집의 일원이 된다는 이야기니까요. 그의 노동력과 그 자녀들 역시 아내의 집, 다시 말해 아내 아버지의 가문의 소속이 되는 겁니다. 어느 정도 시간 후에 독립을 한다고 해도 그 기간 동안 받게 되는 경제적, 정신적(문화적) 영향력은 엄청나다고 할 수 있죠.



말리놉스키와 트로브리안드 제도 사람들

이런 사회, 즉 여성의 부계(아버지와 남자형제)가 사회적으로 힘을 갖는 사회를 모계사회라고 합니다. 말리놉스키가 연구했던 트로브리안드 제도가 대표적인 모계사회죠.  물론 한 집안에 아들도 있고 딸도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어떤 부계/모계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만, 이 두 종류의 사회는 결혼 후 두 집안의 권력구도라는 점에서 명백한 차이가 있습니다. 

모계사회에서 결혼한 남자는 아내 집안의 일원이 되고 그 사이의 자녀 역시 그 집안에 소속되며 자녀의 교육 역시 그 집안의 어른들(외할아버지, 외삼촌)이 담당합니다. 반면 부계사회에서는 결혼한 여성은 이 집에 속하게 되고 그 자녀 역시 이 집안의 일원이 되며 자녀 교육이나 가정의 대소사는 이 집안 어른들(할아버지, 삼촌들)의 결정에 따릅니다.

한국이 모계사회까지는 아닙니다만 모계적 속성이 강한 사회임은 틀림없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한국을 지배해 온 유교적 질서 때문에 한국사회는 부계적인 요소가 두드러지지만 눈에 띄지 않고 이어져 내려온 문화의 영향으로 모계의 힘도 그 못지 않게 강하다는 것이죠.

한국에서 결혼한 여성들이 결혼 전 성씨를 그대로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한국여성들이 남편 성을 따르지 않는 이유는?https://brunch.co.kr/@onestepculture/6). 여성의 성씨는 여성의 아버지의 성씨니까요. 이는 여성의 결혼 후에도 원가족의 영향력이 사회적으로 미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처남(태종 이방원) 때문에 돌아가신 분들

집요할 정도로 외척을 경계했던 조선왕조의 노력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조선초기에는 외척들에 대한 잔인하리만큼의 숙청이 이루어졌는데요. 왕 자신과 왕자들에게 미칠 외척들의 영향력을 미리 차단하여 왕권을 강화하려는 조치였을 겁니다. 실제로 순조 이후 안동김씨, 풍양조씨 등 외척집안들을 견제하지 못하자 왕권이 추락하고 세도정치가 발흥하는 계기가 되죠. 

한편, '시집살이'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나타난 결혼방식입니다. 대를 이어야 할 많은 남자들이 죽은 탓도 있고, 전쟁 후 혼란스러운 가치관을 다시 세우는 과정에서 사회가 급격히 보수화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남자가 장가가는 방식이 아닌 여자가 '시집'을 가는 형태의 결혼제도가 자리를 잡습니다.

장가를 가긴 하되, 장가(처가)에서 며칠 정도만 머물고 이후에는 여자가 시집으로 가서 시집에서 계속 사는 것이죠.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압력과 시집의 법도와 문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부담감, 또 아들과 남편을 놓고 벌이는 여자들 사이의 신경전 등이 시집살이라는 한국 여성들이 겪어왔던 간난고초는 여기부터 시작됩니다.



이제 이모가 고모보다 편한 이유가 짐작이 가시죠? 생각해보십시오. 아이들의 고모는 엄마에게 시누이입니다. 시누이는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속담의 주체이자 시집살이의 한 축이죠. 반면에 엄마의 친정, 즉 외갓집에 가면 볼 수 있는 이모는 엄마의 형제입니다. 

친가에 할아버지 할머니 뵈러 갈 때와 외갓집에 갈 때의 차이를 기억하십니까? 손자손녀 입장이지만 왠지 불편하고 눈치보였던 어디와, 누구 눈치보지 않고 마음껏 어리광 부릴 수 있었던 어느 곳. 이는 엄마의 기분과 관계있습니다. 아빠의 기분과도 관계있겠군요. 아내의 기분이 좋지 않은데 기분 좋을 남편은 없을테니까요.

부모의 감정은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부모의 감정경험 방식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아이가 배우고 그것이 사회의 문화가 되는 것이죠. 엄마가 누구를 더 편해하고 누구를 더 어려워했겠습니까. 아기 때부터 엄마의 감정을 보고 느꼈을 우리들은 누구에게 더 친근감을 느꼈을까요?

이것이 우리가 여자 어른들을 '이모'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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