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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Dec 09. 2016

최태민은 왜 자신을 미륵이라 했나?

한국의 구세주 신앙에 대하여

박근혜와 최순실의 인연은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최태민은 무당, 승려, 목사 등 복잡한 이력을 가진 인물로 '육영수의 음성을 들었다'며 박근혜에게 접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최태민은 자신이 '미륵'이라며 영세교를 만들어 사람들을 끌어모았는데요.

미르-K, 미르ㄱ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은 최순실+박근혜가 설립한 '미르'재단과 'K스포츠'를 연결하면 '미륵'이 된다며 이번 게이트의 배경에 최태민의 그림자가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박근혜와 최순실의 관계를 추적해보면 과연 일리가 있겠다 싶기도 한데요. 그들이 그토록 되살리고 싶었던 미륵(최태민?)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요?


일단 미륵은 불교에서 온 용어입니다. 불교에서 믿는 여러 부처님들 중 한 분이지요. 금산사나 낙산사의 미륵전에 모셔져있기도 하고, 우리에게 익숙한 국보 78호 반가사유상도 미륵입니다. 동네 어귀에 이름없이 서 있는 돌부처를 사람들은 '돌미륵'이라 부르면서 자신들의 소소한 소망들을 빌곤 했습니다.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미륵신앙은 6,7세기에 유행한 불교의 한 흐름으로 미륵부처가 이 세상으로 와서 사람들을 구원하고 좋은 세상을 만들어 줄 거라는 믿음입니다. 삼국의 대립이 격화되고 행정구역 및 제도가 변화하고 정착하는 과정에서 민초들의 삶은 피폐해져 갔고, 사람들은 암울한 현실에서 우리를 구원할 미륵을 기다리게 된 것이죠.


이후 시기에도 민초들의 삶이 힘들어지면 미륵신앙이 성행했고 이를 틈타 자신이 미륵이라고 주장하는 인물들이 나타났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죠. 조선 숙종 때도 여환이라는 승려가 미륵을 자칭하며 난을 꾀한 적이 있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황석영 소설, '장길산'에도 들어있습니다.

"짐은 미륵이라~ "

여기서 우리는 미륵의 성격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미륵은 '구세주'인 것이죠. 이 힘들고 어려운 세상에서 우리를 구원할 구세주 말입니다. 어? 어딘가 익숙한 이 느낌은 뭘까요? 


그렇습니다. 구세주 하면 떠오르는 그 분. 예수님. 

예수와 미륵은 무슨 관계일까요?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신.. 그분

미륵(彌勒)은 인도어 마이트레야(Maitreya)에서 왔습니다. 그 어원을 따라가다보면 미트라(Mitra)가 나오는데요. 미트라는 인도의 힌두교,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 교에서 '빛의 신(태양신)'으로 섬기던 신의 이름입니다. 


태양은 매일 지고 매일 떠오릅니다. 어둠의 세력에 힘을 잃지만 다시 되살아나는 것이죠. 태양의 이러한 속성은 죽었다가 살아나는 '부활'과 어두운 세상을 빛으로 구원할 '구세주'라는 상징으로 연결되어 종교적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렇게 보면, 유대교와 기독교의 메시아(Messiah) 또한 이 미트라에서 기원하는 말이라는 것이 낯설지 않으시겠지요? 그렇습니다. 미륵은 메시아입니다. 구세주지요. 즉 미륵신앙은 구세주 신앙인 것입니다. 


한국에서 기독교가 그토록 빨리 전파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1500년 동안이나 미륵님(메시아)기다려왔던 사람들이니까요 . 미륵을 자칭하던 최태민이 별안간 '목사'라는 직함을 챙긴 이유 역시 짐작 가능합니다. 최태민은 힘들고 어려웠던 우리 역사의 한 시기에 구세주로서 자리매김하려고 했던 것이죠. 역사 속의 궁예나 여환처럼 말입니다. 

하는 김에.. 미르재단의 로고 '용'과 미륵의 관계에 대해서도 알아봅시다. 미륵이 구현할 이상향을 '용화세계(龍華世界)'라고 합니다.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에 따르면 이 세상에 온 미륵이 용화(龍華)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고 중생을 교화할 것이라 하였는데, 여기에서 온 말입니다. 


용의 우리말이 '미르'인데요. 용화세계에 나오는 용이라는 글자와 발음의 유사성 때문에 용은 미륵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물론 민간신앙 차원에서 말이죠. 또한 용은 과거부터 최고존엄 즉 임금을 상징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왕들은 자신이 용의 핏줄임을 공공연히, 은연중에 드러내어 통치의 수단으로 삼았지요. 


왜구를 막기 위해 죽어서 용이 되었다는 신라 문무왕, 용의 아들로 태어난 백제 무왕이 미륵사를 창건한 것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왕의 얼굴을 용안이라 하고, 왕이 입는 옷을 곤룡포라 하는 등 우리나라에서 용은 미륵, 즉 구세주와 함께 현실 권력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러고보면 최순실이 만든 재단의 이름이 미르이고 그 상징이 용인 것은 최태민 및 영세교, 그리고 박근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이는군요. 하지만 최태민과 박근혜는 미륵이 아니었습니다. 구세주가 아니었죠. 그들은 구세주라는 이미지를 이용해 국가를 농단한 범죄자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미륵신앙(+용+왕)이라는 한국 고유의 믿음체계가 있었습니다. 1500년이나 구세주를 기다려왔던 한국인들의 무의식 어딘가에는 아직도 언젠가 오실 미륵, 즉 구세주를 맞이하려는 심성이 새겨져 있는지 모릅니다. 어떤 이들의 기억 속에 그 구세주는 박정희였으며 그 딸에게까지 구세주의 이미지를 투영하기도 했었죠. 그리고 그 결과는... 흠흠..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한국인들의 미륵신앙, 즉 구세주에 대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힘들고 팍팍한 현실에서 우리를 구원할 리더에 대한 기다림으로 이어집니다. 현실이 힘들고 혼란스러울수록 기다림은 간절해질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문화적 욕망임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지금 우리는 절망과 희망이 뒤섞인 초유의 혼돈을 겪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혼란을 일거에 해결해 줄 리더를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언급되는 몇몇의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구원할 미륵이 될 수 있을까요?

이 사진은 특정 사실과 관계 있을 수도 있습니다

미륵을 자처했던 이들이 자행했던 일들을 떠올려보십시오. 지금 우리가 기다려야 할 것이 구세주여야 할까요? 우리가 광장에서 외친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좋을지 생각해보십시오.


미륵신앙은 오랜 옛날부터 민초들에게 현실의 간난고초를 잊게 해 주었던 우리의 믿음입니다. 사람들은 언젠가 우리를 구원할 구세주를 기다리며 힘든 오늘을 살아갔습니다. 그것이 미륵신앙의 잠재적 기능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세상은 그런 세상이 아니지 않습니까.


노력한 만큼 이루어지는 세상. 정의롭고 공정한 세상. 국민이 주인되는 나라. 

우리가 간절히 바래왔던 그 모든 것들..

그것을 어느 한 사람이 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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