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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Jul 30. 2020

한국에서 변신의 의미

그들은 왜 사람이 되고자 했을까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한국에서의 변신의 의미를 다뤄보고자 합니다. 이 글은 '나라마다 다른 '변신'의 의미(https://brunch.co.kr/@onestepculture/349)'의 후속편입니다.


한국의 문화콘텐츠에는 변신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드뭅니다. 힘을 숨기고 살다가 영웅으로 변신하는 슈퍼맨류는 물론, 옆나라 일본이 원조격인 변신로봇물, 마법소녀물, 전대물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옛이야기에는 변신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국 변신이야기의 원조는 역시 단군신화인데요. 한민족 최초의 나라가 열리는 이야기인 단군신화에는 사람이 되기 위해 쑥과 마늘만 먹고 동굴 안에서 100일을 지내야 하는 호랑이와 곰이 등장합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이 이야기는 한국인들의 심성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자료이자 한국에서 전승되는 여러 이야기들의 원형(原型; archetype)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한국문화에서 '변신'의 의미도 이를 통해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핵심은 변신의 동기입니다. 곰과 호랑이는 '사람'이 되고 싶어 환웅을 찾아갑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환웅이 다스릴) 세상에 살고 싶어서죠. 사람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100일간의 자가격리와 육식 금지라는, 상위 포식자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퀘스트가 주어집니다.

2주간의, 그것도 풍족한 식품을 지원받는 자가격리도 어려운데 와이파이도 터지지 않는 캄캄한 동굴 속에서 쑥과 마늘만 먹으며 100일간 자가격리라니요.. 다들 아시다시피 이를 견디고 사람이 된 것은 곰(웅녀)이었습니다. 환웅와 웅녀의 아들이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입니다.


신화는 사실의 기술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곰이 사람이 될 수 있느냐, 우리가 과연 곰의 후손이냐를 따질 것이 아니라 이 이야기의 이면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야 합니다. 역사가들은 단군신화에서 선진 청동기 문화를 가진 이주 집단(환웅)이 토착세력(곰과 호랑이)들과 융합하는 과정을 읽어냈죠.


문화심리학자인 저는 '사람이 되고자'하는 곰과 호랑이의 욕망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사람 아닌 존재'의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야말로 한국 변신 이야기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처녀로 변신한 호랑이..와 사귄 김현

한국의 변신이야기들은 대개 사람 아닌 존재가 사람이 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단군신화로부터 삼국유사에 나오는 '김현감호'의 호랑이, 우렁각시, 지네여인, 구미호, 손톱 먹은 쥐 등이 그렇습니다. 조금 성격이 다르지만 '은혜갚은 까치'의 구렁이나 '여우 누이'의 여우도 있군요. 교과서에 실린 이야기도 있고 어렸을 때 읽었던 전래동화나 전설의 고향 등에서 수없이 접했던 전형적인 한국 설화들입니다.


세부적인 전개나 결론은 조금씩 다릅니다만 이 이야기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인간이 되고자 하는 욕망'입니다. 호랑이, 여우, 쥐, 우렁이 등등은 사람과 어울려 살고 싶어서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대표적으로 우렁각시의 변신동기는 혼자 사는 노총각과 같이 살기 위해서였죠.

나랑 같이 살지~

사람 가까이 살면서 사람들 사는 모습을 봐 왔던 동물들은 사람들이 부러웠고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는 것입니다. 사람 사는 게 거기서 거기일텐데 그들은 왜 그렇게도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요?


한국 변신이야기의 중요한 특징 또 하나는 변신한 존재는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물론 은혜갚은 까치의 구렁이처럼 복수를 목적으로 한 변신도 있고 여우 누이처럼 본래 식습관을 이기지 못한 케이스도 있지만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는 점은 한국 변신 이야기를 규정짓는 중요한 속성이죠.  


사랑하는 김현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준 호랑이 처녀나 남편의 조급함과 배신에도 끝내 남편을 해치지 않은 구미호와 지네여인이 그렇습니다. 손톱먹고 사람이 된 쥐 역시 겉모습은 훔쳤을지언정 사람을 해치려는 의도는 크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제가 쥐였으면 손톱 임자부터 어떻게 했을 거 같은데 말입니다..


사람이 되고자 한 존재들의 욕망은 사실 사람들의 욕망입니다. 인간 아닌 존재들이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는 것은, 사람으로 사는 일이 그만큼 좋다라는 생각이 있기에 가능한 생각입니다. 의외로(?)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사람들과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상당한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요.


이른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겁니다. 이 '현세주의(現世主義)'는 한국문화의 중요한 특징으로 꼽힙니다.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해 왔던 유교의 영향일 수도 있고 그 이전부터 한국인들의 삶과 마음에 영향을 끼쳐 온 무속(巫俗)에 기인한다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무속은 동북아시아 샤머니즘의 한국적 유형이라 할 수 있는데요. 샤먼(무당)이 천계로 올라가 신과 만나는 시베리아 샤먼과는 달리 한국의 신들은 당신들이 직접 무당의 몸으로 '내려옵니다'. 당장에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는 천상의 존재 환웅도 인간 세상으로 내려왔죠.

환웅과 웅녀의 아들 단군은 제사장 겸 군왕으로 우리나라 무당들의 조상이 되는 분입니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종교는 신이나 내세에 대한 언급보다 인간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뤄왔는데요. 이러한 특징은 후세의 유교와 결합하여 한국문화의 현세주의적 또는 인간중심적 측면을 강화하게 됩니다.


한편, '사람이 아닌 존재가 사람을 사랑하여 사람의 모습으로 사람 세상에 산다'는 전통 변신물의 코드는 현대 한국의 문화콘텐츠에서도 반복됩니다. 변신이라는 형식보다는 그 본질이 여전히 전해오고 있다는 생각인데요. <별에서 온 그대>나 <도깨비>가 대표적입니다.

외계인이지만 사람의 모습으로 수백년을 살면서 만난 한 여자를 사랑하는 '도민준'.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니지만 사람들 틈에서 수백년을 살아왔고 한 여자를 사랑하는 '김신'


이 드라마들의 구조는 지금껏 말씀드린 옛이야기들과 본질적으로 동일합니다. 좀 빈약해 보이는 요약이지만 원래 아무리 멋진 콘텐츠도 핵심구조만 남겨놓으면 별 거 없어 보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한 마디로 한국에서의 변신의 의미란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의 모습으로 사람 세상에 살고 싶다'는 욕망과 관계있다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한국의 변신을 다른 문화권들의 변신과 그 의미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내면의 악이 자신을 침식할지 모르는 두려움을 표현한 서구 개인주의 문화권의 변신과 현실의 내가 아닌 더 크고 멋진 내가 되려는 욕망의 표출인 일본의 변신에 비해, 한국의 변신은 '다른 존재들도 나처럼 되고 싶을 거라는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써놓고 보니 웬 근자감인가 싶은데요.. 사실 근자감은 한국인 심리의 중요한 한 축입니다. 문화심리학(제가 하고 있는 토착심리학적 문화심리학)에서 한국인들은 '자기가치감'이 높은 이들로 나타납니다. (이에 대해서는 제 다른 글 '한국인의 자기가치감(https://brunch.co.kr/@onestepculture/292)'을 참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리하자면, 서양의 변신이 자기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는 개인주의 문화의 압력에서 비롯되었고, 일본의 변신이 개인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 이외의 선택지가 매우 적은 일본문화적 특성에서 유래되었다면, 한국의 변신은 왠지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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