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와 한류의 관계
한류는 이제 부정할 수 없는 세계적 문화현상입니다. 아시아 일부 나라의 드라마 열풍으로 시작됐던 한류는 K-pop과 영화를 넘어 K-뷰티, K-푸드, K-의료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초창기에는 여러 모로 한류를 인정하지 않던 사람들도 일이 이렇게 되다보니 이제는 받아들이고 있는 추세인데요.
과연 한류가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경제성장에 따라 발달한 문화인프라, 꾸준히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온 예술인들의 노력, 인터넷과 유튜브 등 새로운 매체의 발달 등 여러 요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한국문화와 한국인들이 가진 심리적 특성도 한몫을 했을 거라 생각되는데요.
외신이나 매체 관계자들이 한류에 대한 이런저런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만, 주로 콘텐츠 자체에 대한 분석이고 한류와 한국문화의 연관성을 언급한 것들은 거의 없습니다. 학계(?)에서도 나름 이 한류라는 현상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답을 찾으려는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심리학계는 아닙니다).
저도 자료를 찾을 겸 여러 학술지들을 살펴본 적이 있는데요. 고구려 무용총 벽화의 그림과 소녀시대를 연관짓는 시도부터 해서 ㅋ 유교 경전에서 싸이의 코믹함을 찾으려는 모습까지.. ㅋ 아주 흥미로운 연구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저는 1도 동의할 수 없었지만 말이죠. ㅋ
한류는 당연히 한국문화에 그 뿌리를 둘 것입니다. 어떤 방식으로든지 말이죠. 그러나 싸이의 말춤이 수렵도의 기마인물에서 유래했다든지 한글의 우수성이 한류 확산의 주 원인이라는 주장으로는 당장은 신기하고 기분은 좋겠지만 제대로 된 답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렇듯 1차 사료에 가까운 자료와 현대의 문화현상을 직접 연관지으려는 시도는 무리가 있습니다. 고대에 춤추고 노래했다는 기록이 있는 민족이 우리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역사적 자료에 나타난 과거 한국인들의 모습이 당대 다른 나라 사람들과 뚜렷이 다르고 그러한 속성이 현대 문화현상에 나타난 현대 한국인들의 '심성'에 공통점이 있다는 식의 주장이면 몰라도 말입니다.
사람들은 현대 한국인들의 많은 특성이 현대에 습득된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 유교문화와 집단주의 문화의 영향으로 자기표현도 못하고 뭐 즐길 줄도 모르고 살아왔던 한국인들이 현대의 경제발전과 문화개방의 영향으로 개인주의화되면서 자기주장도 강해지고 문화예술도 발전했다는 식이죠.
그러나 한국인들의 어떠한 측면은 역사적으로 꽤 오랜 뿌리를 갖고 있습니다. 몇가지 역사적 기록을 통해 한국인들의 심성의 뿌리를 더듬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종실록 1662년 7월에는 전남 무안의 어민 18명이 풍랑으로 떠돌다 오키나와까지 갔던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 한동안 쩔쩔매던 두 나라 사람들. 그런데 왜인지 오키나와인들이 갑자기 북을 갖다 주자 조선인들은 북치며 춤추고 노래를 불렀다는데요. 그러자 오키나와인들이 "아, 저들이 조선인이구나! "해서 조선말을 아는 사람을 연결해줘서 조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오키나와인들은 북치고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을 보고 그들이 조선인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적어도 오키나와인들에게 다른 나라 사람들과는 달리 조선인들이 '북치고 춤추고 노래부르며 논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얘깁니다.
'북치고 춤추며 노래하는 조선사람'의 이미지는 보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중국사람들은 자신들을 궁리진성(窮理盡性)의 사람들로, 한국사람들을 고무진신(鼓舞盡神)의 사람들로 묘사해왔습니다. 궁리진성이란 <주역>에 나오는 말로 마음을 다해 이치를 탐구한다는 의미이고, 고무진신이란 신명을 다해 북치고 춤춘다는 뜻이죠.
고무진신이라는 말은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동이 사람들은 한번 놀면 며칠을 밤새워 술마시고 북치고 춤을 춘다는 기록에서 왔으리라 추정됩니다. 고대 중국인들이 이미 한국인(동이족)들을 그들과는 다른 심성을 가진 사람들로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시대가 바뀌고 과거의 많은 문화가 사라졌지만 이 부분(술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는_feat 북)은 현재도 변함없어 보입니다. 그만큼 한국인들의 본성과 가장 가까운 모습이 아닐까 하는데요. 전쟁과 기근, 참화가 나라를 휩쓸었어도 이 모습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현대 들어서도 일제강점기 및 전쟁 등으로 일시적으로 사라진 것처럼 보였을 때도 있었지만 이 모습은 어딘가에 남아 면면히 흘러왔습니다.
그것이 건전한 맥락이었든 건전치 못한 맥락이었든 간에 말이죠. 기쁜 일이 있어도 슬픈 일이 있어도 날이 좋으나 궂으나 (음주)가무는 역사 속에서 한국인들과 함께 해 온 우리의 문화였던 것입니다.
춤과 노래는 헤아릴 수 없는 옛날부터 인류와 함께 했습니다. 춤과 노래를 통해 사람들은 시름을 잊고 기쁨을 표현하며 다른 이들과 돈독해질 수 있었죠. 한국의 역사에서 춤과 노래가 특히 중요했었다는 사실은 한국인들이 춤과 노래의 기능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것을 삶에서 잘 활용해 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타고난 박치나 음치가 아니고서는 춤이나 노래나 자주 하면 잘 하게 됩니다. 또한 볼 일이 많으면 감상하는 눈도 날카로워지죠. 함께 하다보면 상대와 호흡을 맞추거나 관객과 상호작용하는 법 또한 배우게 됩니다. 노래를 어떻게 불러야, 춤을 어떻게 춰야 잘하고 멋지게 보이는지,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알게 된다는 얘깁니다.
우리는 유치원부터 초중고,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장기자랑을 합니다. 친척들이 모이면 아이들은 노래와 춤을 추죠. 술이 한잔 들어가면 노래가 나옵니다. 잔치(파티)에 밴드가 오는 것이 당연하고 관광버스 안에서도 디스코 음악이 흘러나오죠. 산책하는 사람들도 (이어폰은 어디두고) 음악을 들으며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때로는 말도 노래로 합니다(내가~ 그걸~ 어디다~ 뒀더라~~).
한국인들에게 노래와 춤은 문화적으로 학습되는 행위양식에 가깝습니다. 한류는 그러한 문화가 특정 시대의 특정 조건을 만나 그 꽃을 피우게 된 것이죠. 예를 들면, 90년대 이후로 오랜 시간 다져진 문화산업의 인프라와 2000년대의 인터넷 기술 같은 것들 말입니다. (물론 한류스타가 되는 이들은 우리 문화에서도 매우 특출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왜 노래와 춤을 좋아하게 되었을까요? 단지 그 기능을 취하기 위해서? 인간은 그렇게 목적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운동이 몸에 좋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운동을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문화의 기능은 구성원들의 마음 속에 내재되어 스스로 부여한 의미를 바탕으로 자동적으로 작동하게 됩니다.
한국인들이 춤과 노래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쓰는 말에서 드러납니다. '흥'과 '신명'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흥'이 올라야 몸이 움직이고 '신'이 나야 몸이 풀리는 사람들입니다. 노래도 마찬가지겠죠. 과연 '흥'과 '신(명)'이란 무엇일까요?
이 주제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