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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Jan 19. 2017

트럼프의 당선과 다문화의 미래

제노포비아의 심리학

내일이면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됩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아니 조짐은 있었지만 누구도 바라지 않았던 미래는 이제 현실이 되었습니다. 오늘 한선생 문화심리학에서는 트럼프의 당선이 갖는 의미와 시사점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주목해 볼 부분은 다문화(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트럼프의 인식입니다. 공약, 특히 이민정책에서 드러난 트럼프의 방향성은 '미국 (백인) 중심주의'입니다.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멕시코와 미국 사이에 장벽을 설치하고 불법체류자들을 추방하겠다고 했으며, 난민을 비롯한 불법이민을 철저히 막겠다고 했죠. 


또한 트럼프는 평소의 언행에서 백인우월주의는 물론 여성 혐오와 소수자들에 대한 적대적 인식 등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 왔습니다. 이러한 그의 인식은 오래 전부터 각종 언론과 매체를 통해 비난받아왔고, 다양성을 최고의 가치로 지켜 온 미국과 미국인들에게 부정적 인상을 줄 것이라 믿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선거의 결과는 의외였습니다. 물론 골 때리는 미국의 선거제도 탓도 있겠습니다만 도널드 트럼프가 제 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죠. 선거를 앞두고 실시한 거의 모든 여론조사와, 뭔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세계의 정의를 끝까지 지켜줄 거 같은 미국과 미국인들에 대한 막연한 인상을 한번에 뒤집는 결과였습니다.


그 이후로, 취임도 하기 전에 미국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혐오범죄들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흑인들과 히스패닉, 무슬림을 비하하는 낙서들이 곳곳에서 발견되었고, 성소수자들은 이웃에서 협박성 쪽지를 받았습니다. 미국의 교실과 사무실, 거리에서 타민족과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가 공공연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남부연합 깃발 앞에서 흑인비하
성소수자 가족에게 보낸 이웃의 쪽지

타민족, 인종에 대한 이러한 태도를 제노포비아(Xenophobia: 인종공포)라고 합니다. 공포라기보다는 혐오의 형태로 드러나지만요. 트럼프의 당선이 정치, 경제, 군사, 외교 등 전방위적으로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지만, 저는 그의 '다른 존재에 대한 인식'이라고 할 수 있는 제노포비아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다른 이들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그들과의 관계가 결정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다문화 국가로 알려져 있던 미국에서 어떻게 트럼프 같은 인종주의자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요? 자유와 정의, 평등한 기회의 땅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오브 아메리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트럼프의 당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현상을 보다 보편적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노포비아가 미국만의 현상은 아니기 때문이죠. 사실 유럽에서 제노포비아가 대두된 것은 더 오래 전의 일입니다. 대략 2000년대 초반부터 유럽 여러 나라들에는 소위 극우정당들이 세를 얻기 시작하는데요. 프랑스의 국민전선, 독일의 독일대안당, 영국의 영국독립당, 네덜란드의 자유당, 이탈리아의 북부동맹 등 한때는 또라이 취급을 받던 극우정당들은 이제 전통적인 정당들을 위협하는 당당한 원내세력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표면적으로 반이민, 반테러리즘입니다. 유럽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이슬람 세력의 테러를 막기 위해서는 현재의 이민, 다문화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는 것이죠. 나아가면 이들의 주장은 결국 '자국인들의 나라'를 되찾겠다는 데 이릅니다. 


자국인들이란 유럽인, 즉 백인들입니다. 현재 자신들의 문제들(경제, 사회, 테러 등)의 원인이 다문화인들에 있다고 보고 그들을 배제한 백인들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것이 극우정당들의 주장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주장에 공감하고 동참하는 유럽인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오스트리아 대선에서는 극우정당의 후보가 득표율 0.6%의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떨어졌습니다. 유럽의 극우경향을 잘 보여주는 사례인데요. 유력한 대선 후보 르펜을 보유한 프랑스 국민전선은 원내 3당, 스위스의 국민당과 덴마크의 인민당은 각각 원내 1,2위의 정당입니다. 독일도 독일을 위한 대안당의 급격한 성장으로 메르켈의 입지가 불안한 지경이죠. 


마이클 잭슨이 세계는 하나라는 'We are the World'를 부른 것이 1985년의 일입니다. 30년 동안 이 세상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We are the World~ 

사람들이 다른 민족, 인종을 인식하고 상호작용하기 시작한 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약 100여년 전만하더라도 다른 나라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외교관, 상인, 군인 등 손에 꼽을 정도였죠. 세계의 문화가 본격적으로 섞이기 시작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입니다. 


지금은 하루면 세계의 어느 곳이나 갈 수 있고 지구촌이라는 말이 너무나 당연하게 들리지만 이게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We are the world야 말로 어색하기 이를 데 없는 구호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사람들은 세계는 하나라고 외치기 시작한 것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그게 필요해서였지요.


2차 세계대전 후, 전쟁이 일어났던 유럽 대륙은 말 그대로 폐허였습니다. 유럽인들은 폐허가 된 삶의 터전을 다시 일구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야 했지요. 그러나 사상자만 5천만명 이상에 히틀러의 압제를 피해 미국 등지로 떠난 이들까지.. 유럽은 노동력 부족에 시달립니다.


이런 현실에서 유럽 제국의 선택은 '이민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상은 2차 대전 전까지 자국의 식민지였던 나라의 국민들이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알제리나 튀니지 같은 나라들 말입니다. 이들을 '유인'할 수 있는 방법은 유럽이 기회의 땅이라는 것을 어필하는 것이었죠. "너희는 더이상 노예도 식민지 백성도 아닌 우리와 동등한 인류이다. 여기 오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해서 유럽은 과거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중동에서 대대적인 이민을 받습니다. 최초에 이민 1세대들은 잔해 제거, 청소, 건설 등의 저임금 3D 업종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육수준이나 언어 능력이 자국인들에 비해 뒤처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전쟁으로 황폐화된 유럽에서는 이들의 노동력이 꼭 필요했습니다.


1950년대에서 7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민자들은 전쟁으로 파괴된 유럽을 재건하며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합니다. 냉전으로 인한 평화(?)와 생산>소비로 이어지는 경제구조의 정착으로 세상은 한동안 세상은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전쟁도 없고 경제는 발전하고 사람들의 생활수준도 빠르게 상향평준화되어가고 있었죠. 더이상 피부색이나 인종은 사람들이 서로 사이좋게 사는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이것이 85년 발표된 We are the World의 배경입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하지만 90년대 들어 독일이 통일되고 소련이 붕괴되면서 40년 가까이 이어졌던 냉전체제가 무너집니다. 세계가 다극화되고 90년대 후반부터 IT기술 혁신 등이 나타나면서 산업구조에도 급격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변화들은 기존의 경제환경을 크게 흔들었고 일부 국가에서는 경제의 침체로 이어졌습니다.


여담이지만 중요한 사실로, 현재는 2차대전 이후의 산업경제구조가 새로운 경제구조로 변화해 가는 시점입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기회가 되겠지만 많은 이들에게는 혼란과 고통의 나날이죠. 잘 나가는 유럽도 이러한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보니 유럽의 경제상황도 썩 좋지 않은 실정입니다.


EU의 살림을 살짝 들여다보면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의 나름 잘 나가는 몇 나라가 문제 많은 여러 나라들을 먹여살리는 형국입니다. 영국이 브렉시트(Brexit)를 선언한 이유 중의 하나기도 하고, 많은 재정적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프랑스나 독일국민들이 불만을 갖는 부분이기도 하죠.


그런데 여기서 제노포비아가 어떻게 나오게 됐느냐 하면, 이렇게 유럽의 경제가 어려워진 마당에서 이민자 집단의 활동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주로 3D업종에 종사했던 1세대 이민자들과는 달리 2세대, 3세대 이민자들은 자국인 못지 않은 언어능력과 교육수준을 갖추게 되었고 이들이 사회의 요직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가뜩이나 일자리가 줄고 있는데 그마저도 이민자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죠. 유럽인들의 불만은 일차적으로 이민자들을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과정은 사회심리학의 현실적 집단갈등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요. 한정된 자원을 놓고 벌어지는 경쟁상황에서 한 집단의 상대적 박탈감은 상대집단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적개심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죠. 


피부색, 눈동자나 머리카락의 색깔, 옷차림 등 외모는 나와 남을 구별하는 현저한 단서입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발생한 불만이 자연스럽게 '눈에 띄는 다른 존재'들로 향하게 되는 것이죠. 이것이 제노포비아의 근본적 이유입니다. 최근의 시리아사태와 유럽으로 밀려드는 난민들, 그로인한 치안문제와 경제적 어려움은 여기에 기름을 끼얹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는 극우세력들과 트럼프의 당선은 본질적으로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나를 못살게 만드는 건 너희들 때문이다'라는 간단한 도식이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의 당선에는 세계화와 기술혁신에서 소외된 저학력 저소득 백인계층의 숨은 표심이 결정적이었다고 하죠. 


아시안과 히스패닉의 약진은 이들의 박탈감을 가중시켰고, 날로 진보(?)해 가는 세상 또한 이들에게는 만만찮은 스트레스였을 겁니다. 가뜩이나 먹고 살기가 팍팍해져 가는데 좋은 직장은 외국인들이 다 차지하는 것 같고, 동성결혼이 합법화되는 등 미국의 전통적 가치들이 사라져 가는 와중에,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이은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의 출현까지 감내하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일 겁니다.


트럼프의 당선과 함께, 올해 있을 프랑스 대선은 제노포비아의 향방을 가늠할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누구나 동의하는 것 같고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세계화'와 '다문화'의 미래는 달라질 것입니다. 프랑스인들은 미국과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이제 막 다문화사회의 초입에 들어선 한국이 반드시 주목해 보아야 할 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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