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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Mar 27. 2017

문화연구와 무의식이론

심리학자도 모르는 심리학 이야기 4

문화와 문화에서 비롯된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는데 무의식은 대단히 중요한 주제입니다. 인간의 행동은 의식수준에서만 일어나지는 않기 때문이지요. 행동의 기저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물론 어떤 행동을 한 사람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뭔가 대답은 하겠지요. 그러나 그게 전부일까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행동의 이유에 대한 심리학 이론은 프로이트의 정신역동이론이 가장 유명합니다. 무의식의 존재와 무의식이 생성되는 이유,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론이죠. 하지만 정신역동이론과 무의식은 심리학에서 철저히 따돌림을 당해 왔습니다.


바로 '비과학적이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존재하는지 아닌지 당사자조차 알 수 없는 무의식이라는 주제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연구하기가 불가능합니다. 물론 무의식이 생성되는 이유와 무의식이 인간행동에 미친 영향도 과학적으로는 검증할 수 없죠.


해서 오랜 시간 동안 무의식은 심리학의 연구 영역 밖에 소외돼 있었습니다. 정신역동이론과 무의식에 근거한 프로이트나 에릭슨의 발달이론이 대부분의 심리학 개론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그러나 문화심리학이 부상하면서 심리학의 지나친 실험중심 패러다임에 이의를 제기하고, 실험을 통한 설명(explanation)만이 마음에 대한 유일한 접근법이 아니라 현상에 대한 해석(interpretation)이 대안으로 제시되면서 무의식은 문화연구에 또 하나의 중요한 주제로 떠오릅니다.


사실 떠올랐다기보다는 떠올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제가 문화연구에서 무의식적 동기를 강조하고 있거든요^^. 제 이전 글들 중 몇 개(그들은 왜 성조기를 드는가https://brunch.co.kr/@onestepculture/169, 한국의 영웅은 누구인가https://brunch.co.kr/@onestepculture/109 등)는 이런 관점에서 쓰여진 것들입니다.


오늘은 제가 참조하고 있는 문화심리학의 무의식이론들이 어디서 왔는지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올리고 있는 글들의 주장이 뿌리가 있음을 확인시켜드리려는 의도와 앞으로 문화심리학의 영역이 더 넓어지는 마음이 함께합니다^^.



프로이트(1856-1939)의 정신역동이론으로부터 무의식에 대한 이론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인간의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적 유산이 있음을 지적한 사람은 심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빌헬름 분트(1832-1920)입니다. 심리학 실험실을 만든 사실 때문에 과학적 심리학의 아버지가 되신 양반이지만, 한편으로 '민족심리학'이라는 역작을 남기셨죠.

Willhelm Wundt

분트의 민족심리학은 실험으로 밝힐 수 없는 인간의 고등정신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살아온 역사와 문화를 알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문화는 어떤 사람들이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만들어놓은 맥락(context)으로 , 그 맥락 안에서의 인간행동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들이 공유해 온 역사와 신화, 전설, 민담 등의 문화적 유산을 이해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죠.


분트의 이러한 생각은 융(C.G. Jung; 1875-1961)에게 직접적으로 이어집니다. 성(性)적 욕구를 중심으로 하는 개인적 무의식을 강조한 프로이트에 비해, 융은 집단에서 공유되는 '집단무의식'을 강조합니다. 집단무의식을 형성하는 것은 분트가 민족심리학에서 언급한 신화, 전설, 민담 등의 것들이죠.

Carl, G. Jung

융의 집단무의식은 아득한 선조때부터 이어져 온 지식과 감정들입니다. 이런 집단무의식은 꿈이나 오래된 상징을 통해 알 수 있는데 그러한 이미지나 상징을 원형(Archetype)이라고 하죠. 융은 이 외에도 이성이나 의식에 대비되는 그림자(shadow), 남성의 무의식적 여성성(Anima), 여성의 무의식적 남성성(Animus) 등의 개념을 창안하여 인간의 마음을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는 틀을 마련했습니다.


집단으로서의 군중의 행동에 대한 연구는 르 봉(G. Le Bon; 1841-1931)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혼란기를 대상으로 군중의 동기에 대한 '군중심리학'을 남겼죠. 군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군중의 욕구, 특히 무의식적 욕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군중에 대한 르 봉의 생각은 제 다른 글(군중에 대한 오해https://brunch.co.kr/@onestepculture/149)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르 봉의 입장은 현대로 이어져 모스코비치(S. Moscovici; 1925-2014)로 이어집니다. 루마니아 출신의 프랑스 사회심리학자인 모스코비치는 실험사회심리학 위주인 현대사회심리학에 정신역동이론, 인류학, 사회학적 관점을 도입해 인간의 사회적 행동에 대한 폭넓은 설명을 시도했습니다.

Serge Moscovici

특히 모스코비치의 사회적표상이론(Social representation theory)은 한선생이 문화연구의 주된 방법론으로 차용하고 있는 이론입니다. 사람들에게 공유된 이미지, 행위양식, 사고방식 등을 사회적 표상이라고 하는데, 다양한 자료를 통해 사회적 표상들을 추출하여 그 이면의 심리를 분석하는 방법입니다.


무의식의 작용에 대해 가장 치밀한 이론을 제시한 사람은 뭐니뭐니해도 프로이트입니다. 성(性)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했고 또 교조적인 태도로 후학들의 외면을 받았지만, 그가 이론화한 무의식의 생성과 작동원리는 융과 아들러, 에릭슨을 비롯한 이후의 많은 정신역동이론가들과 문학, 미술, 영화 등 20세기의 문화예술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Sigmund Freud

잘 모르는 사람들은 무의식과 정신역동이론이 비과학적이라고 비판하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잘 몰라서 하는 얘기들입니다. 정신역동이론이 주로 비판을 받는 부분은 검증이 불가능하다는 점 때문인데, 이론의 타당성과 검증가능성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실험을 통해 인과관계에 대한 실증적인 증거를 제시할 수는 없지만 현상에 대한 의미있는 해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증과학과 해석과학은 누가 더 우월하고 열등한 것이 아니라 복잡다단한 인간의 행위를 설명하기 위해 반드시 둘 다 필요한 것이죠.


프로이트의 이론은 핵심만 말하자면, 욕망에 대한 것입니다. 인간은 욕망을 가진 존재고, 그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살아갑니다. 현실에서 충족될 수 없는 욕망은 무의식으로 억압되고, 억압된 욕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를 움직이는 원인이 되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현대에 재해석한 프랑스의 심리철학자 자크 라캉(1901-1981)은 '주체는 결핍이요, 욕망은 환유이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는데, 인간 행위의 본질은 결국 욕망이라는 것이죠. 라캉은 소쉬르의 언어학에서 영감을 얻어 기호학적 방법으로 인간 행위에 대한 접근을 시도했습니다(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Jacques Lacan

문화는 또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욕구와 욕구 충족의 체계입니다. 인류학자 말리노프스키(1884-1942)의 주장이자, 문화심리학자로서 제가 채택하고 있는 문화에 대한 정의입니다. 말리노프스키는 트로브리안드 군도에서의 관찰을 통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사회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훈육자에 대한 태도와 관련 있음을 밝힌 바 있지요. 말리노프스키의 심리기능주의는 심리인류학으로 이어져 문화심리학의 한 축이 됩니다. 

Bronislaw Malinowski

이렇듯 학문의 범위를 초월하여 문화연구에서 무의식과 정신역동이론의 영향은 넓고도 깊은데요. 특히 문화적 행위는 하는 당사자들도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 진정한 의미는 무의식 차원에서 발견될 가능성이 크죠. 이것이 문화연구에 있어서 무의식 이론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오늘은 다소 생소한 인물들과 관점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잘난 척 하려는 생각은 많이 없었구요. 이 글에서 제가 주워섬긴(?) 학자들과 이론을 통해 문화연구에서 정신역동이론과 무의식적 관점을 보다 잘 이해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마음이 바쁘신 분들을 위해 세 줄 요약 들어갑니다.


1. 무의식은 인간의 욕구 충족 과정에서 나타난다.

2. 문화는 욕구 충족의 체계다.

3. 문화적 현상 중에는 무의식과 관련된 것도 있다(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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