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 정서가 다 행복은 아닌 이유
쿨하다: 차갑다, 시원하다라는 영어단어 cool에 하다가 붙은 말로, 어느덧 국어사전에까지 올라가 있는 말이다. 꾸물거리거나 답답하지 않고 거슬리는 것 없이 시원하다라는 뜻이다.
우선, 쿨하다는 느낌은 긍정적 정서에 해당한다. 쿨한 사람은 시원시원하고 멋져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태도가 지나칠 때다.
쿨병이란 쿨함이 지나쳐 병이 됐다는 뜻인데 적당하면 좋을 쿨함이 뭔가 정상 범주를 넘어섰다는 얘기다. 물론 DSM에는 없는 진단명이지만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인터넷에 정리된 쿨병 항목을 참조하여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쿨병의 증상은 첫째, 어떤 사안에 대해 ‘너도 잘못했고 쟤도 잘못했다’ 류의 양비론적 태도를 취한다. ‘결국 다 똑같은 놈들이다’, ‘어차피 그렇게 가게 돼 있어’ 등도 쿨병 환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두 번째 증상은 자신의 부적절한 처신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쿨한 사람임을 자처하며 방관자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연인이 있는데 바람을 피우고도 ‘우리 쿨한 사이잖아’, ‘왜 이래? 쿨하지 못하게’처럼 말하는 것 등이다.
세번째는 궁지에 몰린 상황임에도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음을 애써 어필하면서 쿨한 척 넘어가려는 행동을 말한다. 논쟁을 하다가 갑자기 화제를 돌리거나 양비론을 펼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쿨병의 원인은 자신이 상대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동기에 있다.
문화심리학자로서, 쿨병은 자신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다른 이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원하는 한국인들의 성격유형에서 비롯된 병리적 행위양식이라 볼 수 있을 것 같다.(참조;한국인의 자기가치감https://brunch.co.kr/@onestepculture/292)
때문에 이들은 자신의 우월성에 위협을 받으면 상대받을 깎아내리거나 어떻게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자신의 견해가 무조건적인 진리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저급한 부류로 취급한다.
자신은 냉철하고 합리적인데 상대방은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으로 대응한다는 식이다. 게다가 쿨하다면서 자신에게 가해지는 비판은 또 참지 못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행복의 관점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쿨병환자 본인들은 행복할 가능성이 있다. 쿨함이란 정서 자체는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말로 다른 사람 속에서는 천불이 솟건 말건 쿨병환자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잘났다는 우월감으로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정신장애의 진단기준에는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인들의 적응과 안녕도 포함된다. 예를 들면, 강박성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물건을 줄맞춰 정리하고 이불의 각을 잡으면서 행복하다. 그러나 같이 사는 사람은 죽을 맛일 거다. 쿨병은 분명 병이다.
이렇듯, 쿨병은 일단 개인적인 성격장애의 범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도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문화적 형태로 보면 옳을 듯하다. 그러나 이들이 더욱 해로워질 수 있는 부분은 공감능력의 부재에 있다.
쿨병환자들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문제에 대해 ‘별 걸 다 가지고 난리다’, ‘피곤하게도 산다, 그냥 좀 넘어가라’, ‘나는 그렇게 생각 안하는데 왜 oo가 욕먹는거냐, 선비들 나셨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불만을 제기한 사람을 편협한 꼰대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이런 이슈들 중에는 사회정의나 보편적 원리에 반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5.18 민주화운동 때 북한군이 있었다는 얼토당토 않은 주장에 ‘해석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면서 ‘한국사회는 너무 극단적’이라는 이들.
위안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정부에 쓴소리를 한 정치인에게 ‘국익을 생각하지 못하고 경솔했다’는 이들.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서는 이들에게 ‘너무 감정적’이라며 ‘어차피 바뀌는 건 없을 거’라던 이들.
또한 앞서 서술한 ‘한국에 태어난 것이 불행해..’에 나오는 이들처럼 자신이 사는 곳을 폄훼하는 이들의 증상도 이와 같다. 이들은 자국을 좋게 평가하는 일체의 시도를 ‘국뽕’이라 매도하면서 자신들은 객관적으로 우리나라를 평가한다고 주장한다.
개중에는 진짜 냉철하게 문제들을 분석하고 개선점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상당수는 뚜렷한 근거도 없이 헬조선을 반복하는 것이 보통이다. 덧붙여 이러저러한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는 사람들에게 ‘헬조선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며 자신들의 지성을 뽐낸다.
이 정도면 쿨병은 개인의 행복뿐 아니라 공공의 선을 위협하는 심각한 마음의 병이 아닐까.
한 마디 덧붙이자면, 쿨병환자들 중에는 성격에 약간 문제가 있는 보통 사람, 잘난 척하고 싶지만 능력이 따르지 않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이른바 사회 지도층(?)에 속하는 이들 혹은 사회 지도층처럼 보이고 싶은 이들이 많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위에 서술한 쿨병의 증상들이 지식인으로서 응당 가져야 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라고 생각한다. 자연히 다른 사람들은 계몽이 필요한 개돼지가 되는 이치다. 자신이 지식인 또는 여론주도층이라 착각하는 경우야 뭐 약한 정신장애의 일종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실제 사회지도층(?)이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사회적 지위 때문에 그들의 메시지는 널리 전파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영향력 때문에 사람들이 분노해야 할 것에 분노하지 않게 되고 불쌍히 여겨야 할 일에 측은함을 느끼지 않게 된다면, 그로 인해 희망을 가져야 할 이들이 절망 속에서 살게 된다면 지식인으로서 그 책임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어쩌면 그들에게 그러한 종류의 책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사는 곳에 대한 애착도, 함께 사는 이들에 대한 애정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체 어디서, 누구와,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