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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생 Aug 15. 2023

한(恨), 흥(興), 신명, 그리고 멋

한국인의 문화적 동기, 그리고 

**표지사진은 송현숙 작가의 그림 <백호가족의 100년 나들이>입니다**


예전에는 한국인들을 한(恨)의 민족이라 불렀습니다. 대략 1990년대 초중반까지는 그랬죠. 이는 근현대 한국이 경험한 한스러운 역사와 관련이 있을 겁니다. 망국과 일제강점기, 동족상잔과 이산가족의 아픔, 홍수와 같은 시대의 흐름에 휩쓸려가던 개개인들의 삶은 한(恨)이라는 정서로 형상화되었습니다.

영화 <서편제> 1993년 개봉

문화심리학적 관점에서 한(恨)은 '자기가치와 통제감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내 뜻과 관계없이 일어나는 불행은 나의 존재가치를 찾기 어렵게 합니다. 슬프고 분하고 원통한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깨달음, 거기에 그런 일들을 당한 이유가 내 스스로의 가치가 보잘것 없어서라는 깨달음이 덧붙습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슬프고 분하고 원통한 감정을 삭여야 합니다. 그러한 감정이 향할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대 탓을 하자니 시대는 인격과 의지가 없습니다. 일제나 권력 탓을 했더니 당장에 끌려가 죽고 맙니다. 끓어오르는 감정을 그대로 지니고 살자니 하루하루를 견디기가 힘듭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내 탓'을 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못배워서, 돈이 없어서, 힘이 없어서 이 억울한 일을 당했구나, 우리가 힘이 없어서 나라를 빼앗겼구나, 우리가 힘이 없어서 이 부당한 일을 당하는구나. 한(恨)은 한국인들이 자신에게 닥친 부정적인 일들을 받아들이고 견뎌내는 과정에서 체화한 문화적 정서입니다(한(恨)이란 무엇인가(1)https://brunch.co.kr/@onestepculture/389).


그러나 한(恨)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잃어버린, 손상된 나의 가치를 되찾아야 합니다. 내게 닥친 불행을 내 탓을 한다는 것은 내 할 바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다시 일어날 수 없을 만큼 짓밟힌 이들도 있었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은 한(恨)을 동력으로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습니다.

두고 보자. 내가 배워서, 돈을 벌어서, 힘을 길러서 이 한(恨)을 풀겠다. 해한(解恨)의 동기입니다. 쓰러져도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손꼽히는 경제 대국으로 일어선 한국의 문화적 탄력성은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한(恨)이란 무엇인가(2)https://brunch.co.kr/@onestepculture/390).


손상된 자기가치를 회복하는 과정은 처음에는 그리 즐겁지 않습니다. 억울하고 서글프고 처량합니다. 서럽습니다. 그럼에도 거기에 머물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다보면 어느 순간 상황이 나아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밖에서 보기엔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이지만 중요한 변화가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전과 똑같은 일을 해도 즐겁고 힘이 납니다. 이제는 나의 가치를 되세우기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내 뜻을 마음껏 펼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찾아옵니다. 


흥(興)입니다.


흥(興)이란 말 그대로 나의 내면에서 무언가가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삶에서 되찾은 통제감, 내일에 대한 희망, 나의 가치가 서서히 회복되어 드러나는 설렘과 즐거움, 가슴 속에서 일렁거리는, 더욱더 나를 드러내고 표현하고 싶다는 마음이 바로 흥(興)인 것입니다. 

해서 우리는 흥(興)이 나야 합니다. 흥(興)이 나야 비로소 사는 의미와 재미가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한국인들을 흥(興)의 민족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쯤에서 살짝 갸웃해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신명'은 그럼 뭘까요? 

'신', 또는 '신바람'으로도 불리는 '신명'은 그 사용되는 맥락에 따라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문화심리학자 한선생은 신명의 의미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고 있는데요. 하나는 현상적 의미의 신명이고, 또 하나는 심층적 의미의 신명입니다.


현상적 의미의 신명은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일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으로서의 신명을 뜻합니다. 신난다, 신바람난다, 신명난다 처럼 자신의 감정을 직접 표현하는 말이죠. 이때의 '신'은 보통의 즐겁고 재미있고 설레는 감정보다 훨씬 크고 강렬한 쾌감을 의미합니다. 


흥(興)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또는 일어나기 시작한 설렘과 즐거움이라면 '신', '신바람', '신명'은 이른바 '흥이라는 것이 폭발'한 정도의 거센 감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얘기가 나온 김에, 요즘 예능 같은 곳에서 '흥이라는 것이 폭발한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요. 

'신바람 난다', '신명 난다'가 국악한마당이나 마당놀이 같은 데서 들을 수 있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조금 예스러운 표현이 되어 가면서 새롭게 등장한 표현입니다만 그 뜻은 신난다, 신명난다와 동일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일단 사람들이 실제 경험하는 정서의 강도라는 측면에서, '흥(興)이 난다 ①'에서 '흥이 오른다 ②', '흥겹다 ③'에서 '흥이 넘친다 ④', '흥이 폭발한다 ⑤'.. 까지 간 것이 신, 신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구요. 한국 문화에서 흥의 정도는 '흥이 폭발'하다 못해 무대를 '찢는' 단계(⑥, ⑦)까지 세분화됩니다(찢었다는 말은 어디서 왔을까https://brunch.co.kr/@onestepculture/422).


신명의 두 번째 의미는 보다 문화적이고 심층적입니다. 신명은 한국인들의 문화적 정서이자 동기이며 한국 문화의 대표적 상징이기도 합니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신명은 한(恨)을 풀어 결국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때문에 한국인의 한(恨)은 반드시 신명과 함께 언급되는 것입니다.


신명은 잃어버리고 상처입었던 나의 가치가 온전히 풀려나와(흥의 과정) 밖으로 표출되어 밝게 빛나는 마음입니다. 억울하고 분하고 원통함은 사라지고 즐겁고 흥겹고 신이 나다 못해 가슴이 터질 것 같이 흥분되고 너와 내가 구별되지 않고 나와 세계가 하나가 되어(몰입/일체감/무아지경)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끝없이 넘쳐나오는 감정이죠.

매우 긍정적이고 이상적인 감정이지만 우리가 살면서 이러한 감정을 자주 경험하기는 힘듭니다. 따라서 한국인들은 끝없이 신명을 추구합니다. 한국인들의 놀이 문화(특히 현대)를 보면 음주문화를 비롯해서 소위, 속된 말로 '뽕을 뽑는' 식으로 상당히 높은 수준의 쾌감을 추구하는 식이 많은데요. 


보통 웬만큼 즐거운 것으로는 성에 안 차기 때문입니다. 한국인들의 행복 역치가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신명을 추구한다는 얘기는 그렇지 않은 현재, 현실을 더 불행하고 고통스럽게 지각할 가능성도 크다는 뜻이니까요. 이 얘기는 다음에 더 하도록 하고...


마지막으로, 그럼 '멋'은 뭘까요? 

한(恨)과 흥(興), 신명은 자기가치의 손상과 발현, 최고의 상태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었는데요. 


'멋'은 흥(興)과 신명을 표현하는 방식과 관계있는 개념이라 생각합니다(제 주장입니다). 한국인들이 흥을 잘 느끼고 신명을 내려는 욕구가 있지만 그 방식은 천차만별입니다. 흥 나는 대로, 흥에 겨워서, 신나는 대로 자신을 드러내다보면 그게 보기에는 조금 아름답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안은미 컴퍼니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잔치집에서 술에 취해 아무렇게나 춤을 추는 취객이나 본데 배운데 없지만 신나게 막춤을 추는 분들이 그 예입니다. 흥겹다..는 말은 솟구치는 흥 때문에 몸을 가누기 어렵다는 얘깁니다. 그야말로 막춤이죠. 물론 이러한 표현의 자유로움은 문화 현상으로서 신명의 중요한 특징이자 신명의 커다란 심리적 효과를 가져오는 요인임에 틀림없습니다. (자유로운 표현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절대 아니구요.)


자유롭게 흥(興)을 표현하면서도 보다 정제되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한다면, 사람들은 거기에 더 큰 공감을 느끼고 감탄하며 결국에는 더 큰 신명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때, 흥(興)을 표현하는 방식이 바로 '멋'입니다. 신명의 도가니에서는 저마다 자신만의 흥(興)을 펼쳐내지만 누구나 멋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표현방식의 차이 때문입니다. 


때문에 '멋'은 특히 예인의 영역에서 중요시되어 왔습니다. 예인들은 보통 사람들 마음 속에 숨어 있는 흥(興)을 깨워 신명으로 인도하는 이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 사실이죠. 예인들의 '멋'은 사람들을 감동시켜 내면의 흥(興)을 불러내고 자신들이 선 곳을 신명의 마당으로 만들어냅니다.


예술적인 맥락을 좀 벗어나 일상으로 적용해 보면, '멋'은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는 방식이 정제되고 세련됨을 의미한다 하겠습니다. 예인들이야 자신들이 추구하는 예술에서 수많은 인고의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그것을 체화한 경우겠고요. 예술적 맥락이 아닌 일반적 의미에서의 멋은 무엇일까요?

멋지다 연진아!!!

글이 길어지는 관계로 이 주제는 다음 기회에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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