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작용하는 또 다른 방식
동방예의지국. 지금은 좀처럼 듣기 힘든 이 말은 옛날 중국이 우리나라를 부르던 말이다. 후한서의 동이열전에 따르면 동이는 풍속이 순후하여 길을 가는 이들이 서로 양보하고, 음식을 먹는 이들이 먹을 것을 미루며, 남자와 여자가 따로 거처해 섞이지 않으니 공자마저도 살고 싶어했던 예의의 땅이었다는 것이다.
왜 우리나라는 예의의 나라로 불려지게 됐을까. 바깥에서 보여지듯, 예의 바른 사람들이 잔뜩 살아서 예의의 나라가 된 것일까. 그렇다면, 현재 한국에 넘쳐나는 갑질러와 진상들, 말도 안되는 요구들을 늘어놓는 민원인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동안 예의바른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시라도 한 것일까.
과거의 우리나라가 예의를 중시했던 것은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이유를 삼강오륜을 강조해 왔던 유교의 영향이라 생각해 왔으나 기록에 드러나듯이 유교가 전래되기 훨씬 이전부터 이 땅은 예의의 땅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이 땅에 살아온 사람들의 성품이 착하고 예의발랐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를 문화 구성원들의 기질이나 성품으로 이해하는 것은 문화를 이해하는 바른 방식이 아니다.
문화에는 그것이 수행하는 기능이 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구성원들의 생존과 사회의 유지다. 하지만 구성원들의 생존과 사회의 유지라는 문화의 핵심적 기능은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어떠한 문화가 발생한 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문화의 핵심적 기능은 점차 숨어들고 관습적인 이유들만 남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예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한다는 당위나 양반은 비가 와도 뛰지 않는다는 식의 왜곡된 규범으로 남아 기능보다는 폐해가 강조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문화의 본질적 기능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달리 말해, 예의라는 가치가 우리나라에서 강조되었다면 예의는 여기서 대대로 살아왔던 사람들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했다는 뜻이다.
예의란 사회생활이나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존경의 뜻을 표하기 위해 예로써 나타내는 말투나 몸가짐(국어사전), 즉 상호존중이라는 전제에서 관계를 유지하고 상호작용을 이어나가기 위한 사회적 기술이다. 한국인들이 예의를 대단히 중요시했다는 사실은 우리의 인간관계에 상호존중이 반드시 필요했었음을 의미한다.
딱히 한국인들이 천성적으로 예의가 바르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의는 사회적 규범이다. 모든 사회에 존재해 온 법과 도덕, 윤리 규범들은 사회 유지를 위해 개인의 욕구를 제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예의범절이 제한하는 개인의 욕구는 무엇일까. 상대방의 기분이나 입장과 관계없이 내 멋대로 하고 싶은 욕구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그 사실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리고 한국인들에게 이러한 욕구는 매우 중요하다.
문화심리학의 연구들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자신의 사회적 영향력을 타인에게 미치고자 하는 주체성 자기가 우세하다(https://brunch.co.kr/@onestepculture/156). 그리고 이러한 주체성 자기는 자신의 가치를 다른 이들보다 높게 평가하는 자기가치감에서 비롯된다(https://brunch.co.kr/@onestepculture/292).
요약하자면, 한국인들 중에는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잘났다고 믿기 때문에 다른 이들을 제 마음대로 하려는 유형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한국 문화의 어떠한 측면이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들어내는지는 아직 명확한 설명이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러한 유형이 사람들은 꾸준히 존재해 왔고 이들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경험해 왔던 한국인들은 사회적 상호작용에 있어서의 상호존중의 필요성을 깨달았을 것이다.
세대에서 세대에 걸친 교육의 결과가 사람들의 행동에 반영되었고 그것을 관찰한 외부인들은 이 나라에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때는 뭇 사람들이 자랑스러워마지 않던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이름은 어느새 잊혀졌다. 아마도 구한말 국권을 빼앗기는 치욕을 겪고 근대화 과정에서 숱한 수치를 경험한 후, 그 이유를 유교에서 찾게 되면서부터가 아닌가 한다.
특히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류의 주장이 주류로 떠오르면서 공자의 이름은 물론 유교의 가르침과 관계된 것들을 입에 올리는 일 자체가 썩 자랑스러운 일로 여겨지지 않게 되었다.
유교에 대한 부정 또한 시대의 산물이다. 삼강오륜과 예의염치로는 새 시대를 살아갈 수 없음을 뼈저리게 깨달은 한국인들은 전통과 과거를 부정하고 새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가치들을 받아들였다.
자유, 평등, 독립, 자기 주장, 성취..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가치들을 추구해 온 지난 수십 년간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높은 자기가치감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타인에게 미치려는 욕구를 가진 이들에게 현대 사회는 부와 권력과 지위를 성취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했다. 지난 시간, 한국의 눈부신 성취는 이를 반영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버린 예의의 결과가 타인에 대한 존중이 없는 사회, 타인과의 공존이 불가능한 사회라면,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전제로서의 예의라는 개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이 글은 경향신문에 실린 칼럼을 정리하여 올린 것입니다.